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바 Apr 16. 2024

저 스쿠버다이빙 포기할래요

다합 바다는 예쁘지만

물에 빠진 적 있어요


스물세 살. 무더운 여름날 강원도 바다로 떠났다. 파도를 타면서 놀다가 튜브를 놓쳐다. 겨우 까치발을 들고 버틸 수 있는 깊이였다. 파도에 밀리면서 발이 닿지 않는 깊이까지 떠밀려 갔다. 나는 수영을 못했다. 허우적 대면서 살려 달라고 소리를 크게 질렀다. 어떤 아저씨가 달려와서 튜브를 던져 주었다. 위기의 순간은 놀랍다. 어떻게든 살려고 초능력적인 힘이 나온다. 겨우 튜브를 잡았다. 해변으로 가기 위해 앞으로 돌진했다. 모래 위에 그대로 누웠다. 눈을 감은 채 숨을 헐떡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닷물을 먹어서 입안이 짰다. 물을 마시고 싶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119 불러줄까요!?"

"아니요. 저 괜찮아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하지만 물 한잔만 주실 수 있을까요!?"


고마운 아저씨 덕분에 살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나는 왜 스쿠버다이빙이 배우고 싶었을까?


스물일곱 살. 죽음을 선택한 이후로 내 삶은 180도 달라졌다. 인생의 밑바닥을 겪고 나니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보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자'라는 마음이 더 컸다.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우연히 이집트 다합 블루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기로 결정했다.


지루하지만 설레는 순간


일반적으로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은 오픈워터와 어드밴스가 있다.

오픈워터 3일 과정, 수심제한 18m.
어드밴스 2일 과정, 수심제한 30m.   
(먼저 오픈워터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 어드밴스 과정을 할 수 있다)

다합 블루홀을 즐기려면 어드밴스까지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이론 교육을 하기 전에 이 영상을 먼저 봐야 해요!"


게스트하우스 공용 거실. 내 앞에는 두껍고 무거운 검은색 노트북이 있다. 준 강사는 영상 시청을 해야 한다며 노트북을 테이블에 두고 나갔다. 스쿠버다이빙 이론에 대한 영상이다. 눈이 반짝였다. 영상을 클릭했다. 한국어 자막이 없는 영어 영상이다. 점점 하품이 나왔다. 휴대폰을 보다가 영상을 보다가를 반복했다. 다리가 저린다. 양반 다리를 풀고 테이블 밑으로 다리를 폈다. 영상 끝나기 20분 전부터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합 바다 안에 들어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한 시간 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내 상상 속 입수 장면은 이러했다.

시크함 뒤에 숨겨진 부드러움


오전 8시. 다이빙 샵은 분주하다. 어떤 사람은 다이빙 슈트를 입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큰 박스 안에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장비는 다이빙 슈트, 다이빙 부츠, 다이빙 핀(오리발), 다이빙 마스크, 웨이트 벨트, 부력조절기구(BCD)가 보였다. 나는 옆에서 구경하기 바빴다. 그때 준 강사가 나에게 말한다.


"이쪽으로 오세요!"


어느 한 강의실. 준 강사는 화이트보드에 스쿠버다이빙 이론 교육을 시작했다. 일단 한국어로 설명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수첩을 꺼내서 펜을 바쁘게 움직였다. 


스쿠버다이빙 이론

부력 조절 방법

(양성 부력, 중성부력, 음성부력)

스쿠버다이빙 장비 사용 법

이퀄라이징(압력평형) 하는 법

(압력 차이로 인한 몸의 변화)

물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수신호


오랜만이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매력적이다. 영상 시청과 다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내 눈은 반짝였다. 직접 다이빙 장비를 체결하고 해체하는 연습도 했다. 교육이 끝나고 하고 싶었던 말을 수줍게 건넸다.


"저는 물에 빠진 적 있어서 트라우마도 있고 수영 못해요. 잘 부탁해요!"


