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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Oct 21. 2018

민주시민교육을 다시 그리며

-숙지고등학교 교사 오윤주

그래서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혁신의 굽이굽이 길을 지나오면서, 4차 산업혁명과 미래 담론의 세례 속에서, 숨 가쁜 시대적 전환점을 동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넘어오면서, 학생들과 만나 그날그날 해결해야 할 긴급하고 절실한, 혹은 소소하고 자잘한 문제들 앞에 서면서, 다시 마주친 고민은 그런 것이었다. 학교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학교의 존재 이유, 시민의 교육      

새로운학교네트워크의 중등 분과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하기로 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을 모으다 보면 공통된 그림이 그려졌다. 자율적이고 행복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공공의 장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면서 공동체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사람, 우리의 학생들이 그런 사람으로 커 가게 하고 싶었다. 학교가 사람들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통해 모두의 공동체로 운영될 수 있도록 민주적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들을 모아 이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 것인가 고민해 보면, 참 딱딱하고 어찌 보면 낡은 말 같아도 보이는 '민주시민교육'이란 단어가 떠올라 왔다.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따져 묻다 보니, 다다른 지점은 결국 '시민의 교육'이었다.   


민주 시민 교육, 국가 교육과정에도 교육의 목표로 명시되어 있고, 교육청이나 학교의 간판으로도 아주 흔하게 출현하는 단어이다. 누구나 학교에서 이것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또 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일까, 누군가는 또 강하게 회의를 품고 있기도 한, 그런 묘한 단어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살며 또 가르치는 그런 학교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우리의 눈과 마음으로 차근차근 모색해 보기로 하였다. 이 글에서는 2017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학교네트워크의 선생님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을 간략히 그려보기로 한다.           



교사는 시민인가      

민주시민교육을 하려면, 교사가 먼저 민주시민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온전히 시민일까? 우리는 민주주의를 살아가고 있는가? 먼저 교사-시민의 자리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첫 모임의 주제는 ‘공교육 교사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였다. 우리는 공교육 교사의 존재 방식으로서 ‘민주주의’에 주목하며, 이를 일상의 결마다 물들게 하여 교육의 장에서 구체화하기 위해 어떤 관점과 전략, 구조가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탐색하고자 하였다.


교육은 좋은 삶과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좋은 삶과 사회는 학교 안에서 먼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교사들의 공공성에 대한 사유, 대안을 그리는 힘, 더불어 가는 공동체로서의 학교 만들기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이 지점에서 실패하곤 한다. 학교 안에서 동료 교사들과 부딪치며 서로를 체념하면서, 교사들 자신이 더불어 사는 일에 회의하면서, 민주주의는 이상일뿐이라고 한탄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학교의 교육적 이상은 교무실을 넘어 교실 속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서로를 물들이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을 들리도록 하면서, 스스로의 옳음을 과신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흔쾌히 비판의 시선에 우리를 개방하면서 우리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것인가? 그 실체를 더듬어 모색하며 구체화하고 싶었다. 우리의 화두는 이런 것이었다.      


 첫째, 교육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둘째, 교사는 그 공공성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

 셋째,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학교 민주주의의 일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한 달에 한 번 모여 각자의 생각을 발제문으로 정리하고, 학교의 사례와 경험들을 모았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정련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을 읽고, 누군가를 초청하여 영감을 듣고, 함께 토론하는 포럼의 자리를 열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화두에 대한 답을 이렇게 정리해 갔다.      

∙ 공교육 교사는 누구인가그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 교사는 사랑에 기반한 책무성, 공동의 책무성을 발현해야 하는 이 

- 동시에 책무성이 교사의 헌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서 발현될 수 있도록 학교의 시공간과 맥락이 구성되어야 한다. 

- 공유 지점에 서 있는 이, 혹은 공유 지점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이        

∙ 생각이 다른 이들과 우리는 어떻게 만나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어가야 하나

- 수평으로 가며 물들이는 혁신이어야 한다. 

- ‘모두’의 목소리가 다 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 그 목소리들이 어우러지면서 공론의 장에서 정련되고 융합될 수 있어야 한다. 

- 나는 옳고 저들은 그르다는 생각이 민주주의를 추동하고, 동시에 민주주의를 망친다.  

