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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pr 27. 2024

아니, 양념게장에 이게 안들어갔다고?

팔순 안여사가 제일 자신있어하는 요리는 바로 '달디 달고 붉디 붉은'  양념게장이다. 친정 냉동실에는 일년 365일 거의 꽃게가 들어있어 언제라도 영롱하게 붉은 양념을 뒤집어 쓰고 상 위로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다. 명절이나 생일은 물론, 친정에 놀러간 날도 종종 안여사는 게장을 내놓으신다. 딱딱한 게를 손질하고 자르느라 친정 칼은 이가 나가고, 엄마 손과 팔은 너덜해졌는데도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 덕에 신라면도 못 먹는 맵찔이인 큰아들이 양념게장만은 입가가 벌개져도 아랑곳 않고 신나게 먹는다. 비닐장갑끼고 몸통을 짓눌러서 살을 꺼내 쪽쪽 빨아먹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나 먹을 게장이 모자랄까 허겁지겁 먹는다.


지난 주말 달에 한 번 있는 두 자매의 친정 회동날이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다음날 느지막히 일어났는데, 아침부터 안여사는 부엌에서 혼자 꽃게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아침부터 꽃게라니. 이미 도마 위에는 냉동실에서 나온 꽃게가 조각나 있고, 볼에는 맛을 보라고 유혹하는 붉은 양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 아침부터 왠 게장? 힘들게 하지말라니까 그러네. 하지마, 바로 갈거야."

"아니, 애들이 잘 먹으니까 싸주려 그러지 누가 너 먹으래. 암 말 말고 가져가."

그러고는 부지런히 양념에 게를 버무리신다. 어쩔 수 없다. 이제 못 말린다. 얌전히 들고 가야한다. 내 역할은 옆에서 간을 보면서 무조건 맛있다고 외치는거다. 엄마가 다리 하나를 뜯어 내 입에 넣어주신다.

"맛이 어때?"

"아유 뭘 물어, 엄청 맛있지!"

요리똥손이지만 복스럽게 잘 먹는 큰딸답게 눈꼽도 안 떼고 강렬한 양념게장을 입안에 넣었다. 맛없을리가 없지. 없는데, 없어야하는데, 잠깐. 분명 맛있는데, 맵고 달고 짭짤하고 게맛도 제대로인데, 뭔가 이상했다. 어딘가 느끼하고, 어딘가 모자라고, 어딘가 흐리멍텅한 맛. 2프로 부족한 맛이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는. 등 어딘가가 간지러운데 어디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오묘하고 근질거리는 기분으로 시식을 마쳤다.

"그래? 뭐가 좀 아쉬운데....."

찬사 가득한 내 시식평에도 무언가 성에 안차는 표정인 엄마를 뒤로하고 나는 집으로 복귀할 채비를 시작했다. 씻고 옷을 갈아입는데 갑자기 엄마가 방으로 뛰어들어오셨다.

"마늘을 안 넣었다!"


아! 마늘! 그렇다, 마늘이었다! 마지막 한 끗이 모자란 듯한 그 맛이 바로 마늘이었구나!

엄마는 그릇에 담아놓으셨던 게장을 도로 꺼내서 볼에 넣고 마늘을 듬뿍 넣고 다시 무치셨다. 거실에 알싸한 마늘향이 퍼졌다. 뒤늦게 마늘옷을 입은 게다리를 뜯어 다시 맛을 보았다.

"그러네, 이 맛이네."

콧소리가 절로 나왔다. 불태우는 매운 맛이 아니라 얼얼하게 매운 맛, 재빠르게 찌르는 매운 맛이 아니라 은근히 오래 찌르는 매운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한여름 늘어져 있던 식물 이파리 같았던 게장 맛이 시원한 물을 듬뿍 먹고 빠짝 일어선 싱싱한 초록잎사귀 같은 선명한 맛으로 바뀌어있었다. 마늘의 톡쏘는 맛이 미로를 헤매는 게장의 맛을 출구로 제대로 인도했다. 마늘이 이토록 심오하고 다정한 재료인줄을 이제야 알았다.


양념하나 쯤이야 안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지만, 마늘이 빠진 게장은 분명 미완성이었다. 마늘이 들어가고 아니고가 이렇게 분명한 맛의 차이를 만들다니. 나같으면 마늘이랑 같이 먹으라며 그냥 챙겨보냈을것 같은데, 엄마는 번거로워하지 않고, 귀찮아 하지 않고, 수고를 아끼지 않고 다시 만들어주셨다.




예전에 친구 하나가 면역체계가 무너져서 한방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그때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늘을 먹으면 안되었다. 의사가 한약을 먹는 동안 마늘을 피하라고 했는데, 너무너무 힘들었단다. 마늘이 모든 한식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재료다 보니 마늘이 안 들어간 음식을 찾을 수가 없어서. 온갖 찌개나 국, 나물은 물론이고, 김치도 못먹는다고. 고춧가루가 안 들어간 김치는 있어도, 마늘이 안 들어간 김치는 없다. 마늘 피하다가 스트레스도 나을 병도 안 나을것 같다고 농담을 하며 슬픈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인에게 마늘은 물고기에게 물같은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짤을 만들었을까. 웅녀의 피가 내 안에 흐른다.

 



그날 저녁엔 갓 지은 하얀 밥 위에 할머니의 뻘건 양념게장을 올려 온 가족이 맛나게 먹었다. 살이 많은 몸통은 아이들 먹으라고 주고 나는 양념이 가득 묻은 다리살을 쪽쪽 빨아먹었다. 먹기 편하라고 가위로 일일이 잘라서 손질해주신 집게다리가 너무 다정해서,  그 양념 하나하나가 너무 따스해서, 속이 쓰리고 입이 매워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받기만 하는 딸의 죄스러움을 씻기라도 하듯 깨끗하게 씹고, 남은 양념까지 싹싹 긁어먹고서야 일어났다. 손과 입 가득 마늘향이 베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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