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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30. 2024

한국을 싫어하는 그의 아버지

우리 집 일본인 #22

"종합공원에 연꽃이 예쁘게 피었더라. 데이트할 때 가보면 좋을 거다."

"어... 어.."


6월 말쯤이었나. 연꽃이 피는 계절이었는데, 그는 집에서 아버지와 티브이를 보다 갑작스러운 말에 내심 간담이 서늘했다고 한다. 먼저, 딱 일주일 전에 우리는 우에노의 시노바즈노이케에 가 연꽃을 보고 왔고, 이제까지 그는 아버지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밝히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연꽃이 어쩌고, 데이트 어쩌고 하시니 무슨 사찰이라도 당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 놈은 요즘 여자친구한테 정신 팔려서 주말에 집에 붙어있지를 않아. 강아지 육아도 본척만척이라 이 늙은 나 혼자 육아에 진땀을 빼고 있다니까."


그리고 그다음 달 할머니 1주기 추도식 때는, 작은 아버지 내외 분과의 식사 자리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한다. 내 귀로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같이 야구장도 가고 영화도 보러 가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아들)와 함께 하는 휴일이 사라져 아쉽기도 하고, '저 집은 막내도 결혼을 한다는데 우리 집 애들은 대체 뭘 하고 있나' 싶던 차에 드디어 우리 집도 할 말이 생겼다고 생각해 그리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면 그의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한국을 싫어하시는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내가 한국인인 것을 모르고 계신다. 


다다음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혐한(嫌韓). 

일본에서 한국을 싫어하고 배척하고자 하는 우익들의 기조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동네 마트에서조차 한국어로 된 K-POP이 흘러나오고 젊은이들의 힙한 핫플레이스가 하라주쿠에서 한인타운인 신오오쿠보로 옮겨가고 있는데도 동시에 서점 진열대 코너 한쪽에는 혐한서적이 늘어서 있고, 한국인과 재일교포를 향한 헤이트 스피치 단체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이중성. 그것이 한국을 향한 일본사회의 기본 스탠스가 아닐까. 


"아버지는 혐한이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뭐랄까, 한국을 좀 좋아하지 않아. 특히 문재인 정권."


그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있다며 어렵사리 꺼내놓은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문득 어머니가 한국을 싫어한다던 한 일본인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김치가 싫어서 한국이 싫어졌다고 했는데. 사람이 무엇인가를 싫어하고 좋아하는 데에는 꼭 엄청난 사건이나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고작 음식 하나로 나라 전체가 싫어질 수도 있다니.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다가? 원래부터 싫어하신 거야?"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몇 년 전에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유튜브를 보기 시작하면서 우익 유튜브를 봐버렸거든. 그러고부터였던 것 같아."


선동과 날조로 점철된 유튜브를 우노미(鵜呑み, 통째로 삼킴)하며 한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이 심어졌다고 했다. 한국은 일본에 적대적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말을 바꾸어서 국가적으로 신용할 수 없다며. 부모님 세대가 편파적인 정치 유튜브를 보기 시작하면서 특정 당 지지세력에 대해 확증편향적 태도를 띄게 되었다는 것 역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반박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그냥 그렇구나, 했다. 일본에서도 있는 일이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의 관계가 친밀해지면 친밀해질수록,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라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한국을 싫어한다는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여자친구가 한국인인 것을 아시고 '그런 여자랑은 당장 헤어져!'라고 격노하신다면? 뒷목을 잡고 소파에 쓰러지실까? 아니면 나의 연락처를 억지로 받아내어 '미안하지만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한국인은 인정 못하오. 우리 아들과 헤어져 주시오'라는 한마디와 함께 흰 봉투를 주실까? 아냐, 얼굴에 물컵에 찬물을 끼얹으실 수도 있어.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던가. 한국 드라마를 일본에 와서 더 열광하게 된 내 머릿속에는 그런 한국 드라마적 모먼트들만 열심히 헤엄쳐 다녔다. 


"봉투 받으면 나랑 헤어질 거야?"

"열어서 액수 한번 봐 보고."

"얼마까지면 세이브야?"

"안면 물세례 공격도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에 상응할 정도는 되어야겠지?" 


때론 그도 함께 상상의 나래를 허우적거렸다. 그럴수록 내 몹쓸 호기심은 커져나갔다. 그의 아버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흘러나올 때마다 '그냥 시원하게 밝혀봐. 어차피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아'라고 등을 떠밀었지만 그는 좀처럼 말하기 어려운 듯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아시면서도 구체적인 정체에 대해서는 딱히 궁금해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고 뜬금없이 '아, 맞다, 나 여자친구 한국 사람이야'라고 갑작스럽게 고백 폭탄을 던질 수 있을 만큼 그는 부모와 프라이빗을 넓게 공유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뻔뻔하지도 못했다. 하기사, 매를 맞아도 내가 맞는 게 아니니 쉽게 '밝혀봐'라 할 수 있었지, 어쩌면 진짜 물리적인 매를 맞을 수도 있는 자의 입장에서, 안 하던 소리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을 싫어하는 아버지에게 여자친구가 한국인임을 밝혀야 할 때가 오고 말았다. 

결혼상대라고 데려가서 말 몇 마디 나눠보면 금방 들통날 일을 모른 척, 아닌 척 넘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먼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던 때였다. 