"걱정 마세요. 호흡기(레귤레이터)로 숨 쉬면서 다이빙을 하기 때문에 수영 못해도 배울 수 있어요. 저만 따라오시면 안전합니다"


준 강사는 불친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편하게 다가가기 어려운 스타일이랄까. 할 말만 하는 시크함 뒤에 숨겨진 부드러운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안심되었다.


저 스쿠버다이빙 포기할래요


오후 1시. 점심을 먹고 다시 다이빙 샵으로 왔다. 슈트를 입고 웨이트 벨트를 매고 난생처음 공기통도 맸다. 초등학생 한 명을 업고 있는 느낌이다. 온몸에 긴장으로 가득했다. 다합 라이트하우스는 1분 거리. 가까운 거리인데 멀게만 느껴졌다. 핀(오리발)을 신고 허리 정도의 깊이에서 오픈워터 교육을 시작했다.


"수신호! 잊지 않으셨죠!?"


준 강사는 다시 한번 수신호를 알려 주었다. 물속에서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말 대신 손으로 수신호를 배워서 나의 상태를 강사에게 알릴 수 있다. 열심히 따라서 배웠다. 호흡기를 물고 무릎을 꿇었다. 숨을 쉬기가 답답했다. 불편했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호흡기를 잡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생존을 위해서 엄마만 바라보는 눈빛으로 준 강사를 바라보았다. 수신호를 따라서 천천히 숨을 들였다가 내쉬기 시작했다. 조금씩 안정적으로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강사에게 이제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오픈워터 제한수역 교육

물 안에서 호흡하기

호흡기를 빼고 되찾기

마스크에 물 넣고 물 빼기

마스크를 벗었다가 다시 쓰기


여러 가지 기본적인 것들을 더 배웠다.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물에 적응했다. 수심 1m에서 돌아다녔다. 이제야 제대로 보는 다합의 바다. 수심이 낮은 곳은 산호보다 모래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곳곳에 보이는 다양한 물고기들. 아쿠아리움에서 관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직접 배워서 바닷속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다.


"아주 잘했어요!"


우리는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다. 강사님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 이번에는 수심 5m에서 입수를 해야 한다. 밑을 내려다보았다. 꽤 깊었다. 바다에 빠진 기억이 떠올랐다. 무섭다. 공포를 느꼈다. 입수하는 것을 망설였다. 준 강사는 나를 안심시켰다. 지금까지 잘했던 나를 믿고 다시 한번 도전했다. 천천히 입수를 했다. 강사의 손을 덥석 잡아 버렸다. 의지가 된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나는 분명히 이퀄라이징을 하고 있는데 귀가 점점 아프다. 아니. 귀가 찢어질 것 같다. 준 강사에게 수신호를 보내고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다. 두 눈을 감은 채 양쪽 귀를 잡았다.


일상생활에서는 귀가 압력평형이 되어있다. 그래서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물 안에서는 압력이 크기 때문에 귀에 통증이 온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속으로 내려면서 이퀄라이징을 해야 한다.


"괜찮아요? 이퀄라이징이 잘 안 된 것 같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해볼게요. 쉬면서 충분히 연습하면 될 거예요"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준 강사는 수업을 중단했다. 나를 걱정하는 말투였는데 강사의 말이 안 들렸다. 처음 겪어보는 수압은 큰 충격이었다. 나에게 시간이 필요했다.  


저녁 6시. 게스트하우스 공용 거실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다이빙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수진(가명) 오빠는 안타까움에 이퀄라이징 하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코를 잡고 '흥'풀면 귀가 '뻥'하고 뚫리는 느낌이 있을 거야!"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다. 그날은 심란한 마음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일찍 침대에 누웠다. 이퀄라이징을 못하는데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침대에서 누웠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했다. 코를 잡고 다시 해봐도 잘 안된다. 고요한 다합에서 내 마음은 시끄러웠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준 강사를 다시 만났다.


"저 스쿠버다이빙 포기할래요!"


스쿠버다이빙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다합 바다는 예쁘지만 내 마음은 예쁘지 않았다.


다합 라이트하우스

무섭지만 나도 바다에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라이트하우스 해양 생물들

이전 09화 이집트 다합 40일 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