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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Apr 30. 2024

어쩌다 보니 혼밥 레벨 5단계

 '점심에 뭐 먹지?'

직장인들의 매일 반복되는 숙제이며 최고의 난제.

몇 년 전까지 이 문제를 혼자 풀어나갔었다.

처음부터 혼밥을 했던 건 아니다. 몇 명 되지 않은 직원끼리 함께 도시락을 먹거나 맛있는 식당을 찾아 가 점심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높은 이직률로 정을 붙일만하면 직장동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새로 직원이 들어오면 새로운 점심 그룹이 생겼다. 하지만 또다시 이직이 반복되며 그룹의 결성과 와해가 반복됐다. 자연스레 새로 온 직원들과 각자의 방식대로 점심을 해결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다 보니 언젠가부터 혼자가 편했고, 혼자 점심을 먹게 되었다.  


 처음엔 혼밥이 어색했지만 혼밥의 단점보다 장점을 찾아가며 혼밥을 즐겼다.

메뉴를 고를 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나에게 점심 메뉴 고르기는 동조에 가까웠다. 아침 출근길에 김치찌개 냄새를 맡아 오전 내내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어도 함께 먹을 동료가 "오늘 점심은 중국집 갈까?" 하면 어쩔 수 없이 의견을 따르게 됐다. 어제저녁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불리 먹었어도 말이다.


 함께 먹는 사람과의 먹는 속도를 맞출 필요가 없다. 난 식사를 빨리 하는 편이다. 잘 씹지 않아 거의 면이나 건더기를 마시듯이 먹는다. 그래서 신경 써서 먹지 않으면 내 속도대로 먹은 후 상대방이 다 먹을 때까지 물배를 채우며 서로 어색하게 앉아 있어야 할 때가 있었다.


 점심을 먹을 때 상사나 동료에 대한 험담에 동조하는 것도 곤혹이었다. 그들이 얘기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매번 똑같은 인물에 대해 똑같은 험담을 듣고 동조하는 게 쉽지 않았다. 험담에 맞장구쳐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버거웠다.


 누가 계산할지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요즘이야 각자 계산하는 문화가 당연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서로 돌아가며 사는 분위기라 "각자 계산하자."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정 없어 보일까 봐.

예전엔 한 테이블에서 여러 개의 카드로 계산을 하려면 번거로워할까 봐 눈치가 보였지만, 이젠 이런 광경은 흔하디 흔한 광경이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밥을 하려면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해야 했다. 혼밥 레벨 테스트가 생길 만큼 혼밥이 일상화가 되며 식당마다 1인석 테이블이 많아졌고, 혼밥의 메뉴도 점점 다양해져 혼밥의 불편함이 점점 사라졌다.

코로나로 인해 식사할 때에는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하고, 칸막이와 띄어 앉기 수칙을 지키며 의도치 않은 혼밥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코로나 이전부터 혼밥을 했던 나는 갑작스러운 코로나 상황이 불편하지 않았다.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음에도 자발적 왕따를 자처하는 나를 보며 내 성격이 이상한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굳이 함께 먹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직을 하며 이젠 혼밥을 하지 않는다. 이전 직장과 다른 분위기라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몇 년 동안의 혼밥 경험으로 나의 혼밥 레벨은 5단계까지 상승했다. 웬만한 식당에선 혼밥이 어렵지 않게 됐다. 그래도 6단계인 맛집은 가족, 친구와 함께 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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