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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09. 2024

수동적인 기질의 일본인

우리 집 일본인 #19

어느덧 여름이 왔다. 연일 30도를 넘어서는 더위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으려니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열사병을 우려한 의료 관계자들이 티브이에 나와 야외활동 중에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 했지만 출퇴근 길에 맨얼굴을 드러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본인들은 누군가의 지시를 잘 따르는 대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모두가 하는 대로 한다. 이는 폐쇄적인 섬나라인 특유의 수동적인 기질로 21세기에도 일본사회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스크 벗어도 된대'라고 남 이야기 하듯 눈치게임을 하면서도 정작 마스크를 벗는 사람은 없었고, 마스크를 벗으면 되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여름.

장마가 끝나자 내가 사는 맨션도 대대적인 외부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기간 동안 낮에는 창문을 열 수도, 에어컨을 틀 수도 없었다. 베란다 밖에는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에어컨을 틀면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이 그에게 향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에어컨의 운전 버튼을 누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위를 피해 자주 미츠기(見次) 공원에 갔다. 호수가 있어 눈으로 보기에도 시원했고 키가 큰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은 선선했다. 혼자는 좀 그렇지만 둘이라면 마스크를 벗어도 눈치 보이지 않았다. 가끔은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들고 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시원한 탄산으로 목을 축였다. 연인과 더위를 나는 하나의 낙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공원에 들러 차가운 캔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고가로 된 수도고속도로의 불빛이 비치는 호수는 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나는 이 공원의 밤풍경을 좋아했다. 그도 그렇다 했다.



"툭, 툭"


집에 가려고 막 일어서려는데 굵은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내렸다. 소나기였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비를 기다리느라 언제까지고 이곳에 있을 수 없었던 우리는 어깨에 메었던 가방을 머리 위에 쓰고 전속력으로 집을 향해 뛰는 쪽을 택했다.


안타깝게도 가방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참을 뛰다가 불 꺼진 어느 건물 사무소 간판 아래에 서 가뿐 숨을 골랐다. 잠깐 사이에 비에 쫄딱 젖은 생쥐꼴이 된 모습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참을 웃었다. 가방에서 젖지 않은 손수건을 꺼내 안경의 물기를 닦았지만 큰 물방울이 작게 쪼개졌을 뿐, 시야를 또렷하게 하기에는 택도 없었다. 안경을 벗고 보는 인적 없는 거리는 비에 젖어 반들거렸고, 반사된 주황색 가로등 빛은 여름의 짙은 밤과 대조를 이루었다. 머리칼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나는 지금이 아주 로맨틱한 순간이라고 느꼈다.


나이도 서른 중반이 넘었는데 이런 '소나기'같은 연애라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애가 항상 풋풋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여름, 그의 제안으로 군마의 이카호(伊香保)로 여행을 떠났다. 뜨거운 온천물에 그간 위축되어 있던 몸을 풀고, 료칸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호사를 맛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카호에 가자는 말만 꺼냈지, 구체적인 결정이 필요할 땐 항상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료칸을 알아보는 것도, 어디에 갈지 정하는 것도 전부 내 몫이었다. 나도 뭘 결정하는 게 어려운 사람인데 빨리 해결하고 싶어 혼자 알아보고 안을 제시했다. 그는 언제나 좋다고 했다. 우리는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인데 왜 '혼자' 가는 것 같지. 부담스럽고 답답했지만 언짢은 이야기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문제는 여행이 끝날 무렵 불거졌다. 또 나의 선택으로 고기 정식을 먹으러 갔는데, 그는 본인이 시킨 게 먼저 나오니 허겁지겁 고기를 들이마시고 내 것까지 몇 점 집어먹고는 '아, 배불러' 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한참을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다 짐짓 심각한 얼굴로 소곤거렸다.


"여기 고기 별로다."


이미 여행의 시작에서부터 삐끗해 있던 참이었다. 한껏 짧아진 도화선은 한번 불이 붙자 걷잡을 수 없이 타들어 갔다.


마스크 눈치게임 하는 답답하고 수동적인 일본인, 방관할 땐 언제고 투덜투덜 뒷말을 하는 일본인, 저만 아는 일본인. 이제까지 내가 경험해 온 '몸서리 쳐지게 싫은 일본인'들의 모습이 그의 위로 켜켜이 겹쳐졌다. 그의 일본인답지 않은 부분이 좋았는데, 그도 결국 '저들과 같은 일본인'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그가 드러낸 허물 전부가 일본인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 텐데도, 나는 '그 자신'이 아닌, 그가 '일본인으로 태어나고 자란 탓'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그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으로 '그의 결점은 그의 탓이 아니'라는 일종의 면죄부를 주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지, 일본인이니까. 그렇게 자랐으니까.'

나 자신은 '한국인이니까'라고 낙인찍히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으면서, 모순적이게도 그렇게 생각하려는 나도 싫었다.


