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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Apr 11. 2024

이집트 다합 40일 살기

여행자들의 블랙홀

다합으로 가는 길은 길고도 멀다


우리는 카이로에서 야반도주하듯 다합으로 이동하고 있다. 버스 안이 좁다. 나의 오른쪽 어깨와 지훈(가명) 오빠의 왼쪽 어깨가 겹쳐있다. 오빠는 키도 크고 덩치도 있다. 순간 나의 어깨를 구부렸다.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없어서 불편했지만 잠은 잘 온다. 아침부터 피라미드에서 호객행위에 시달려서 그런가 보다. 고개를 떨구다가 창문에 머리를 부딪혔다. 커튼을 들춰보았다. 아직 컴컴한 밤이다. 갑자기 버스가 멈춘다. 짐을 다 가지고 내리라고 한다. 캐리어도 꺼냈다. 버스 안에서 군인들이 무언가를 찾는 듯이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다. 모든 탑승자의 짐을 하나하나 검사했다. 다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짐검사를 꼭 거쳐야 한다. 폭탄테러와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해 검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 이상 없나 보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잠이 모자라다. 또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길고 긴 새벽이 지나고 동이 트였다. 다합 근처에서 버스가 한 번 더 멈췄다. 여권을 보면서 동일 인물인지 확인했다. 내 여권은 안경을 벗고 화장을 한 사진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안경을 쓰고 화장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안경을 벗고 '나'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제야 통과시켜 준다. 최소 2~3번은 검문을 한다고 한다. 잠시 뒤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카이로에서 다합까지는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두 번의 검문소를 방문하는 시간 때문일까.


다합으로 가는 길이 더 멀게만 느껴졌다. 


카이로와 다른 세상을 만나다
《다합》 Dahab

이집트 다합은 홍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다합에는 블루홀이 있다. 블루홀은 세계적으로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로 유명하다. 다합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일까. 다합에서는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지훈 오빠! 숙소 여기야!"


한인 게스트하우스. 길을 조금 헤맸다. 한국 사장님이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했다. 여행을 하려면 체력은 필수다. 우리는 각자 쉬기로 했다. 짐을 풀지도 않고 도미토리 침대를 보자마자 털썩 누웠다. 이불이 포근하다. 눈이 감긴다. 달콤한 잠에 빠졌다.


오후 1시. 개운하게 샤워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쪼리를 신고 바다로 향했다. 다합 앞바다 이름은 라이트하우스다. 라이트하우스 주변으로 상점과 레스토랑이 있다. 발걸음이 이끌리는 대로 뷰 좋은 자리로 앉았다. 눈이 부셨다. 뜨거운 태양이 나를 반겨주었다. 푸른 바다와 뒤에 있는 사막을 바라보았다.


맛있는 피자와 맥주 한 모금. 허기진 배를 채웠다. 주변에는 스노클링 하는 사람,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는 사람, 선베드에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이 보인다. 눈을 감고 파도 소리도 들어 보았다. 이상하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튀르키예 여행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숨 가쁘게 다녔다. 지금은 바다를 보며 널브러져 있다.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내가 원했던 곳은 여기, 다합이다!'


이집트 42일

카이로 2일

다합 40일


마지막 여행지를 다합으로 선택하길 잘했다. 아직 첫째 날인데 벌써부터 다합을 떠나기 싫을 것 같다. 40일 뒤에 여행자들의 블랙홀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다합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이다. 정신없는 카이로와 다른 세상이었다. 속도 시끄럽지 않다. 여유로움 그 자체다. 

다합 앞바다 《라이트하우스》

처음 뵙겠습니다


도미토리 방 옆에는 바로 공용거실이다. 거실에서 웅성웅성하는 말소리가 들린다. 방문을 열고 나갔다. 스쿠버다이빙을 마치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나, 소은(가명), 은지(가명), 민준(가명), 수진(가명) 오빠, 윤호(가명) 오빠, 지훈 오빠, 7명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다합의 길거리는 조명으로 반짝였다. 우리는 밤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밤에 바라보는 바다도 예뻤다. 다 같이 어떤 메뉴를 고를지 고민한다. 이집트는 이슬람교다. 돼지고기 대신에 닭고기와 소고기 그리고 해산물을 즐겨 먹는다. 새우, 오징어, 그릴치킨, 스테이크, 나폴리 피자, 씨푸드 수프를 시켜서 나눠 먹었다.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다.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면 금방 친해진다. 우리에게는 '여행'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다. 또 다합은 프리다이빙이나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려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있거나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로 모였다. 목적이 같은 사람들끼리 만나면 유대감이 쌓인다. 그렇게 물 흐르듯이 다음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어쩌다가 다합까지 왔어요?


나: 블루홀이 유명하다고 해서 스쿠버다이빙 배우려고 왔어요.

수진 오빠: 저 혼자 세계여행 중인데 다합이 좋다고 해서 왔어요.

소은, 은지, 민준: 우리는 대학교 친구인데 방학이라서 여행 왔어요.

윤호 오빠, 지훈 오빠: 우리도 친구인데 서로 여행 일정이 달라서 다합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다합이라는 장소 때문일까. 다합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일까. 내 앞에 있는 음식들이 모두 다 맛있었다.


다음 날이 기다려진다


다합의 6월 날씨는 더웠다. 그때 눈앞에 보이는 과일 주스 가게. 우리는 다 같이 더위를 식혀 줄 음료를 하나씩 시켰다. 망고, 사과, 수박, 레몬, 바나나, 사탕수수 등이 있었다. 나는 사탕수수를 시켰다. 사탕수수를 통째로 착즙기에 넣으면 주스가 된다. 비닐봉지에 담아서 빨대를 꽂아 주었다. 처음 보는 관경이다. 신기했다. 그 자리에서 한 움큼 마셨다. 사탕수수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그래도 모든 게 다 경험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 안에서 불빛이 보였다. 궁금했다. 내 옆에 있는 소은이에게 물어보았다.


"소은아!! 바다에 보이는 저 불빛 뭐야?"

"아~ 저거? 야간 스쿠버다이빙 하는 거야"

"아~ 진짜? 밤에도 할 수 있는지 몰랐어"


"소은아!! 스쿠버다이빙 해보니까 어때?"

"엄청 재미있어. 다합 바다 진짜 예뻐!!"


그래 보였다. 바라보기만 해도 예쁜데 바다 안은 얼마나 더 예쁠지 상상이 안 간다. 소은이의 이야기를 신나게 듣고 있는데 숙소 입구에서 검게 탄 피부에 머리에 하얀 수건을 뒤집어쓴 한 남자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저는 준 강사라고 해요. 내일부터 다이빙 수업이 있으니 오늘 푹 쉬세요"


다합에 오래 산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 모르게 시크해 보였다. 살짝 긴장되지만 강사님 말대로 다음 날을 위해서 푹 쉬기로 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낮에는 파도 소리로 가득했고 밤에는 별들로 가득했다. 다합은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혼자 여행은 새로움의 연속이다. 튀르키예에서 열기구와 패러글라이딩으로 하늘을 즐겼다면 이제는 이집트에서 스쿠버다이빙으로 바다를 즐길 차례다.


다음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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