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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Apr 07. 2024

기분 좋은 것들의 배신

스트레스를 푸는 진정한 방법

소리를 끄자.


그런 생각이 든 건, 낮에 밥을 먹으면서였습니다. 보던 드라마를 뚝 끄고 나니 눈앞에 보이는 건 탁상 너머의 냉장고와 스스로 차린 소박한 밥상뿐입니다. 갑자기 차분해진 적막 속,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어서 밥 한 술을 떴습니다. 조금 상쾌하다, 그런 기분이 살포시 부풀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잔잔한 음악이라도 틀려다가 이내 관두고는 오물오물 밥알을 씹었습니다. 바깥의 거리에선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어디선가 새소리도 포로롱 들렸습니다. 오늘은 소리 없는 날입니다.


어제 동료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내린 처방은 이러했습니다. 감각을 덜자.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흔히 스트레스란 화가 나고 짜증이 난, 언짢은 감정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것들을 합니다. 신나는 음악을 듣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요란하게 웃긴 영상을 보고, 친구와 술을 먹으러 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여 기분은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평안해졌는가 되물으면 희한하게도 뭔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스트레스란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자극입니다. 흔히 ‘스트레스받을 때‘ 느끼는 화나 짜증, 슬픔 따위의 감정만이 아니라, 자극의 총체 즉 ’정보량‘입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 흘러들어오는 모든 정보들입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모두 우리 뇌가 해석해야 하는 새로운 자극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재미있는 영상을 보며 힐링을 하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평온을 되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의 뇌는 그 영상과 음악에 신경을 쏟느라 스위치를 끄지 못합니다. 나를 기분 좋게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스트레스가 되어 피로감을 주고 있는 셈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습관처럼 유튜브를 봅니다. 책을 읽을 때도 음악을 켜 둡니다. 혼자 방 안에서 심심할 때면 뭐라도 틀어둡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청각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기기를 만집니다. 그렇습니다. 습관처럼요. 늘 그래왔기 때문에 손을 뻗습니다만, 한 번도 스스로에게 지금 이 순간 정말로 음악이 듣고 싶은가? 하고 묻는 일은 없지 않았던지요. 하지만 때때로 음악을 듣지 않고 산책을 하거나 뭔가를 보지 않고 밥을 먹어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심심함은 잠시 뿐이고 의외로 나의 몸이 보조개 웃음을 짓는 아기처럼 배시시 기뻐한다는 것을요.


진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선 감각의 더함이 아닌, 감각의 비움이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한 처방은 일상의 정보량을 낮추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걷어내고, 귀에 들리는 것을 잠시 중단합니다. 보던 유튜브나 드라마를 끄고, 밥을 먹을 땐 밥을 먹는 데만 주의를 기울입니다. 밥알이 얼마나 단지, 토마토가 얼마나 싱싱한지, 고기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느끼고 곱씹습니다. 틀어두던 노래를 끄고, 책을 읽을 땐 책을 읽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풍부한 풍경을 상상합니다. 오늘은 소리 없는 날, 귀를 쉬게 해 주면 비워낸 자리로 더 부드럽고 명랑한 일상과 자연의 속삭임이 흘러들어 옵니다.



봄이 든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소리를 끄고 밥을 먹던 낮에 창밖으로 새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계속 무언가를 듣고 있었다면 한 철이 가도록 알지 못했으리라 싶어, 아찔하고도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오늘은, 한 번 청각의 스위치를 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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