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바 Apr 09. 2024

제발 피라미드 구경 좀 하자

이틀 만에 카이로 탈출

여자 혼자는 위험해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서 지민(가명) 언니를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다. 2년간 세계여행을 하면서 가장 싫었던 나라는 이집트라고 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성희롱 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집트 남자들이 성적인 요구를 하면서 계속 쫓아왔다고 했다. 언니는 절대로 여자 혼자서 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언니는 내가 조만간 이집트로 간다는 말을 듣고 무조건 동행자를 구해서 같이 다니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부푼 기대를 안고

이집트 카이로 공항

튀르키예 38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이집트로 떠났다. 이스탄불에서 카이로까지 비행시간은 2시간 30분이다. 밤 11시. 공항에 도착했다. 늦은 밤이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튀르키예와 다르게 몸이 경직돼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민지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이집트 여행은 더 각별히 안전 또 안전에 신경 쓰기로 했다. 도착하는 날까지 동행자를 구하지 못해서 한인 게스트하우스로 예약했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픽업 서비스도 신청했다. 카카오 메신저로 차량 번호를 받았다. 차 안에는 나 혼자다. 운전기사는 현지인 남자였다. 긴장을 더 놓을 수 없었다. 목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몸을 잔뜩 구부린 채로 40분 동안 이동했다. 시내가 보인다. 불빛도 조금씩 보인다. 차가 멈춘다. 한인 민박 이름이 보인다. 체크인을 했다.


새벽 1시. 짐을 풀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화장을 지우고 머리를 질끈 위로 묶었다. 공동 거실에는 지훈(가명) 오빠가 있었다. 우리는 인사를 했다. 이제야 긴장이 풀렸다. 편안한 마음을 즐기고 싶었다. 거실 한편에 보이는 사카라 맥주를 꺼내서 계산했다. 그때 뒤에서 들리는 지훈 오빠 목소리.


"두 캔 다 마시면 아침에 조금 힘들 텐데...."


사카라 맥주 500ml 10%짜리다. 처음 마셔보는 이집트 맥주다. 소주와 맥주를 적절히 섞은 맛. 그래 이 맛이다. 여행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꿀 같은 시간이었다. 지훈 오빠와 대화를 이어갔다. 오빠는 한의사로 일하는데 개업하기 전에 여행 중이라고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이유로 여행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정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아침에 피라미드 투어를 같이 할 일행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민 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불안한 표정이 보였나 보다. 오빠는 나만 괜찮다면 같이 카이로를 동행하자고 말했다. 다행이다. 고마웠다.  


새벽 2시. 아쉬움을 뒤로하고 침대로 돌아왔다. 아침 8시에 투어 시작이다. 오전 7시에 조식을 신청했다. 5시간 동안 잘 수 있다. 피라미드가 궁금하다. 부푼 기대를 안고 잠을 청했다.


이상한 나라의 카이로


오전 8시. 머리가 아프다. 지훈 오빠 말이 맞았다. 맥주 도수가 높아서 힘들다. 텐션이 낮아졌다. 그때 지훈 오빠의 옷차림을 보고 빵 터졌다. 무슬림 남자 의상을 입었다. 하얀색 긴 원피스를 입고 머리 위에는 두건이 쓰여 있었다. 피부도 까무잡잡해서 더 잘 어울렸다. 엄지 척을 날렸다. 미리 전통시장에 가서 흥정해서 샀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다. 지훈 오빠는 한의사를 공부하기 전에 1년 동안 세계일주를 했다. 여행 경험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현지인처럼 잘 녹아들었다.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투어 차량에 탔다. 시내에서 피라미드까지는 30분 거리다. 창 밖으로 처음 구경하는 카이로 시내. 이집트는 튀르키예와 같은 이슬람이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여기저기 뒤엉켜 있는 차들, 차 사이사이로 차도를 건너는 사람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다. 무질서 안에서도 질서가 있다. 그들의 세상은 편안해 보였다. 처음 보는 관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는 차량 앞쪽을 보았다. 저 멀리서 피자헛이 보이고 작게 피라미드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진다.


