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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Feb 27. 2024

02 할머니 있으신 분? 도토리묵 칭찬하세요.

나만 먹을 수 있는 도로리묵 누룽지

도토리 줍기


할머니는 83세인 지금도 여전히 도토리묵을 직접 만든다.


8~10월이면 도토리 열매가 산에 떨어진다.

동네 뒷산에 가면 아줌마나 할머니들이 도토리를 줍고 있다.

초등학생 때는 할머니를 따라가 뒷산에서 도토리를 매년 주웠다.

다람쥐를 위해 도토리를 줍지 말아 달라는 현수막을 보고

나는 도토리를 주워가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무시당했다.

옛날 사람을 내가 어찌 설득할 수 있겠는가….


언젠가 한 번은 도토리를 주우러 뒷산 깊숙한 곳에 들어갔다.

그때 할머니의 노란 바람막이에는 현금 30만 원이 들어있었다.

옛날 사람이다 보니 현금이 더욱 익숙한 탓에 카드보다 현금을 챙겨 다니기 때문이다.

그날은 은행에 들렀었나? 현금이 필요했었나 보다.

우리는 도토리에 정신이 팔려 30만 원을 산에 떨어뜨리고 왔다.

할머니는 여전히 그 현금을 기억하고 아쉬워한다.


주머니와 장바구니 두둑이 도토리를 주워 집에 돌아온다.

갈색 다라이로 한 바구니 가득 찰 정도가 되어야 한다.

어쩔 땐 다라이 두 개가 가득 차기도 한다.


도토리를 물에 담가두면 썩은 도토리는 물 위로 뜨고,

도토리 속 애벌레도 나온다.

어렸을 땐 그 애벌레가 귀엽다며 가지고 놀았다.


그렇게 씻어낸 도토리는 넓은 포 위에 깔아서 며칠을 말린다.

말리면 도토리 껍질이 아몬드 모양으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벌어진 도토리는 벽돌이나 망치로 두드리거나 문지르면서 속의 알맹이만 꺼내야 한다.

껍질을 까다 보면 동그랗게 말린 애벌레가 계속 나온다.

지금은 그 애벌레가 튀어나올까 봐 도토리를 만지지도 않는다.


동그란 도토리와 길쭉한 도토리가 섞여 있다.

동그란 건 상수리.

길쭉한 건 가도토리라고 한다.

정확하진 않다.

길쭉한 가도토리로만 묵을 만들면 훨씬 맛있다고 했다.


계속 도토리를 까면 손톱이 상한다.

할머니는 도토리를 잘 까야한다며 손톱 끝을 뾰족하게 깎는다.

도토리를 까서 손끝이 까매지고 상해있는 할머니 손을 만져본다.

거칠지만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껍질을 다 까면 갈아서 물에 담가둔다.

그럼 하루 정도 지나 녹말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물은 모두 버리고 아래의 녹말을 모아서 종이에 펼쳐서 빨리 마르라고 전기장판을 켜둔다.

전기장판 위에 펼쳐진 녹말은 느낌이 좋다.

빠르게 만지면 딱딱하지만

천천히 만지면 묽게 손에 묻어난다.

빨리 마르라며 뭉치지 않게 펼쳐두면

하루 이틀 만에 마른다.


말린 녹말을 채에 곱게 쳐 가루로 보관하면 끝이다.

가루는 보관해 두었다가 원할 때 묵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도토리묵 만들기


만들어 둔 가루에 물을 타고 소금, 카놀라유를 넣고 섞는다.

중불을 켜고 계속 저어야 한다.

처음엔 그냥 물이었다가 점점 꾸덕해지며 공기 방울이 꾸덕함을 뚫고 올라온다.

완전히 꾸덕해지면 네모난 그릇에 담아 식혀 굳힌 다음 먹으면 된다.


묵을 쏟아내고 나면 냄비에 묵 누룽지가 달라붙어있다.

할머니는 묵 누룽지를 먹으라며 나를 부른다.

꾸덕하고 짭짤한 묵 누룽지는

만들어낸 직후에 바로 먹지 않으면 굳어 딱딱해진다.


수저로 냄비를 박박 긁으며 누룽지를 먹는다.

나는 묵보다 묵 누룽지를 더 좋아한다.

묵보다 훨씬 짭짤하고 꼬득꼬득하다.




시중에 파는 묵은 맛이 없다며

그렇게 몇십 년 동안 묵을 만들고 있다.


묵을 만들 땐 주로 바닥에 앉아야 해서 허리가 아프다.


매번 허리 아프다고 말하며 묵을 만드는 할머니를 보며

“우리 그냥 사 먹자.”

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자신이 아픈 것보다

가족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더욱 행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우리가 아는 할머니이지 않겠는가


두 번째 情(정)

이럴 땐 그러게 아픈데 뭐 하러 만드냐는

공격적이지만 걱정 섞인 말보다

너무 맛있다는 한마디를 전하는 게 좋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음식 투정을 한다.

"에잇 왜 이렇게 짜"

"어우 짜서 못 먹겠어"

"밥 이거 현미쌀이야? 막 설컹설컹 씹혀"

"테레비 보고 요리 좀 배워"

..

할머니와 나는 매일 투정하는 할아버지에게

역으로 성질을 낸다.


할머니는 말로는 “먹지 마!! “라고 하면서 슬쩍 일어나 새로운 반찬을 꺼내온다.

나는 “맛있는 데 왜?”라며 할머니 편을 들어준다.

그럼 할아버지는 “너야 할머니 편이니까”라며 억울해한다.


할머니에겐 음식 칭찬이  아픔을 잊게 만드는 가장 뿌듯한 말이다.


할머니집에 가본 사람들은 다들 배 터지게 먹고 왔다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우스개 소리로 식폭행을 당했다며 말이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직접 만든 정성 담긴 음식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情(정)

음식 칭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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