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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트라 Mar 05. 2024

남편도 없고 애도 없는데 뭐가 문제야?

파리지앵 할머니와 유쾌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내 인생 2막이 펼쳐지는

역사적인 순간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잠이 미친듯이 쏟아졌지만

당장의 마음이 휘발되는 것이 아쉬워

꾸벅꾸벅 졸면서 일기를 썼다.



 (...)  회피와 도피가 되지 않으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정리를 하고 떠나왔다.
어릴 때는 이쯤 되면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설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지난 나의 결혼 생활을 생각해 보니 마치 바람 한 방에 소리 없이 무너지는 모래성 같다.
그동안 단단한 흙집이라고 믿으며 성실히 흙을 쌓아왔는데..
솔직히 말하면 슬프지도 않다. 옴팡 무너진 모래성을 보니 앗싸리 속이 시원한 것 같기도 하다.  더 이상 이제 '이게 모래일까? 흙일까?'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모래성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졌지만,
이제 나에겐 흙과 모래를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눈이 생겼고, 집을 쌓을 수 있는 힘과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
오히려 극적이라 나름 근사하고 훌륭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더 확실히 견고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그래서인지 삶에 좋고 나쁨은 없다는 생각이다. 선택만이 있을 뿐. 나는 그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러고 보면 책임이라는 건 대단히 멋진 권리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마땅한 존재가 내겐 없어서, 그 아쉬움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이제 조금 헌신적이고 책임을 다하는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값진 일인지 알 것 같은데.. 아쉽다.
거친 바람이 불어 설령 나를 갉아먹는다 한들, 온 힘을 다해 책임지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아쉽다.
그러한 존재가 내게 없다면, 나는 이제 나에게 그 사랑을 쏟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 자신만큼 사랑할 인연을 만날 수 있으려나?
 
| 2023년 5월 25일 목요일



파리 2구의 작은 아파트먼트.

70대 파리지앵 할머니와 4박 5일 동거가 시작되었다.


일관성 없는 오브제들이 밀도 있게 들어서있는 작은 공간.

여러 그림들과 사진, 아크릴판, 재떨이, 용도를 알 수 없는 모니터, 심지어 마네킹 다리까지 가득하다.

한 공간을 파티션으로 나누어 잠을 자고, 주방과 화장실은 쉐어한다.



푹 자고 싶었지만,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주방에서 무언가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이어서 들려오는 할머니의 목소리

"울랄라~"


울랄라는 파리에서 공부한 친구 재란에게 종종 들었는데, 이렇게 현지인이 하는 울랄라를 들으니 마냥 신기하고 재밌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파티션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할머니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백발에 안경을 쓴 통통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별일 아니라고 나를 안심시킨다.

그리곤 잘 잤느냐고 생긋 웃으며 내게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할머니는 내게 "커피 마실래? 아니면 차?"라고 물었고,  나는 커피가 좋겠다고 대답했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할머니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파란색 린넨이 덮인 넓은 테이블이었다.

할머니는 지난밤 테이블에 나란히 놓인 소파에서 주무셨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서류와 스테이플러, 맥북과 담배가 있었다.

아마 이 테이블과 소파가 할머니의 주 활동 공간인 듯하다.




파리지앵 할머니가 준비해 주신 조식메뉴는

커피와 아몬드밀크, 그리고 토스트와 요거트.


할머니는 아침엔 간단히 커피만 마신다며,

나머지는 다 날 위한 것이라고 했다.

냉장고에 버터도 있으니 원한다면

토스트에 버터를 발라 먹어도 좋다고.

나는 냉큼 냉장고로 가서 버터를 들고 왔다.






우리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할머니는 아트컬리지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은퇴를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의 영어는 유창했다.



곧이어 나도 나를 소개했다. 더듬더듬 부족한 영어로.


“음, 저는 한국에서 요가를 가르쳐요. 글을 쓰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는 얼마 전 이혼을 했어요..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 모든 일을 중단하고 떠나왔어요.

파리에 도착한 어제는 제 생일이었고요. 4일 뒤에는 결혼기념일이어요.

