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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샘 Mar 19. 2024

7.명퇴 이후 삶은 혼란스럽습니다.

명퇴 이후 삶은 혼란스럽다.

영국의 석학자인 린다 그래튼은 그녀의 책 <100세 시대>에서 앞으로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사라질 거라고 말했어요.


전통적인 삶이란 교육 - 일 - 은퇴의 삶이죠!


대신, 다가오는 미래에는 교육-일-휴식 -재취업 -교육- 휴식- 일.... 의 여러 단계의 삶이 나타날 거라고요.


제가 워낙 좋아하는 학자라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끄덕했었죠.


그런데, 그녀가 말한 여러 단계의 삶이 제게 시작되었다는 걸 오늘 깨달았어요.


저는 거의 18년간 교육을 받았고 20년 초등교사로 했으며 은퇴를 했으니 딱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생계형 퇴직자라 은퇴가 아닌 바로 일을 시작하니까 여러 단계의 삶 속으로 걸어간 셈입니다.


린다 그래튼의 말에 의하면 재취업을 위해서는 여가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교육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한데요. 저는 아직 여가도 교육도 아닌, 그저 밥벌이의 삶을 바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이 여유를 즐기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마땅하지 않아 다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고, 저는 쉬려고 명퇴를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나온 것도 있거든요.


다만, 요즘 제가 느끼는 혼란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입니다.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 세상과 리얼 세상은 정말 차이가 많이 나서 아찔할 정도입니다.


먼저, 새롭게 배워야 할 게 참 많습니다. 교사가 아닌 다른 직업인으로 산다는 게 완전히 다른 언어를 배우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자 등록증을 내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우여곡절 끝에 냈긴 했습니다.


둘째,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어진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찾아서 일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저는 굉장히 경직되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원하는 업무를 한 적이 거의 없었던 저는 매우 수동적인 자세인 셈이죠! 학교 밖을 한 번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나 00 선생님은 이런 저를 보고, 따끔하게 충고했어요.


"김샘! 지금 학교에 있는 게 아니에요! 일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셔야 합니다!"


나를 잘 챙겨주고 아껴준 선생님이라 그 말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제가요, 이런 것도 할 줄 알고.. 또 이런 강연도 가능하고..."


어떤 날은 이런 말을 못 하는 있는 저 자신을 보고, 아! 큰일 났다. 어쩌면 나의 최대치를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학교 밖을 나왔는데 어쩌면.. 정말 어쩌면.. 학교 안 나의 모습이 최대치가 아니었을까?? 그런 불안감이 마구마구 올라옵니다.


생각보다 저를 모르고 산 느낌입니다. 20년 세월 동안 입고 산 옷을 당장 버리라고 한다면 저는 아쉬워서 애착담요처럼 질질 끌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나 봅니다.  


누구 앞에서 돈 이야기를 꺼내 본 적도 없고, 나를 알려야 하는 이유도 없었는데 새 옷을 입은 저는 혼란스럽네요. (제가 시작하는 일이 수업료가 얼마이고, 또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려야 하니까요!)


저는 학교 안에서 행복하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나왔는데요. 시작하는 이 순간, 벽과 마주한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저 벽을 부수어야 제가 다른 쪽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매일매일 깨우치고 있습니다.


아직 걸음마도 안 뗀 수준으로 진행된 명퇴 후 삶이지만, 변화의 충격파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 달라서 어떤 이는 그 변화 속에 춤을 추기도 할 거고, 또 어떤 이는 주저하고 망설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순간이라고 봅니다. 제게는 더 그렇습니다.


조금 더 가 보겠습니다. 아직 벽이 만져지긴 한데, 언젠가 잘 넘어갔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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