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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Apr 27. 2024

엄마의 택배

    엄마는 가끔 나와 언니에게 택배를 부치신다. 마치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가 준 큰 선물상자 같은 택배가 문 앞에 '쿵!' 하며 놓인다. 




    엄마가 보내주시는 택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종이 상자 안에 생필품이 가득 채워져 오는 택배이다.

    "엄마 나 쌀이 다 떨어졌어~."

    이 한마디로 엄마의 택배 싸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것 같다! 우선, 이 택배 상자에는 거의 10가지에 가까운 다양한 종류의 잡곡이 섞인 쌀이 담겨있는 2L짜리 페트병 2개가 들어있다. 이 안에는 흰쌀은 거의 없고, 귀리, 다양한 색의 보리, 수수, 현미 등이 들어있다. 또, 500ml짜리 페트병도 꼭 2개가 담겨온다. 하나는 검은콩이 한가득, 하나는 병아리콩이 한가득! 덕분에 나는 밥만 먹어도 아주 구수하고 맛난, 또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밥만 먹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쌀 페트병들 만으로도 무게가 상당하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엄마는 그동안 우리에게 부치고 싶었던 물건들을 모아두었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 택배에 가득 담아 보내주신다. 우선, 쌀처럼 보냉이 필요하지 않은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온갖 비타민과 유산균 등의 영양제품들, 몸에 아주 좋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가격이 너무나도 사악한 마누카 꿀 한통, 김부각 등등. 이때 참 재미있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원래 종이 상자 한통에 가루 형태로 된 영양제가 10포가 들어있는 제품이라면, 엄마는 이 상자 하나에 빈 공간을 허락하지 않고 약들을 가득히 넣어서 보내주신다. 그렇게 빵빵해진 영양제 상자를 보면 미소가 나온다. 또, 주부 9단인 엄마는, 우리가 대량으로가 아닌, 낱개로 사면 더 비싸게 사야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계신다. 예를 들어, 물티슈나 치약, 그리고 기능성 청소 용품 같은 것들. 그래서 그것들도 이 택배 상자에 들어있다. 

    꺼내도 꺼내도 끝도 없이 엄마의 사랑이 나오는 택배 상자이다. 이때까지 이 첫 번째 종류의 택배를 뜯을 때면, 매번 예상치 못한, 새롭고 재미난, 그리고 엄마의 크나큰 사랑이 느껴지는 것들을 발견하기에, 그 어떠한 택배를 뜯는 순간보다도 설레고 재미있다. 나는 이 순간,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개봉하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다. 



    

    나머지 한 종류의 택배는 보냉이 필요한 먹거리들이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에 실려오는 택배이다. 엄마랑 전화를 하다가 가끔 나도 모르게 

    "집에 김치가 다 떨어져 가지고.." 

    라는 말을 하게 되면, 엄마는

    "조만간 부쳐줄꾸마~!"

