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꿈샘 Mar 17. 2024

6.생계형 명퇴 교사가 찾고 있는 것은?  

생계형 명퇴 교사가 찾고 있는 것은?

"20년 차 명퇴 교사입니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자꾸 묻어 봅니다.

"왜 명퇴하셨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퇴직을 한 이유를 다 열거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퇴직을 한 이유를 밝혀 점점 사그라드는 교직에 한 줄기 희망이 될 리도 없어 퇴직 사유에 대해서는 선택적 함구를 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저 생계형 교사였고, 준비 없이 퇴직한 교사일 뿐이었습니다.

쓰고 보니 짠한데 앞으로 말할 저의 퇴직 후 삶에 대한 이야기는 때론 바보 같고, 아주 드물게는 날카로우며, 어쩌다가 블랙 코미디 같은 불량한 퇴직러의 일상 관찰 에세이 장르임을 미리 밝힙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래도 눈치 없이 누군가 왜 그 좋은 교직을 두고 나왔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잃어버린 유머를 찾기 위해 나왔어요!"


20대 깨 발랄했던 저는 교직에 있는 동안 기름기가 쫘악 빠진 장작 구이처럼 유머가 모두 증발해 버렸어요. 가끔 교직에서 유머가 살아 있는 동료를 볼 때마다 아직 교직은 살 만하구나! 새삼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답니다. 특히 친했던 이00 교사의 잔망스러운 유머를 볼 때마다 '그래! 우리에게 희망은 있어!' 라며 안도했어요. 이00 교사의 저 유머가 사라진다면  2호선 환승역 앞에서 이제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끝났습니다.라고 외칠 준비를 해야겠어요!



학교에 있을 때 가끔 연구실 한 켠에 서서 믹스 커피를 홀짝이며 제 얼굴보다 조금 큰 창 밖으로 보이는 네모진 학교 건물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건축가 유현준 씨가 현대 학교는 감옥과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학교 근무도 안 해 본 그가 건축가라는 이유만으로 그걸 간파했다는 사실에 전문가는 역시! 라며 혼자 감탄했어요. 그리고 이후는 분노했습니다.

그 말 때문에 공간 혁신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헤집고 다니는 교육 행정가들의 발상을 미워했고, 그리고 그 예산 쓰기에 골머리가 아팠을 선생님의 스트레스 지수에 공감했어요. 우리의 에너지는 항상 가르치는 교과서가 아닌 항상 에듀파인과 나이스와 통합 메신저를 향해 흘려가니까요.


우주의 주파수가 엉뚱한 곳으로 발산하는데도 공교육은 잘 굴러갔고, 그 배경에는 능력 좋은 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난 동료 교사들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거든요. 학교 밖을 나와보니 그들의 도덕 지수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근무했는데도 저는 벚꽃이 만개하는 계절에도 점점 병든 닭처럼 고꾸라지고 있었다니!


학교 밖을 나오겠다고 결심한 작년에는 많은 일이 있었어요. 국민적으로 공감하고 많은 교사들이 분노한 사건이 있었고 학교를 나올 때 쯤, 선생님의 순직 인정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죠. 하지만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년, 저의 동료 교사는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교직에 들어오고 싶었던 친구는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워 당당히 이겼지만 학교 내에서 손톱만큼의 배려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친구는 다시 휴직을 선택했다. ) 여전히 교직은 누군가의 시 구절처럼 바늘 끝에서 춤출 수 없는 천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연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춤 줄 수 있는가?"


시인의 질문에 퇴직 교사로서 답변하자면,


"지금 시스템으로는 불가합니다요."


며칠 전, 신문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올해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치라고.... 그 해결 방안으로 기형적인 입시 제도의 교정과 초등 늘봄의 확대라고 제시한 걸 보고 푸하하 웃었어요.


그 머리 좋고 뛰어난 인재들을 공교육으로 데리고 와서 진흙탕 속에 밀어 넣고는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업무보다 교육 본질에 충실하게 해 주면 되는데. 전문가가 아닌 나도 답을 알겠는데 참 우스운 현실입니다.


때마침 퇴근한 남편에게 다가가 이 기사가 웃기지 않냐며 냥냥거리며 물었습니다. 같이 웃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걱정도 많고 나의 퇴직으로 불안 지수가 급 상승한 1호 가장은 매우 진지한 눈빛을 발사하며 저에게 물었어요.


"그런데 이젠 뭐 먹고살 거야?"

"아!"


제 유머가 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병든 닭으로 살더라도 교직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고 말하면 어쩌지?


앞으로 생계형 퇴직러인 저는 과연 절대 유머를 찾을 수 있긴 할까요? 남편의 질문에 저는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조만간 이 손가락만 빨고 있지 않을까? 불안과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밤입니다.

이전 05화 5. 명퇴 후, 가족의 리얼 반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