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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Feb 23. 2024

01 엄마 없는 아이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거짓말로 만들어낸 엄마는 회사원이 되었다가 야근도 했다.



나의 엄마는 내가 3살쯤 되었을 때 나와 아빠를 버렸다.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
집안의 물건을 가지고 도망쳤다고 한다.
아기 수첩도 가지고 갔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저 할머니가 가끔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유추할 뿐이다.

아마 IMF 때 망해버린 아빠의 사업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겁먹고 도망갈 거였으면서 아기 수첩이랑 내 물건은 왜 가져갔을까?

그래서 아빠는 주말에도 매일 일을 해야만 했다.
요즘에야 일요일에만 쉰다.
할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인데,
40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택시 운전을 한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기억 속 모든 일상을 할머니와 함께했다.
호칭만 할머니이지, 사실상 나의 엄마인 셈이다.

초등학교는 학부모 참관 수업을 자주 한다.
아빠는 일을 했기 때문에 거의 오지 않았다.

참관 수업 전, 가정통신문을 내밀며
“아빠 올 거야?”
 라고, 물으면
난감한 말투로 “아빠는 일 가야지”라고 했다.
그럴 때면 교실 뒤편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와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남들이 늦둥이라고 생각할 만큼
우리 할머니 참 동안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부끄러웠다.

친구들이 저마다 뒤돌아보며 엄마를 찾고 손을 흔든다.
그러다 옆자리 앉은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너네 엄마는 어디 있어?”

고작 초등학생이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럴 때는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이때부터 나의 거짓말은 일상이 되어 따라다녔다.

“엄마 회사 가서 할머니가 왔어.”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엄마 없는 아이라고 낙인찍히고 싶지 않아 본능적으로 한 말이었다.

그렇게 거짓말로 만들어낸 엄마는 회사원이 되었다가
여행을 가기도 하고, 야근도 했다.

교사와 상담하는 날이면
가족 관계를 적어서 내야만 했다.

[부 : 홍길동, 모 : 없음]

담임의 반응은 저마다 다르다.
이유를 묻기도 하며
뜬금없는 위로를 하기도 한다.
나의 일상을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 상담은 충분한데..
굳이 엄마의 이야기로 상담의 절반을 보내는 것이 불편했다.

초등학교는 교사가 각 교실에 있지만,
중, 고등학교는 교사들이 파티션으로 책상만 가린 채 서로 모여있기 때문에 상담할 때 혹여나 다른 교사가 듣기라도 할까 온 신경이 나를 불편함으로 이끈다.

엄마가 없는 것은 괜찮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거짓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2년 동안 나는 거짓말쟁이로 살아왔다.

필요 없는 위로와 동정심을 받고 싶지 않아 웃어야만 했고, 엄마가 있는 척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했다.

친구에게 엄마가 없다고 말하면
“그래도 되게 밝게 자랐다”라고 대답한다.
이 한마디는 나의 마음을 더욱 닫게 만들었다.

지금은 이 글처럼 엄마는 없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하지만 학창 시절 어린아이에게 엄마의 부재는
큰 약점이 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친구랑 싸운 적이 있다.
상황이 격해지자
그 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 엄마 없어서 봐주려고 했는데”

그 앞뒤의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 한마디가 여전히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다.

어쩌면 엄마가 없는 게 나에게 상처라기보단
주변의 반응이 상처였다.

엄마가 없어서 그렇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작은 흠이라도 잡히면 왕따가 될 것만 같아서 더욱 필사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불완전한 아이들 사이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이었다.



요즘 시대를 이해하고 챙겨주는 젊은 엄마는 없었지만
더욱 다정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 음식은 너무 맛있어서 하나 같이 공장 차려서 팔고 싶단 생각밖에 안 든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싸준 김밥을 들고 소풍에 가면
애들이 엄마 김밥은 맛없고 내 김밥이 맛있다며
다들 하나씩 바꿔먹었다.

다른 엄마들보다 나이도 많고 투박하지만
나의 할머니는 여느 엄마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었다.

따스한 나의 할머니, 전순자 씨와 지내온
거짓말쟁이의 삶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우리 모두 노인이 되니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노인을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적는다.



첫 번째 情(정)
[한부모 가정에 대한 대화]

괜찮냐고 물으며 쓸데없는 연민을 느끼지 말았으면 한다.
이혼 등의 사유도 가볍게 물어선 안된다.
그냥 사연이 있었겠지 하면 된다.
우리의 아픔을 굳이 들추지 않았으면 한다.

가정의 사연을 말하면
유독 불쌍해하며 연민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연민을 느끼며 무언가를 해주고 싶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티 내지 말았으면 한다.

원치 않는 위로와 연민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연민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아닌,
상대를 위로해 주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크기 때문일 것이다.

다소 공격적인 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상처가 있는 그들에게 추가적인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당신에게 가정사를 밝혔다면
“그랬구나."
한마디면 충분하다.

“힘들었겠다.” “괜찮아?” 등 보다 훨씬 편안함을 느끼는 대화가 된다.
대화는 정말 어렵지만 경청해야 한다.

할머니는 항상 자신의 과거 이야기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 그저 누군가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럴 때도
“그랬구나.”
하면 할머니는 이야기를 털어놔 시원해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대화가 잘 안 된다.
과대광고 청소용품 홈쇼핑을 보며
할머니가 “에이 저런 게 어딨 어.”라고 하면,

할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저깄잖아.”라고 말한다.
대화가 단절된다.

공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남편보다
듣기만 하는 손녀딸이 대화 상대로는 더 나았던 것이다.

나와는 별다른 말싸움이 없으니 점점 속마음을 많이 이야기한다. 그리곤 할머니는 마지막에 이 한마디를 꼭 한다.
“할아버지한텐 비밀이다?”

첫 번째 情(정).
경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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