- 내가 옳고 저들이 그르다는 전제 하에서는 투쟁이 필요할 뿐 토론은 필요 없다. 

- 때로는 합리보다 감성, 의제에 대한 논리적 설득보다 일상의 공유가 더 강력하게 변화를 이끈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끌어안는 마음의 습관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는 새로운 생각거리를 풍부하게 던져 준 책이었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책의 역자인 성공회대 김찬호 선생님을 초청하여 포럼 자리를 열었다. 파커 파머는 민주주의가 ‘다름을 끌어안는 마음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학교 혁신은 다른 것을 상상하고 도전하는 과정이며, 다름을 인정하는 줄타기를 끊임없이 하는 긴장의 과정이다. 


“차이를 만나면 거부하거나 동일시하려 하지 말고 환대하라. 그 긴장을 끌어안고 가라.” 우리가 마음에 새겨둔 구절이다. 때로 그 긴장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 때에는 ‘인간에게는 공동의 선을 지향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고 가자'고 한 김찬호 선생님의 이야기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참 어렵지만, 차이를 환대하며 힘겹게 걷는 그 걸음걸음이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 민주학교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믿는다.           



민주 시민 교육어떻게 할까     

2018년에는 그렇다면 어떻게 '시민교육'을 할 것인가를, 교육의 차원으로 눈을 돌려 고민해 보았다. 상반기에는 민주시민교육의 구체상들을 학교 속에서 찾아보았다. 민주시민교육이 학교자치교육이나 교과목 중 하나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모든 수업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이었다. 대토론회나 다모임을 하고 있으면 민주시민교육을 다 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고, 학생자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는 학교를 들여다보면 학생이 대상화되어 동원되는 양상도 있지 않은가 반성해 보았다. 민주시민교육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삶의 순간에 내재적 가치로 존재하려면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올해 우리의 고민은 이 지점에 있다.  


생각을 확장하기 위해 장은주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와 마이클 애플의 <민주학교>를 읽고 책과 삶, 교육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이를 결산하면서 동국대 홍윤기 선생님을 초청하여 '시민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였다. 여전히 모색의 와중이지만,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민주시민교육은 다음과 같은 모습이다. 


∙ 미래가 아니라 지금현재에 시민으로 살기 

민주시민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삶 그 자체여야 한다. 학생들은 안전한 공간에서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기르는 자치 활동을 수행해 보고, 교과 수업을 포함하여 학교에서의 모든 과정에서 민주적인 토론과 결정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편으로 학생들은 현재의 생생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변화를 위한 실천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 타자를 눈치채는 마음의 교육 

시민에게 요청되는 것은 굳고 단단한 신념이기보다는 ‘타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와 기꺼이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내겐 너무나 낯선 타자, 나와 전혀 다른 타자의 처지나 마음을 상상하고, 그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힘이다. 그의 존재가 나의 존재만큼이나 가치 있음을 믿는 마음, 이것이 없이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시민의 마음’은 교수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고 젖어드는 것이어야 한다. 타자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성찰하게 해 주는 문학 혹은 인문학과 학생들을 잘 만나게 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좋은 문학 작품은 나와 단절된 저 누군가의 삶 한가운데로 나를 데려가 온전히 그가 되는 체험을 하게 한다. 교육과정이나 수업 속에서 학생들 하나하나를 의미 있는 존재로 보고자 하는 ‘학생중심교육’은 학생이 잘 배우도록 한다는 점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 자체로 민주적 시민의 마음을 기르는 생생한 체험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의미 있는 존재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 본 경험을 가진 학생들은 그 경험을 자신의 삶 안에서 자연스럽게 재생산할 것이다.      


∙ 함께 민주주의를 살기

무엇보다도 민주시민교육을 위해서는 교사들 스스로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교사-시민은 학교와 사회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나의 삶에 적극적으로 관여시키며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이다. 또한 학교 공동체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타자들과 개방적인 자세로 만나 공존과 변화의 지점을 모색하는 이들이다. 교사-시민은 그들이 만나는 학생-시민들과 지금 이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사는 사람들이다. 배워본 바 없고 산 바 없지만, 때로는 무수한 내적, 외적 장애들과 만나게 되지만, 민주적 삶과 민주적 교육공동체를, 민주적 사회를 만들고자 모색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교사-시민으로 살고자 하는 담대한 여정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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