내 입장에서는 이미 그에게 고백을 받았던 때에 '결혼 생각하면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 '아닌 것'을 지금 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결혼 생각하면' 운운을 따져 볼 일도 아니었다. 사귀면서 내가 그에게서 보았던 모습은 아주 좋은 모습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이 정말 내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래도 내가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일 것이다, 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더 이상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과 그가 그리는 미래예상도는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기 때문에 더 현실미가 있었고 진실되게 느껴졌다. 우리가 결혼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비들을 넘어야 하는지 그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일본의 지긋지긋한 면이나 어쩔 수 없는 거리감도 그와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결혼은 현실이라던데 사람만 보고, 사랑 하나만 믿고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려도 되나 조금 우물쭈물하면서도, 이만큼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다시 어디서 또 만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믿고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한국을 좋아하지 않는 그의 아버지, 남편보다도 아들을 더 의지하고 살던 그의 어머니에게 내가 아들의 반려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를 이상적인 사윗감으로 생각하지 않을 우리 가족들에게 그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난이도는 막상막하, 어느 쪽도 쉬워 보이는 길은 아니었다. 아직 하늘길이 막혀있을 때라 한국의 가족들과는 직접 만나 읍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가족에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라는 이야기만 흘려놓고 그의 부모님과는 정초에 직접 만나서, 우리 부모님과는 그 이후에 카카오톡 영상통화로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거기까지도 정해졌는데 그는 좀처럼 아버지에게 내가 한국인이라 밝히지 못했다. 한국인이라고 반대하실 수도 있어서 만나기 전에 꼭 아셔야 하는데. 


"나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했어?"

"아, 아직..."

"언제 이야기할 거야? 다다음 주에 만날 건데 그전에는 말해둬야지. '한국인? 떼잉, 안 만나련다' 하시면 어쩌려고."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할 거야."


이제껏 그의 말들을 의심한 적은 없었지만 이 언행불일치는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할 거면 먼저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것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에게도 밝혀야 할 것이 있었다.


"나 도쿄 산다는 것도 말했어?"


유독 코로나 뉴스에 알레르기 반응을 하던 그의 어머니는 내가 인근 시에 사는 줄 알고 계셨다. 매일같이 수만 명의 감염자를 쏟아내는 도쿄의 감염자 정보를 보면서 혹시라도 도쿄 근방에는 갈 생각도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는데, 그 당부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며, 혹여 내가 도쿄에 산다는 걸 알면 매주 도쿄로 나가는 것도 현관문 앞에서 진을 치고 막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의 동네에 갔다가 한번 스쳐 지나간 적이 있을 때에도 나중에 '네 여자친구니? 어디 살아?'라 물으셨는데, 본능적으로 '절대로 도쿄라고 말하면 안 된다'라는 감이 내달려, 공주와 대전, 증평과 청주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 인근 시에 산다고 둘러댔다 한다. 그것도 슬슬 솔직히 말해야 할 때다. 나까지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만큼 그 근처 지역정보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집안에 새로 들어올 사람이 거짓말에 가담하고 있었던 것처럼 되어버리면 인상도 나빠질 것이었다. 아니, 이미 나빠져 있는 상태일 수도 있지만.


"사실 아버지한테 한국인이라 말하는 것 보다도 그쪽이 더 말하기 힘들어. 있어봐, 오늘 집에 가면 꼭 말할게."


만약 그가 제대로 전해주지 않으면 그 당일에 내가 물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오늘은 꼭 그가 말을 전하기를 기대했다. 


아버지의 퇴근 후, 잠깐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는 그는 얼마 뒤 내게 라인을 보내왔다. 한껏 홀가분한 말투였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놀라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헤어지라, 어디서 그런 걸 만났냐 같은, 예상했던 반응은 고사하고 딱히 별말씀도 없이 그냥 '그러냐. 알았다.'라고만 하셨다 한다. 


문득, 내가 그에게 처음 나 일본인이 아니라고 고백했을 때가 생각났다. 나 일본인 아니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냥 한국인이라고 했을 때, 그 역시 '그렇구나'라는 한마디로 넘기고 자기네 집 강아지 사진을 보내 강아지 자랑만 늘어놓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되는 순간이다. '그러냐. 알았다'는 허락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적어도 국적으로 반대당하는 일은 없겠구나 싶어 약간 안심했다. 


생각보다 가볍게 고비를 넘긴 그는 달성감에 들뜬 기분을 해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어머니에게는 내가 도쿄에 산다는 말까지는 차마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만나 뵌 적이 없으니 뭐라 할 수 없지만 그의 어머니는 잠깐 스쳐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그가 왜 그런 반응인지 약간 알 것 같기도 해 오늘은 더 이상 닦달하지 않기로 했다. 


며칠 뒤, 용기를 쥐어짠 그가 어머니에게도 내가 도쿄에서 온다는 사실을 밝혔다. 도쿄에 사는 여동생 커플도 같은 날 오기로 해서 그랬나, 이 역시 예상과 달리 '그게 뭐라고 그런 거짓말을 하니' 라며 넘어갔다고 한다.  


우리에게만큼은 복잡다단했던 2021년의 연말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새해가 밝아,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처음 뵙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전 21화 내 이름과 사주에는 결혼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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