    하시며 엄마의 먹거리 택배 보내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것 같다. 그럴 때면 사실 나는 '아차...!' 싶다. 엄마는 절대 김치만을 보내시지 않기 때문이다. 큰 스티로폼 상자 가득 반찬과 국을 담아 보내신다. 물론, 엄마의 손맛이 항상, 너무나도 그립지만 그 택배를 위해서는 엄마가 엄청난 고생을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선은 정말 괜찮다며 다음에 내가 부산에 가게 되면 가지고 올라오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말해본다. 내가 상경하기 전, 나는 본가에서 살고 언니만 서울에서 자취를 할 때, 엄마가 언니에게 보낼 택배를 싸는 과정을 옆에서 생생히 보았다. 지금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지만, 그 당시는 부산에서 서울까지도 우체국 당일 택배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 택배를 위해서는,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거의 아침 8시쯤까지 우체국으로 가서 택배를 부쳐야 했다. 그래서 엄마는 그 당일 배송을 위해 그 전날 늦은 밤까지 여러 개의 반찬과 국을 정성껏 만들고, 용기에 담고, 혹여 배송 중에 국물이나 양념이 셀까 봐 꽁꽁 싸고 다시 확인하고를 반복하셨다. 그러고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도 거르시고 우체국까지 그 무거운 택배를 직접 들고 가서 부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나는 이런 엄마를 많이 도와주지 않고 내 공부를 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난다. 참 미안해지는, 후회가 되는 순간이다. 무튼, 그 수고로움을 직접 옆에서 보았기에, 지금의 나는 나에게 택배를 보내려는 엄마를 말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말릴 수가 없다. 그래서 그저께도 난 택배를 하나 받게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보내는 먹거리 택배가 매번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고정으로 항상 들어있는 것들이 있다. 내가 유일하게 말했던 외할머니표 김치는 물론이고, 카레와 버섯들깨국, 그리고 초석잠 장아찌이다. 엄마의 카레는 보통의 카레가 아니다. 병아리콩, 감자, 파프리카, 양파, 그리고 여러 가지 종류의 버섯까지 가득가득 들어있다. 그래서 이 카레 한 그릇 만으로도 아주 기분 좋게 배가 불러질 수 있는, 그런 건강하고 든든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카레이다! 엄마에게는 이 카레에 대한 나의 그리움을 일부러라도 그리 자주는 표현하지 않았는데, 엄마의 카레를 내가 참 좋아하는 것을 어찌 알고 계신지 매번 보내주신다. 엄마에게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엄마를 좋아해서 털레파시가 통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또, 자칭 버섯 소녀라고 말할 만큼 버섯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새송이, 표고, 느타리버섯 등 여러 가지 버섯이 듬뿍 들어가 있는 버섯 들깨탕을 항상 보내주신다. 들깨를 얼마나 듬뿍 넣었는지, 꾸덕하고 참 든든한 국이다. 그렇다고 들깨가 과해서 오는 느끼함은 신기하게도 없다. 엄마의 어떤 비법이 들어간 것인지, 감칠맛과 시원함이 느껴지는 따뜻한 국이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초석잠 장아찌. 이것은 엄마가 5년 전쯤부터 주기적으로 만드셨던 것이다. 그 시작은 엄마가 어디에서인지 초석잠이라는 것이 두뇌활동에 좋다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을 때였다. 그 후로, 엄마는 국산 초석잠이 나올 때면 대량으로 주문하여 이 장아찌를 만드셨다. 종종 엄마는 우스개 소리로 "네가 이 초석잠을 먹어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것 아니겠나!" 하신다.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장아찌의 간장 또한 그냥 간장이 아니다. 몇 시간 동안 야채와 한약재들을 넣어 끓여 만든, 엄마의 비법 간장이다. 김 한 장에 밥과 초석잠을 올리고 이 간장에 적셔주어 한입 크게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심지어 나는 이 간장을 그냥 퍼먹는 것을 좋아할 만큼 짜지 않고 깊은 맛이 난다.

엄마가 보내준 반찬들. 카레, 전복장, 그리고 엄나무 잎 장아찌

     이 세 가지의 고정 메뉴와 함께 제철 야채, 그리고 가끔은 해산물도 가득 들어있다. 이번에는 엄나무 잎 장아찌와 달래도 넣어주셨다. 또, 전복이 가득 들어있는 전복장까지. 덕분에 나의 냉장고가 아주 화려해졌다! 또, 엄마의 음식과 사랑으로 나의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고 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의 국과 장아찌, 그리고 내가 만든 반찬들이 함께 올라간 푸짐한 밥상!

     



    

    택배 상자들을 칭칭 감고 있는 테이프에서 엄마의 센스를 볼 수 있다. 테이프 끝을 조금 접어서, 내가 받는 즉시 빠르고 편하게 택배를 뜯을 수 있게 해 놓으신다. 그리고 상자의 4개의 옆면에는 엄마의 손글씨가 큼직하게 쓰여있다. '절대 던지지 말아 주세요!' 난 사실, 다른 것보다 이 글씨를 보면 엄마가 참 보고 싶어 지더라. 고백하자면, 참 모순적이다. 엄마는 내가 여기서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며 이렇게 사랑을 가득 넣은 택배를 보내주시는데, 나는 그 택배를 볼 때면 정말이지 당장 집으로 내려가고파 진다. 엄마의 손길이 느껴지는 택배 상자, 그 안의 물건들, 그리고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맛있고 건강한 음식들을 먹으면, 엄마의 얼굴이,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그 손길, 손맛이 나의 그리움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엄마가 참 그립다. 



엄마, 엄마 덕분에 나는 배도 안 고프고 없는 게 없는 일상을 살아가네.
 멀리 떨어져 있었도 언제나 가까이 있는 것 마냥
사랑을 마구마구 보내주어 고마워. 
그래서 내가 있는 이곳은 오늘도 사랑으로 채워져 있고,
엄마가 우리 엄마이기에 나도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 된 것 같아.
 끝도 없이 고맙고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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