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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Aug 09. 2022

공격적인 사람의 특징(화를 참아야 하는 이유)

카타르시스의 심리학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전날 분명 같은 자리에 같은 옷을 입고 있던 같은 사람이 다음날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데자뷔일까요? 정신을 차리고 요금 화면을 보니, 그 사람의 사용 시간은 24시간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도 제가 보는 장면은 같았습니다. 그 자리의 연속 사용 시간은 48시간으로 늘어있었지요.



조금 후, 청소를 위해 자리를 둘러보다가 저는 숨이 멎을 뻔했는데요. 사흘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사람이 목이 꺾인 채 의자 뒤로 누워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당시 게임 중독자가 PC방에서 과로사한 사건이 종종 뉴스가 되었기에 긴장감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손가락 하나를 야무지게 펼쳐 그 사람 코밑에 대보았습니다. 순간! 드르렁 소리와 함께 자기 코골이에 놀란 그 손님이 잠에서 깨어났죠. 어색한 자세로 어색한 인사를 나눈 우리는 그날 이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게임에 중독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일 수도 있고요. 사람들은 왜 게임에 중독될까요? 게임의 종류에 따라 다를 테지만 공격적인 게임일수록 중독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정화(catharsis)를 하기 위함입니다.


정화, 혹은 카타르시스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은 원래 배설을 뜻하는 용어였습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갑자기 배탈이 났을 때, 겨우 만난 휴게소 화장실은 천국처럼 느껴지지요. 변기에 앉아 배설물을 떠나보낼 때 엄청난 쾌감이 동반됩니다. 이것이 바로 정화, 카타르시스입니다.


우리는 배변 활동뿐 아니라 감정으로도 카타르시스를 경험합니다. 대표적으로 분노 상황이 그렇지요.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어떤 행동을 하시나요? 마음속 울분을 겉으로 표현하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고함을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고, 유리컵을 깨부수면 기분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돈을 내고 방 안에 있는 물건을 마음껏 때려 부수는 스트레스 해소방도 존재했을 정도니까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두 화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화가 많은 사람은 공격적인 게임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처럼 착각하거든요. 숨어있는 적을 찾아 총으로 쏴 죽이고, 폭탄을 던져 상대편의 성벽을 무너뜨립니다. 좀비의 머리통을 피가 터지도록 날려버리면 통쾌하지요. 저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 상상하며 몰입한다면 쾌감은 배가됩니다. 화가 많을수록 공격적인 상황에 열광하고, 그 쾌감을 또 느끼고 싶어서 습관처럼 공격할 상황을 찾아냅니다.


게임뿐만이 아닙니다. 정화 경험에 익숙해지면 모든 공격적인 행동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당연한 듯 짜증 내고, 만만한 상대에게 화풀이하고, 물건을 폭력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예전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던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기가 쉬워집니다. 결국 화가 많은 사람, 별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 되지요. 하지만 이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힘들 때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이 되겠지요.




감정을 발산해야 속이 비워진다는 아이디어를 ‘정화 가설’이라고 합니다. 억눌렸던 감정은 해소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심리학자 브래드 부쉬먼 brad Bushman은 이 가설이 과연 맞는지 증명하려 했는데요.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해 먼저 에세이를 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에세이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했지요. 정화를 위해 먼저 화가 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비판을 받은 참가자들은 화가 난 상황에서 다음 단계로 이동했습니다. 샌드백을 마주한 것인데요.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오래, 많이, 세게 샌드백을 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참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졌는데요.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은 에세이에 대해 평가받은 사실에 집중하며 샌드백을 쳐야 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은 오로지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것처럼 샌드백을 치라고 요청받았지요.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은 샌드백을 치지 않았습니다.


정화 가설이 맞는다면, 상대를 떠올리며 화풀이하듯 샌드백을 때린 사람들의 기분이 가장 빨리 풀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더 고조되는 것으로 나타났지요. 건강을 생각한 사람들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공격성도, 부정적인 감정도 더 낮았습니다.




부시먼은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것은 마치 불을 끄기 위해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지요. 복수심이 불타오를 때, 그 사람을 해하려 들다가 기분이 더 고조되는 경험에 후회한 적 없으신가요? 오히려 나의 입을 더럽히고 나의 손이 더럽혔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고, 나의 선택을 되돌리고 싶었던 경험 말입니다. 때로는 그 욱하는 행동이 인생의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기도 하지요. 그 순간만 넘기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승진 시험에 낙방한 창희가 등장합니다. 그는 그날 아이스 라테 두 잔이나 들이켜지요. 왜일까요? 정답은 ‘설사하고 싶어서’입니다. 창희는 평소 우유만 먹으면 탈이 납니다. 그러니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마시면 바로 속이 불편해지는 것이지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아이스 라테를 마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저는 이 기분이 너무 좋아요. 다 쏟아내고 기진맥진한 기분. 
   팬티를 더럽히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안도감.”



그가 느낀 감정은 아마도 카타르시스였을 겁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 속에 있는 무언가를 다 쏟아내는 듯한 그 통쾌함을 설사를 통해서라도 느끼고 싶던 겁니다. 하지만 설사는 말이지요. 염산처럼 독한 위산이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배변 후에도 뒤가 화끈거려 휴지를 대기도 힘들어지지요. 순간의 통쾌함은 곧 지나가고 남는 건 불편한 몸의 통증뿐입니다.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은 쏟아내면 시원하겠지만 그 안에 위산처럼 자극적인 무언가가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쓰라리게 만듭니다. 냄새도 지독해서 주변 사람들이 코를 막고 피하도록 만들지요. 감정은 폭주하면 폭주할수록 우리를 더 괴롭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벽 뒤에 숨어 엄마 몰래 보던 <전설의 고향>이 생각납니다. 귀신들은요. 사람을 절대 해치지 않습니다. 그저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할 뿐이지요. 고을의 사또가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한이 풀려 저승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서양의 공포영화는 어떤가요? 한 많은 귀신이 복수심에 불타 사람들을 해합니다. 결국 퇴마사가 와서 그들을 쫓아내지요. 억울한 건 귀신 당사자인데 결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상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화가 난다고 남들을 괴롭히면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피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그저 말하면 이야기를 들어주지요. 감정은 꾹 참아서도, 지나치게 표출해서도 안 됩니다. 그 중간을 찾아야 합니다. 중간을 찾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만 꼭 해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지요.


감정은 그저 읽어주고 표현하면 됩니다. 화가 날 땐 화를 내지 말고 화가 난다고 말해보세요. 그렇게 나의 감정을 흘려보내 주세요. 비가 쏟아지는 여름날 바지가 다 젖었을 때, “아우, 썅! 날씨, 진짜 거지 같네!” 하며 우산을 집어던지지 마세요. 공격적인 당신 곁에는 누구도 함께하고 싶지 않을 거예요. 대신 “바지 축축하니까 기분 안 좋다.”라고 말해보세요. 그럼 곁에 있는 그 사람도 우리에게 공감해 줄 테니까요. 감정은 내가 알아줬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미 풀립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편을 들어주면 더더욱 그럴 테고요. 억압도 표출도 아닌 이해,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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