매년 마주할 결혼기념일을 슬픈 날이 아닌 기쁜 날로 기억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날에 맞춰 산티아고 순례길(까미노)을 걸으려고 이곳에 왔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 그래? 여기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면 되겠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 아직 좀.. 전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그게 왜? 혹시 한국에 아이가 있니?"

- 아니요. 아이는 없어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 그럼 뭐가 문제야? 건강하고 아이도 없고?


나는 “음...” 말을 흐리며 혼자 생각한다.

그러게,

다음 사랑을 하기에 적절한 타이밍, 그게 언제일까?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집 요모조모를 살펴보았다.


- 저... 실례인 줄 알지만, 괜찮다면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요?


"무슨 사진?"


-그냥 이 공간의 사진요. 제가 진짜 파리지앵의 집에서 머물고 있다니! 제겐 진짜 멋진 일이거든요! 사진에 좀 담고 싶어요.


“그래 그러렴. 여긴 조금 지저분하니 조심하고?”

할머니는 웃으며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 와, 그런데 집에 그림이 정말 많아요.


"그럼. 모든 것이 내 작품이지. 난 아티스트잖니."

할머니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다.


나는 쌍꺼풀이 없는 동양여성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저 그림은 사진인 줄 알았는데, 그림이네요?


"내 딸이야. 난 사진을 찍기보다는 그림을 그려. 그림엔 영혼이 있으니까."


그리고 덧붙이길, 자신의 첫 남편은 일본인이었고,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1시간가량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나갈 채비를 했다.

두 달의 짐을 백팩 하나와 기내용 캐리어 하나에 담느라, 꼭 필요한 것 아니면 들고 오질 않았는데,

파리에서 입고자 사치스럽게 챙겨 온 착장이 있었다.



발목까지 오는 긴 기장의 짙은 네이비 컬러 린넨 원피스. 테일러 카라에 편안함까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옷이다.

그 원피스에 선물 받은 멧앤멜 스카프를 목에 가볍게 두르고, 블랙 플랫슈즈를 신은 뒤 현관문을 나섰다.


복도에서 할머니를 마주쳤다.

할머니는 나를 쭉 훑어보더니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드레스가 아주 잘 어울려. 꼭 유러피언 같은 걸?”


할머니의 칭찬에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왜 여기서 계시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원래는 집에서 피우는데 싫어하는 게스트들이 있어서 나와서 피우신다고.





까미노를 걷기 전, 잠시 여행하고자 온 파리.

미리 준비한 건 오페라 티켓 예매뿐이었다.

계획 없이 느슨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걷다가 좋아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친구 재란에게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짜잔- 내가 너의 파리에 왔도다!’


그러자 바로 걸려온 재란의 전화.

이런저런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여행 시 필요한 간단한 불어 몇 마디를 배운다.



"인사할 땐, 봉쥬~흐 (BonJour)"

나는 따라 한다. “봉쥬흐!"


"음. 그리고 감사합니다는 메르씨(Merci)!

땡큐 베리머취는 메르씨 보꾸 (Merci Beaucoup)! “

- 메르씨 보꾸? 엄청 귀엽네! 메르씨보꾸!!!

 

"좋을 때는 트레비앙! 비앙비앙! (Très bien! bien bien! ) 아주 좋다!라는 뜻이야"

- 오케이! 나 지금 완전 트레비앙!!!


"못살아~ ㅎㅎ너처럼 명랑한 이혼녀가 어디 있다니?

아 이건 진짜 많이 쓰니까 꼭 기억해!

excuse me는 익스큐즈모아, Pardon은 파흐동. 

-발음 재밌네~ 익스큐즈므와아~ 파ㅎ흐도옹~ "


"너 이제 곧 계산해야 하잖아? 그럼 이렇게 말해봐.

라디씨옹 씰부뿔랭 (L'addition, s'il vous plaît)"

-뭔데? 그게?


"계산서 주세요라는 뜻이야.

라디씨옹이 계산서, 씰부뿔랭은 플리즈.

