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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Apr 26. 2024

남자로 보이기 시작할 때

너만 보인단 말이야

그 남자를 처음 안았다


다이브 마스터를 하기 위해서는 EFR(응급처치)을 취득해야 한다. 응급처치를 배우기 위해 강의실에 왔다. 은서(가명)와 아영(가명) 언니는 같이 다이브 마스터를 하는 동기가 되었다. 내 옆에는 준 강사도 있었다. 실습을 진행하는 민(가명) 강사는 은서와 아영 언니가 한 팀 그리고 나와 준 강사로 한 팀으로 짝을 지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겹치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진정시켰다. 그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떨렸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 쫌! 그만 설레라고! 실습 시간이잖아!'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심폐소생술과 하임리히법을 배웠다. 민 강사는 상체만 있는 마네킹으로 심폐소생술을 보여 주었다. 체중을 실어서 흉부압박을 30회를 하고 인공호흡을 2회를 했다. 난생처음 배웠다. 배우는 시간이 즐거웠다. 하임리히법 배울 차례다. 하임리히법은 음식이나 이물질로 인해 기도가 폐쇄되었을 경우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 민 강사는 준 강사 뒤에 서서 겨드랑이 안쪽으로 그를 안았다. 명치와 배꼽사이에 주먹을 쥐고 나머지 손은 주먹 쥔 손을 감쌌다. 강하게 힘을 주면서 배를 안쪽으로 위로 밀쳐 올렸다.


은서와 아영 언니가 먼저 했다.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두근거리는 마음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준 강사가 먼저 내 뒤에 섰다. 겨드랑이 사이로 나를 감싸 안았다. 마치 연인들이 하는 백허그처럼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순식간에 하임리히법을 마쳤다. 


그날 그를 처음 안았다. 그가 남자로 보였다. 혼자서 좋아하고 혼자서 미쳐버리는 짝사랑이 싫지 않았다.

심폐소생술 / 하임리히법

매일 공기통을 나르는 남자


다이빙 포인트로 이동하려면 차 트렁크에 공기통을 실어야 한다. 공기통 무게는 꽤 무겁다. 매일 양손으로 두 개씩 나르고 또 나른다. 팔뚝에 있는 잔근육과 팔에 있는 힘줄이 보였다. 본능적인 이 끌림. 그의 잔근육과 힘줄을 볼 때마다 남성미가 물씬 느껴졌다.


그가 공기통을 나르는 횟수만큼 자꾸만 내 마음은 커져갔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

나를 구해준 남자


다이빙 횟수가 20회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수진(가명) 오빠, 아영 언니, 준 강사와 함께 두 번째 다이빙을 시작했다. 수심 5m. 바닥에 있는 모래가 흔들렸다. 그들과 조금만 떨어져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예쁜 산호가 아닌 부유물로 가득했다. 내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센 조류에 당황했다. 호흡이 가빠졌다. 평소보다 공기를 빨리 소모했다. 수심 15m에 들어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닷속은 평온했다. 40분 동안 다이빙을 하고 준 강사는 출수 지점으로 안내했다.


출수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조류의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장 앞에는 준 강사가 있었고 수진 오빠와 아영 언니가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나가는 방향이 좁은 통로라서 한 사람씩 통과해야 한다. 그들도 힘들어 보였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도 평소보다 더 힘차게 핀킥을 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조류 방향으로 내 몸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들도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호흡기를 문채로 말을 했다.


"강사님!!! 살려주세요. 제발 뒤 좀 돌아봐요!!!!"


나에게만 들리는 내 말.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일렁거렸다. 내 몸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또다시 바다에 빠진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순간 엄청난 공포심과 두려움을 느꼈다. 뒤로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빠르게 숨을 쉬었다. 내 공기가 얼마나 남았는지 체크했다. 공기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페닉 다이버가 되기 직전이었다.


'나 이대로 죽는 건가?'


얼마나 버텼는지 모르겠다.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그때 저 멀리서 사람 형태가 보인다. 준 강사다. 그에게서 빛이 났다. 그 순간에 보디가드 OST 《휘트니 휴스턴(Whiney Houston) - I Will Always Love you》가 귀에서 울려 퍼졌다. 그는 내 상태를 살펴보고 공기량을 체크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수진 오빠와 아영 언니가 있는 곳으로 데려왔다. 수심 5m에서 3분 안전정지를 마치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헤바씨! 괜찮아요? 기다리는데 안 와서 걱정했어요!"


괜찮다는 말도 못 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놀란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안심이 되었다. 나만 마지막 다이빙은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안정을 되찾아 갔다. 그날 저녁 나는 준 강사에게 말했다.


"강사님! 저 이제 괜찮아요!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당연히 제가 챙겨야죠! 다행이에요. 계속 걱정했어요"


매일 다합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어느 날에는 약한 조류를 만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에는 강한 조류를 만나기도 했다. 나에게 페닉이 오지 않도록 다이빙에 더 집중했다. 다이빙 횟수가 늘어날수록 조류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바닷속에 있는 그가 멋있었다. 강사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거겠지만 나는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그가 어디에 있든 그 남자만 보였다.  

다른 남자 말고 너

안전을 생각하며 천천히 다이빙의 세계로 또 그에게로 빠져들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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