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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Mar 31. 2023

할머니가 공부까지 봐줘야 하나요

"애 봐주는 공 없다더니..."

애 봐주는 공 없다더니...


우리 엄마가 자주 했던(?) 말이다. 7년 전쯤 1년 여의 육아 휴직 후 복직을 하며 아이 봐줄 것을 부탁했을 때, 필사적으로 거절하고자 했던 엄마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런 말이 있어. 애 봐주는 공 없다고. 그래서 애 안 보고 싶다 솔직한 말로...




그러나 이런 거절의 말이 무색하게 나의 엄마는 약 4년째 손자의 방과 후 육아를 담당하고 있다. 


근무시간으로만 치면 오후 3시에 돌봄 교실에서 나오는 아이를 픽업해서 수영 셔틀버스에 태우고, 

오후 5시 반에 집으로 데려온 뒤 우리 퇴근 시간인 8~9시까지 돌보는 일과다.


순수 시간으로만 따지면 5시간 미만이지만 이동시간까지 합치면 7시간이 넘는 엄연한 근로다.

그래서 거의 내 월급에 준하는 페이와 교통비 등을 드리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이 늘 불편하다.

육아가 얼마나 힘들며, 영악한 아이가 유독 할머니를 얼마나 만만해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말은 대체로 다 안 듣지만, 그중 가장 안 듣는 분야가 바로 '매일 학습지 풀기'이다.

우리 때부터 대대로 내려온 구몬이란 학습지는 매일매일 해야 할 양이 있다. 그걸 저녁 먹기 전에 할머니와 해놓으면 우리가 와서부턴 학교 숙제를 챙기거나 놀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순탄하게 될 리가 없다.

우리가 퇴근해 오면 늘 학습지가 그대로다. 퇴근하고 왔는데 더 큰 할 일이 남아있는 걸 매일 마주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우리 눈치를 보며 엄마는 말한다.

"안 한대~"


결국 나나 신랑이 옷도 제대로 못 갈아입고 졸려하는 아이를 잡고 혼내며 시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걸 노골적으로 엄마한테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앉아서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잡고 앉아서 하게 하는 게 얼마나 감정 소모가 큰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내 눈에는 엄마가 이미 지쳐 보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분명히 매 달 페이를 드리고 있고, 우리 모두가 괴로운 일이니 장모님이 잘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서운했다. 70세가 넘으신 시어머니가 애를 보고 있어도 그렇게 냉정하게 말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우리 남편은 그럴 사람이다. 그리고 그전에 아마 우리 어머니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무를 완수해 놓으셨을 것이다. (엄마 미안)


어쨌든 그렇다고 엄마를 혼낼 수 없다. 좋게 얘기는 해봤다. 그런데 의지가 없다. 내 자식이 공부를 싫어하며 말을 안 듣는 건 팩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논리는 점점 더 약해진다.


그래서 나는 엄마 대신 내 자식을 울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렇게 할 일을 안 하면 할머니를 다신 볼 수 없으니, 학교에서 집으로 이제 혼자 오라고 했다.


더 큰 충격을 주기 위해, "할머니한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하자"라고 했더니 울음이 터져벼렸다. "오늘부터 할머니랑 구몬을 꼭 하겠다."라고 눈물의 맹세를 한다. 


과연 오늘 나의 퇴근 후 풍경은 어떨까. 


엄마가 버릇처럼 말했던, "애 봐주는 공 없다더니..."라는 말만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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