그리고 계산서 달라고 할 때 촌스럽게 일어나서 달라고 하지 말고, 손들고 기다려야 하는 거 알지? 유럽은 화장실 갈 때도 돈내야 하니까, 나가기 전에 카페 화장실 한번 꼭 들렀다가 가구"


-알았어 걱정 마. 바로 써먹을게. 라디씨옹 씰부뿔랭.... 씰부뿔랭...씰부뿔랭...


"아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만약 파리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 봉쥬~주쒸꼬레엔느~쥬뗌므~"

- 그게 무슨 뜻인데?

" 그냥 따라 해 봐. 봉쥬~주쒸꼬레엔느. 즈똄므~"

-봉쥬~쥬쒸 꼬레엔느~ 쥬뗌.... 즈뗌..? 야! 이거 쥬뗌므 I love you잖아? 코레엔느.. 코리안???!? 이 말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사랑해요! 맞지!?


"기지배~ 하여간에 눈치 참 빨라. 맞아~

Bonjour~ Je suis Coréenne. Je t'aime~"

-그래 앞에 알려준 건 다 잊어버려도, 내가 이건 무조건 외운다! 봉쥬흐! 주쒸 꼬레엔느! 쥬뗌므!!!!




카페를 나서서 한참을 걸었다.

5월의 파리는 무척 화창하고 아름다웠다.

걷다가 발이 아파서 Velib 자전거를 탔다.

한국이라면 치마를 입고선

자전거를 탈 엄두조차 못 냈을 텐데,

많은 파리지앵들을 보고 용기가 났다.

발목까지 오는 치마가 허벅지까지 펄럭였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방인은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


점심은 지디가 좋아한다는 우동집에 가서

우동 한 그릇과 생맥주 한 잔을 마셨다.

그다음은 바로 앞 뛸르리 가든에 산책을 하러 갔다.


아니 그런데

그곳에서 정말로 이상형의 남자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워커를 벤치 아래에 벗어둔 채,

호수를 마주 보고 앉은 수염이 많은 외국남자.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멀리서 그를 잠시 관찰했다.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빈티지한 그레이 린넨 셔츠에 블랙팬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팔 하나를 등받이에 걸쳐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다.

무려 두 권의 책을 겹쳐서!

무슨 책을 읽고 있나 궁금증을 자아낸다.


재란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봉쥬흐? 주쒸꼬레엔느. 쥬똄므~"

잠시 그에게 말 거는 상상을 하다가

이런 내가 기가 막혀서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곤 한참을 걸으며 생각한다.

아까 뛸르리 가든에서 만난 그 남자,

나는 왜 그를 보고 두근거렸을까?


그리고 그의 외관을 통해 끌렸던 것들을 정리해 본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환상이다.

나는 그와 말 한마디는커녕 눈도 한번 마주치지 못했다.


- 책을 통해 세상을 탐구(했을 것)

- 홀로 사색의 시간을 즐(겼을 것)

- 맨발로 태양을 즐기는 낭만 (자유롭다고 느낌)

-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옷차림

- 큰 체구와 여유로운 태도


나는 외적으로는 체구가 크고,

자연스럽고 편안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을,

자유롭게 세상을 탐구하고

혼자만의 사색을 즐길 줄 알며

여유와 낭만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라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나름의 분석을 해보았다.


동시에 놀라운 발견이 있었는데,

지금껏 살면서 내가 원해서 시작된 연애가 없다는 것.

부끄럽게도 먼저 대시해 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먼저 좋아해 봤던 상대는 있었던가?

어릴 때는 있었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를 좋다고 했던 남자 중에 괜찮았던 남자들과 교제를 시작했고, 결혼 또한 그랬다.

왜일까? 나는 아마도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안전한 방법을 선호했던 모양이다.


그리곤 다짐했다!

다음 연애는 내가 좋아하는 상대와 해야지!

가차 없이 차이더라도 꼭 내가 많이 좋아하고,

원하는 사람과 열정적으로 사랑해야지!


가슴이 뜨거워져서 발이 아픈줄도 모르고

씩씩하게 낭만의 파리를 힘차게 활보했다.





다음 목적지는 바스티유 극장.

파리 여행의 유일한 계획이었던

오페라 라보엠 (La Boheme)을 보기 위함이다.

바스티유 광장에서도 자유롭고 낭만 있는 파리지앵들을 많이 만났다.