우리는 세계 7대 불가사의 피라미드로 향해 걸어갔다. 투어 시작부터 난관이다.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물건을 든 꼬마 아이들은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말과 낙타 호객행위로 정신없게 만든다. 말로만 듣던 잡상인이다. 상대적으로 지훈 오빠 옆에는 잡상인이 적었다. 그럴 법도 하다. 누가 봐도 현지인 같았다. 나는 눈길도 주지 않고 현지인 가이드 뒤를 졸졸 쫓아갔다. 차량을 내리기 전에 현지인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어떠한 물건도 사지 말고 낙타도 타지 마세요. 사기당해요!"


말이나 낙타를 타면 추가 요금을 더 내라고 사기를 친다. 예를 들어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내라고 요구한다거나 낙타에서 내리는 비용을 내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집트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현지인과 싸워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기자지구 피라미드

현지인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한다. 기자지구 피라미드다. 기자 피라미드라고 불린다. 가장 큰 쿠푸왕 피라미드 가운데 기준으로 양쪽에 피라미드 두 개가 더 보였다. 피라미드로 이동했다. 점점 가까워진다. 고개를 들었다. 상상 그 이상이다. 쿠푸왕 피라미드 크기에 압도당하기도 전에 또다시 낙타 호객행위를 한다. 내 뒤를 계속 쫓아온 모양이다. 우리는 서로 빨리빨리 사진을 찍고 있었다. 피라미드 돌 하나의 높이는 내 키를 넘었다. 사진이 잘 나왔는지 사진앨범을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가만히 서 있으면 잡상인이 온다. 숨 돌릴 틈이 없다. 


쿠푸왕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료를 구매했다. 피라미드에 있는 계단을 따라서 올라갔다. 어느 중간쯤에 도착해서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갔다. 크기에 비해 들어가는 길은 좁고 경사도 있었다. 오리걸음 자세로 엉거주춤하게 들어갔다. 이마에 땀이 맺힌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여기저기서 헉헉 소리가 들려올 때쯤 제법 넓은 홀이 나왔다. 왕의 방이다. 내부는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조명이 없어서 한밤중처럼 어두컴컴했다. 이게 전부다. 붕괴 위험 때문에 체험만 할 수 있도록 길만 냈다고 한다.


안에도 더웠는데 밖에도 덥다. 좀처럼 땀이 멈추질 않았다. 손으로 땀을 닦고 있는데 다른 잡상인이 나타났다. 쿠푸왕 피라미드 옆에 있는 스핑크스로 빠르게 이동했다. 스핑크스는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다. 유명한 시그니처 포즈인 스핑크스와 입맞춤. 부끄럽지만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현지인 가이드가 능숙하게 찍어 주었다. 지훈 오빠 차례다. 처음에 만났던 낙타 호객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래. 같이 다니자! 다녀!'


대단했다. 한시도 가만히 두질 않는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러든 말든 신경을 껐다. 그러나 이미 기분은 상할 대로 상해버렸다. 투어가 끝나고 지훈 오빠와 마음이 통했다. 이상한 나라의 카이로다. 카이로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도록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지금 당장 카이로를 떠나고 싶었다. 우리는 카이로 동행을 포기하고 그날 저녁에 다른 지역으로 떠날 야간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가장 편하게 피라미드를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은 피자헛에서 피자 한판 시키고 여유롭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피자헛에서 바라보는 피라미드 뷰가 좋다고 11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유명한 관광지라도 복잡하면 떠나고 싶다는 것을 피라미드 투어를 통해서 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카이로에 온 지 이틀 만에 탈출했다.  


피라미드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잡상인들
피라미드 앞에 말과 낙타 호객행위가 기다리고 있다.
쿠푸왕 피라미드를 위로 올려다본 순간 믿기지 않았다.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이집트는 여행자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곳이라고 소문났다. 쉽지 않은 피라미드 여행이다.
피라미드의 흔적도 군데군데 보인다. 뒤에 보이는 카이로 시내 뷰도 놓칠 수 없다.
피라미드 뒤에 꽁꽁 숨어서 보이지 않았던 스핑크스.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은 분명 하나 관광객을 돈으로만 보는 그들의 태도가 아쉽고 아쉬웠다.
이전 07화 카파도키아 열기구 사고를 목격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