말없이 고기와 맥주를 더 시키고 그와 똑같이 핸드폰을 보면서, 묵묵히, 와구와구 밥을 먹었다. 조용한 식사가 끝나고 그보다 먼저 빌지를 들고 카운터로 갔다. 어디에 터트려야 할지 모르겠을 분노를 꾹 억누르면서.





그는 그날 내가 왜 말없이 밥을 먹었는지는 몰랐지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은 눈치챘다.


'뭐 마음 불편한 거 있지? 나 때문인 것 같은데, 미안해.'


3일을 서먹서먹하게 지냈다. 사실 마음 불편한 티는 냈지만 딱히 '뼛속까지 그 버릇을 고쳐놓겠어!'란 의도가 있던 것도, '헤어져야지' 작정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몰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딱 잡아뗐다. 냉정을 되찾은 머리는 그가 일본인인 것을 포함, 싫은 모습들도 그 사람의 일부고,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을 풀어주려 한 것이 고맙고, 그런 그에게 불만을 가지는 것 자체에 죄책감이 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다른 이에게는 쉽게 '이렇게 하면 돼' 소리를 하면서 정작 내 일이 되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나는 아직 너무 미숙하다. 


그런데 한국 짬뽕을 배달시켜 놓고 기다린다는 내게 '한국식 짬뽕은 어떤 거야? ^^'라고 해맑게 묻는 그의 말에 또 짜증이 치밀었다. 스스로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또 수동적인 모습. 평소처럼 '빨간 국물이고 해산물이 잔뜩 들어있어'라 대답하는 대신 '스스로 찾아봐'라고 잘라냈다. 그 말에 그도 화가 난 것인지 '이제 됐어!'라 하고는 그날밤 연락이 두절되었다. 두절되었달까,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라인이 온 것은 다음 날 저녁 무렵이었다. 순간적으로 속이 상해 그리 했지만, 하루종일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고민했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좀처럼 하지 않던 실수도 했다며, 혹시 본인에게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고치겠으니 이만 화 풀고 화해하자고 했다. 브레이크에 발이 닿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가 내 입맛대로 바뀌길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이러저러해서 그랬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바꾸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덧붙였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고, 만약 그의 어떠한 모습이 견딜 수 없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하나의 사인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나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는 것도, 그 안에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 헤어지게 되는 것도, 남녀 사이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 소동은 일단 봉합되었다. 관계해결에 있어 그가 나보다 더 적극적이고 덜 회피적이었기 때문에 일단락 되엇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의 관계를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어리광을 부린 것 같다 했고, 나 역시 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개인의 성향이 스테레오 타입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이제껏 레테르를 거부해 오던 나 자신 또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했음을 인지한 것도. 




이번 일로 하나 더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손에서 놓아버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 이 사람은 나와 맞지 않아, 어차피 맞지 않는데 일부러 맞춰가려 공들일 필요도 없어, 잘 가라, 안녕. 이제까지 고마웠고 지겨웠다. 칼로 잰 듯 툭 끊어냈다. 물론 아픔은 따랐다.


그러다 보니 갈등해결보다는 '갈등을 만들지 않는 것'을 제일 중요시하게 되었다. 일단 참고, 참아주고, 또 참다가 이제 안 되겠다 싶으면 작두를 꺼내 들었다. 갑자기 썰려나간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한 짓은 생각 안 하고 내게 매정하다 했다. 나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피했다. 하지만 모든 관계의 갈등을 '잘라버림'과 '회피'로 해결하려는 버릇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게끔 설계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혼자인 시간이 길어 한껏 고고하고 날카로워진 나는 때론 부딪히고 깨져가면서 다시 둥글둥글해질 필요가 있었다. 


상대와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어려운 과제가 남았다. 


국제커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언어'라 여겨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한 연애감정에 의해 발전한 커플이라면 언어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지 않을까. 눈빛만 보고 파지직 전기가 통한 것이 아니고서야 뭔가 말이 통하는 게 있었으니 사랑도 싹텄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눈빛 만으로 상대를 푹 빠지게 할 수 있을 만큼 매력 터지는 존재가 아니다. 자세히 봐야만 예쁘다.


정말 가장 큰 문제는, 여느 보통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각자를 둘러싼 정서적 베이스와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고 본다. 물론 거기에 각국 고유의 사회적 룰이나 정서 차이가 한 스푼 더 얹어지는데, 그것에만 포커스를 두면, 서로의 의견 차가 발생했을 때 이것이 '그 사람이기 때문'인지, '그 나라 사람이기 때문'인지가 모호해지는 시점이 와 생각거리가 많아지는 것이다. 크게 보면 자라온 환경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론 그것이 갈등을 조장하고 불안을 가속시키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는 마음만 있다면,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어려운 길도 아니지 않을까.


이후로도 몇 번인가 위기는 더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같이 별 거 아니지만 손바닥에 참을 인을 써가며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불쑥불쑥 차오르는 분노를 토닥토닥 쓰다듬어 가라앉혔다. 그리고 위기를 한 번씩 극복해 낼 때마다 나는 우리의 앞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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