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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Mar 13. 2024

어머니, 아이가 없어졌어요!

이런 말을 회의 중에 들을 줄이야

어제 있었던 일이다.

월요일은 오전부터 시사에 회의에 합본까지 보통 오전부터 자정까지 일이 끊이지 않는 날이다.


한참 회의를 하고 있던 오후 시간,

아이 학교이름으로 전화가 왔다.


학교 이름으로 발신인이 뜨면 마음이 철렁한다.

밝은 생각을 하려고 해도 본능적인 공포감이 든다.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좋은 일로 전화를 받은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열이 난다거나, 친구랑 갈등이 있다거나 등등의 일들 말이다.


회의 중이었기에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별일 아닐 거라 믿으며.

기대와는 달리 숨을 헐떡이는 돌봄 교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이준이가 지금 없어져서요! 찾고는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일단 상황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아찔했다.

아니. 근데 이걸 이렇게 담담하게 말씀하신다고?


너무 당황한 내가 제대로 대답을 못하자 말씀을 이어가셨다.


“제가 심부름을 보냈는데, 올 때가 됐는데 안 오더라고요. 태권도 차가 와서 태워서 보내야 하는데 계속 아이를 못찾고 있어요.”

더 황당했다. 심부름이라니...


애써 이성을 찾고, 평소에 아이가 학교에서 대변보는 걸 창피해해서 갑자기 배가 아픈데 창피해서 화장실에 숨어 있을 수 있으니 거기 먼저 찾아봐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모든 층의 화장실을 가보겠다고 했다.


일단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선생님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아니, 선생님 심부름을 보냈는데 없어졌다니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반격(?)이었다.

선생님은 원래 다른 친구들도 심부름을 종종 보내고 있고 다들 알아서 잘 갔다 오는데 이준이만 없어졌다고 했다.


그리곤 일단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태권도 사범님에게 상황을 말씀드렸다. 당황했을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바로 전화를 주셨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가는 건 못 봤으니 분명 학교 안에 있을 거라고, 밖으로 나간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 사범님의 목소리도 떨리는 듯했다.


부정적인 상상을 하면 정말 그렇게 될까 봐, 애써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무서운 생각이 자꾸 들었다. 설마 어디 가서 많이 다친 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나올 것 같던 그 순간 전화가 왔다.


“어머니 이준이가 컴퓨터 수업에 가 있었더라고요! 그걸 제가 깜빡했네요.”


심부름 보냈다고 하시더니 컴퓨터 수업은 뭔가 싶었지만,

월요일이 방과 후 수업을 시작한 첫날이라 선생님도 아이도 착오가 있었나 보다.


그래, 찾았으니 됐다. 원망하지 말자.

하교 스케줄이 꼬여 당황했을 사범님께도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전화를 드렸다.




아이 학교와 14km 남짓 떨어진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내가 아이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사 내가 초능력이 생겨 날아서 학교에 간들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력감과 죄책감이 뒤범벅 됐지만,

회의를 마저 하고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편집실에서 합본을 하고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왔다.

아이는 아빠와 곤히 자고 있었다.


어찌 보면 워킹맘으로서의 한 단계 레벨업이자 경험치가 쌓인 날이기도 한데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물론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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