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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un 09. 2023

나를 벌벌 떨게 하는 부재중 전화 목록

끝내 덤덤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전화들

매주 목요일은 연출을 맡고 있는 <살림남> 스튜디오 녹화 날이다.

장수프로그램인 만큼 큰 변수 없이 진행되곤 한다.

여기서 나의 롤은 vcr을 플레이하며 멘트를 할 타이밍을 조절하는 일이다.


오늘도 순조롭게 녹화 중인데, 초1 아들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모든 엄마들이 가장 공포스러워 하는 연락 아닐지

수십 명의 스태프가 모여서 하는 녹화이기에, 프로그램의 메인피디 입장에서


"여러분~ 아들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 좀 하고 와야 해서 녹화 좀 끊을게요." 할 수가 없다.


애써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태연한 척 녹화를 이어가는데, 메시지에 이어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돌봄 교실 선생님 부재중 전화 3통 (*원래 한 번에 안 받으면 연속적으로 전화를 하시는 편)
-하교를 담당하는 태권도 사범님 전화 1통

이렇게 아이의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부재중 전화가 미친 듯이 와있다.


덜컥 겁이 나고 무서웠다.


살림남 출연자 중 손꼽히게 밝은 김수찬의 vcr을 보는 중이었는데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남편에게 상황 파악을 해보라고 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심지어 남편도 어제 응급실을 다녀올 정도로 몸이 안 좋았어서 더 마음이 쓰였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녹화를 부랴부랴 마치자마자 통화해 보니 아이가 40도 정도의 고열로 하교를 못하고 보건실에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먼저 달려가서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고, 나도 급히 병원으로 가서 축 늘어져있는 아이를 챙겼다.


열로 병원을 가면 늘 그렇듯 코로나 검사와 독감검사를 순차적으로 했고 다행히 음성이 나와 집에 왔지만 아직도 열이 오락가락하고 엄마를 옆에 자석처럼 붙여두고 있다.


덕분에 아이의 구몬도, 독후감도, 태권도도

나의 크로스핏도, 모니터링도,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모든 일상의 즐거움과 의무를 올스탑한 채 몇 시간째 요괴워치를 강제로 아이와 동시 시청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시원하게 내린 비처럼 오늘 새벽도 열감 없이 무사히 지나가주었으면 좋겠다.


늘 가족들이 건강하게 아침을 맞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는 편인데, 더 마음을 담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아픈 것과 무관하게 '아이가 젓가락질을 잘 못하니 에디슨 젓가락을 보내달라.'는 얘기를 하려고 연락을 하셨던 것이었다.


학교에서 오는 모든 전화에 벌벌 떠는 나와 같은 초보 엄마들을 위해 학교에서 전화 발신 시 "별 일 아닐 수 있음, 겁먹지 마시오" 이런 메시지라도 뜨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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