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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Mar 12. 2024

김치찌개에 정답은 없는데

아무래도 사진이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기분... 



나는 한때 채식주의자(페스코)였는데, 그때 김치찌개엔 김치와 몇 가지 채소(양파, 버섯, 파)가 들어갔다. 멸치다시마 육수를 내서 정성스레 끓였는데, 그것은 김칫국에 가까웠다. 남편은 잘 먹었지만, 낙심한 눈빛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미어져, 한동안 참치김치찌개를 끓였다. 남편은 여전히 잘 먹었으나,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춧가루와 고추장이 줄지 않던 한동안, 우리집에 김치찌개는 없었다. 그리고 10년쯤의 세월이 지나, 첫째에 이어 둘째도 김치볶음밥이나 떡볶이에 환장하면서, 김치찌개가 돌아왔다. 그사이 나도 음식이나 요리에 대한 가치관과 기준이 달라졌다. 흐트러졌달까, 유연해졌달까.


이제는, 남편처럼, 김치찌개엔 돼지고기가 들어가야 제맛이라고 생각한다.


1. 커다란 냄비에 김치, 김치국물, 돼지고기, 양파, 물을 넣고 강불로 끓인다.

(김치가 맛있으면 8할은 성공인데, 왕년에 맛있었던 김치 포함이다. 물은 쌀뜨물이면 좋다.)


2. 바글바글 끓으면, 거품은 걷어내고 다시마 몇 장과 들기름을 휘휘 보탠다.


3. 약불로 줄여, 뚜껑 닫고 40-50분.

(딴일을 하자!)


4. 막판에 파 송송송. 입맛에 따라 국간장, 고춧가루를 더한다.






첫째는 '문제 맞히기'를 좋아한다. 밥 먹을 때마다 수학문제를 내달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즉석에서 문제를 생각하고 암산으로 채점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서 곤란해진 때문만은 아니고...) 세상엔 언제나 '정답'이 있는 게 아님을, 실제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는 걸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 들어봐. 할머니, 임산부, 아기, 장애인, 목사 이렇게 다섯 명이 배를 타고 가는데, 풍랑이 몰아쳐서 몽땅 빠지게 생겼어. 구명조끼는 단 하나야. 누구를 구해야 할까?

1호/9세: 음... 아기? 

나: 왜?

1호: 아기는 혼자 수영도 못하고...

나: 그럼 장애인은? 

1호: 아... 장애인도 물론 도움이 필요한데, 아기는 아직 얼마 안 살았으니까...

나: 그럼 임산부는? 생명이 둘인데?

1호: 흠... 그렇지. 그럼 임산부.

나: 그런데 할머니는 나이가 많으니까 그냥 돌아가셔도 되는 거야?

1호: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으... (머리 쥐어뜯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쯤에서 교훈으로 마무리하려는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둘째가 외쳤다. 마치 "빙고!"를 하듯이 확신에 차서.


2호/7세: 목따님!!!

나: (엥? 목사님은 그냥 넣은 건데...) 왜...?

2호: (생글생글) 목사님을 구해준 다음에! 목사님 보고 하나님한테 기도해서, 죽은 사람들 모두 다시 살려달라고 하면 되지!

나: 그... 그렇구나...


ㅋㅋ 졌다. 둘째의 믿음 혹은 진정 틀에 박히지 않은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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