뛸르리가든에서 본 이상형의 남자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아니, 도대체 이런 여유와 낭만은 어디서 오는 거야?


극장에서도 마치 영화 한 편 보러 온 듯한

사람들의 가뿐한 태도들이 눈에 띄었다.

연주도 커튼콜도 엄청났던 오페라.


연주가 끝난 후에는 파리지앵 사이에 끼어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파리지앵들의 삶을 보니 결심이 선다.


‘그래. 이 참에 유럽에 살아봐야겠어!

아침에 할머니 말대로 남편도 없고 애도 없고, 심지어 집도 없고 빚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문제야?‘


한국에서 했던 막연한 바람이

생생하게 실현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할머니 집으로 돌아와 열쇠로 문을 열기를 시도한다.

하루종일 잊어버릴까 봐 수차례 확인했던 열쇠.

무거운 열쇠를 꺼내 들고 구멍에 끼워 돌려본다.

잘되지 않는다.

늦은 시간이라 할머니가 주무실까 봐

나름대로 조심스레 열어보는데 잘 되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힘을 줘서 세게 돌려보자 문이 열렸다.

 

문을 여니 할머니가 소파에 앉아 이미 바깥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보고 웃고 계신다.

"Don't break my key~~"


나도 따라 멋쩍게 웃는다.

곧이어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열쇠도 여는 연습이 필요해~ 다시 해봐~”


나는 할머니 앞에서 몇 차례 문 여는 연습을 했고,

할머니의 오케이 사인을 받아낸 후에야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지친 표정으로 아침을 먹던 그 의자에 잠시 앉았다.


할머니는 안경을 고쳐 쓰며 내게 묻는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니?"


- 오늘 날씨가 좋았어요. 그래서 자전거를 탔고, 센 강을 걸었고, 바스티유 극장에 가서 오페라를 봤어요.


"오~ 어떤 오페라였지?"


- 라보엠이요.


"라보엠 좋지. 얼마를 주고 예매했어?

공연 전에 가서 남은 자리를 사면 저렴한데."


- 80유로 정도요. 아쉽네요. 다음에는 그렇게 해볼게요.


"오페라를 좋아해?"


-네. 좋아해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거든요.


"멋지구나. 그런데 지금은 왜 노래를 하지 않는 거야?


-음.. 저는 무대에 오르는 것이 힘들어요.

정확히 말하면, 경쟁과 평가가 힘든 것 같아요.

10년을 노래했는데, 기대만큼 잘 못했거든요.

분명 처음 노래할 때는 좋아서 시작했는데...

사실 지금은 노래하는 것이 두렵고 무서워요.


"난 한국엔 안 가봤지만.. 내가 가르쳤던 한국 학생들을 생각해 보면 능력이 뛰어난데도 자신감이 없어.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

경쟁사회에서 자라서 그런가?

한국 사람들은 모든 게 다 경쟁 같아. 경험도 배움도.

심지어 여행마저도 경쟁하듯 빨리빨리 해치우기 바빠.


- 맞아요. 공감해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노래하는 사람은 그저 멋있어. 전문가 사이에서나 좋고 나쁨이 있을 뿐이지. 노래하는 것은 너에게 즐거움을 주잖아. 그거면 되지. 즐겁고 좋은 거.


- 그런 날이 올까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전 가끔 새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볼 때면, 부러울 때가 있거든요. 자유로워 보여서요.


할머니는 하던 모든 행동을 멈추고 내 눈을 응시한다.

그리고 정말 다정한 눈빛과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한다.

"그럼~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또 뭔가 더 배우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하는 거야~ 느껴봐~ 즐겁게~알았지?“



- 네. 덕분에 힘이 나요. 고마워요.



그리고 나는 나의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할머니는 밤새도록 TV를 틀어두셨다.

우리 엄마도 밤새 저렇게 TV를 틀어두고 잠에 드는데, 이것 또한 만국공통인건가? 생각한다.


내일의 파리가 기대된다.

에펠도, 루브르도, 몽마르트도 아닌

할머니와의 아침 커피타임이 가장 기다려진다.


나는 내일 푸른 눈의 할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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