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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샘 Mar 05. 2024

2. 준비 없는 퇴직도 있습니다

준비 없는 퇴직도 있습니다

"뭐 하실 일이 있는 거죠?"


"어머, 경제력이 되시나 봐요!"


20년 차 명퇴를 하고 난 뒤, 사람들이 그렇게 묻습니다.


보통 제 나이에 오래된 일을 그만두고 나올 때는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뒷받침이나 아니면 적어도


무언가 든든한 백그라운드 하나쯤은 당연코 있다고 보시는 거죠.


저의 경우는 동화책을 쓰고 있었던 터라 더욱 그랬습니다.


"본격적으로 집필에 들어가시는 거죠?"


"전업 작가하시는 거예요?"


지금껏 받은 인세와 계약금을 보자면 저는 연봉 300만원쯤 되는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전업작가라니요?


어휴, 아직은 꿈도 못 꾸고 있습니다.


제가 퇴직을 감행한 이유는 2년 전, 제게 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교실에서 감당하기 힘든 아이와 다수의 선량한 피해자인 반 아이들. 그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는 상황에 매일매일 휘청거리는 심정이었어요. 학교 시스템의 부재와 이름뿐인 교권보호위훤회. 그 벽과 싸우느라 없던 병까지 앓아야 했던 3월부터 7월까지의 기억과 투쟁.


학교로 두 번의 앰뷸런스가 왔어요. 한 번은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후송이 되었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혈압이 150까지 올라가고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의사는 6개월에 상응하는 진단 결과를 내놓았지만 다시 돌아갔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요.


투쟁 끝에 제가 원했던 결과를 얻었습니다. 아이는 강제 전학 조치가 취해졌고, 다수의 선량한 아이들은 당연히 누려야 할 일상을 선물 받았어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사람들이 용기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게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법으로 정해지고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일이 엄청나고 무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 버린 교직 상황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일 수백 번, 수천 번 생각했어요.


왜 내가 사랑하는 직업이 나를 이렇게 병들고 아프게 하는 걸까?


터널을 벗어날 때쯤 작년에 있었던 선생님 모두를 아프게 한 그 사건은 저에게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괜찮은 듯 태연한 얼굴로 생활했지만 아니었어요.


더 깊게 다치고 아프기 전에 스스로에게 변명을 합니다


'이만하면 됐어! 20년을 한 길로 걸어봤잖아. 이제는 내가 가지 못했던 길을 가 보는 것도 좋다!'는 마음으로


퇴직을 했습니다.  


준비를 거창하게 한 것도, 엄청난 재력이 뒷받침되는 것도 아니나 저처럼 나올 수도 있다는 경우의 수처럼


저는 그렇게 퇴직을 했고,


지금 못 가 본 길에 서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서성거리다가 주춤거리다가 뒤돌아 보는 날도 있습니다.


곧 그 길에 한 걸음 걸어갈 거라 믿어요!


뚜벅뚜벅, 한 번 가 보겠습니다.


비록 다른 길을 가지만

매일 오늘보다 더 나은 교직이 되기를 소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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