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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Mar 01. 2024

03 키오스크는 노인에게 절대 불친절하다.

할머니가 싸이버거를 어떻게 아세요?


나와 할머니는 햄버거를 좋아해서 점심으로 자주 먹는다.

노인이라고 해서 햄버거, 치킨, 피자, 파스타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소화력이 약해지고 건강이 안 좋아져서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 것일 뿐, 분명 맛있어한다.


할머니는 장보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시장에 간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항상 나한테 전화를 건다.

“싸버거 사다 줄까? 아니면 저기 롯데리아?”

항상 싸이버거 발음을 잘 못한다.


언젠가 한 번은 할머니가 시장에 가다가 나의 사촌오빠를 마주쳤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 자주 마주친다. 서로 안부를 묻고 할머니가 사촌오빠한테“싸이버거 사줄까?”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사촌오빠는 화들짝 놀라며 “할머니가 싸이버거를 어떻게 아세요?”라고 했단다. 할머니는 그 소리가 우습다며 집에 와서 나에게 말해주었다.


크고 두꺼운 싸이버거를 먹을 때면 꾸욱 눌러서 한입에 먹기 좋게 만드는 방법도 안다. 그런 것쯤이야 당연하다는 듯이 할머니의 어깨는 잔뜩 올라가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둘이 점심을 해결하러 롯데리아에 갔다. 햄버거를 워낙 자주 사 먹다 보니 롯데리아가 점심시간에 햄버거를 할인 판매하는 것도 안다. 키오스크를 잘 이용하지 못하는 노인의 특성상 항상 캐셔에 가서 주문을 한다. 그날은 이상한 직원이 있었나, 할머니한테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라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냥 좀 주문받아주지.”


결국 키오스크에 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 앞에서 주문을 잘 못하자, 직원은 그럼 주문을 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알바생이면 나랑 또래일 텐데, 누구인지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렇게 키오스크 앞에서 작아질 대로 작아진 두 노인에게 한 청년이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 어떤 거 시키려고 하세요?”

직원이 해야 할 일을 손님이 하고 있다.

“아니 그 데리버건가 뭔가 그거 셋뜨로 두 개 시키려고 하는데 저 직원이 저렇게 얘기하네”

상황을 모두 지켜본 청년은 그렇게 할머니의 주문을 도와주었다. 아주 친절한 청년이라며 집에 와 햄버거를 먹으며 나에게 이야기했었다.

"정아 너도 밖에 나가면 그 청년처럼 해야 해"

적잖이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세 번째 情(정)

노인에게 키오스크는 정말 쥐약이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스마트폰을 이용하지만, 그 마저도 기능을 이해하고 쓰는 게 아니다. 그냥 이렇게 생긴 버튼을 누르면 카메라가 켜진다는 것을 반복해서 암기한 것이다.


 키오스크에 아무리 대문짝 만하게 결제라고 써두어도, 기계가 무서운 노인들은 섣불리 그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50대인 우리 아빠도 기계 앞에서 작아지는데, 80대 노인들은 오죽할까?


모르는 노인이 길에서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달라고 하거나, 키오스크 앞에서 방황한다면 무시하지 말고 도와주었으면 한다. 물론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미 그러한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말이다.


세 번째 情(정)

기계 앞의 작아진 노인을 도와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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