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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Apr 26. 2024

어머니 라면 드실래요?

라면

 5년 차 며느리의 변혁의 중심엔 라면이 있었다.

명절 전날이면 어머님, 형님과 함께 제사음식을 준비했다. 예전에 비해 제사 음식의 종류와 양을 반이상 줄인 거라고 하지만 친정에서 제사를 안 지냈던 나에겐 명절 음식 준비는 매번 부담이었다.


제사 음식을 만들며 무엇보다 불만이었던 건 제사 음식을 하는 와중에도 점심과 저녁을 제대로 한 상을 차려야 한다는 거였다. 하루종일 기름냄새를 맡아 끼니는 대충 때우길 바라는 나의 마음과 다르게 어머님은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여 제대로 된 상을 차리시길 바라셨다.

명절마다 반복되는 이 상황에 불만이 쌓여가던 나는 남편과 아이를 핑계로 어머님께 점심 메뉴로 라면을 먹자고 제안했다.


평상시에도 잘 안 드시는 라면을 명절에 먹자고 제안한 당돌한 며느리에게 어머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어머님의 반응에 남편은 놀란 듯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명절에 라면을 먹어 본 적이 없던 남편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컵라면을 먹는 것까지 허락을 받았다.

제사 음식으로 복잡한 부엌에서 냄비 라면을 끓이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았다.

취향별로 고른 10개의 컵라면이 명절 점심상을 채웠다. 오전에 부친 전과 떡과 함께. 컵라면을 먹고 업된 기분으로 명절 음식을 만들었다. 라면을 먹고 나만큼 좋아했던 분은 형님이었다.

 이후 명절 분위기에 미세한 변화들이 생겨났다.


 명절 음식의 느끼함을 해결해 줄 뿐만 아니라 맛과 가성비 면에서 라면은 단연 최고의 음식이다. 천 원의 행복을 맛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영양을 고려한다면 자주 먹는 건 금기시된다. 고열량, 저 영양, 고 나트륨 식품인 라면은 영양적인 면뿐만 아니라 먹는 상황 자체도 건강에 좋지 않다. 라면뿐 아니라 면요리 전반에 해당하는 문제지만, 라면을 먹을 때 간단한 반찬 한두 가지를 놓고 빨리 먹기 때문에 영양 불균형과 함께 혈당의 급격한 상승이 문제가 된다.


 라면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끊기는 쉽지 않다. 라면을 먹겠다는 굳은 의지로 영양을 고려해 다양한 재료를 첨가한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대중적인 재료인 계란을 라면에 넣어서 먹는다. 분식집 라면처럼 계란을 풀어 같이 끓이기도 하고, 따로 계란을 부쳐 곁들여 먹기도 한다.

부족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하기 위해 콩나물, 파, 깻잎, 버섯 등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끓인다. 라면에 첨부한 소소한 재료들이 적잖이 위안이 된다.


 2023년에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연간 라면 소비량이 1인당 77개라고 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4.8일에 한 번씩 라면을 먹는다는 뜻이다. 당연히 우리나라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1위일 줄 알았다. 아쉽게도(?) 85개인 베트남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고 한다.


 라면은 1963년에 삼양라면을 원조로 하여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출시되었다고 한다. 당시 가격은 10원, 짜장면이 20원이었던 시절이었다니 지금처럼 서민음식은 아니었나 보다. 그 당시엔 짜장면과 맞먹는 가격에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사골육수나 닭육수를 베이스로 한 라면부터 짜장 소스, 고추장 소스로 비벼 먹는 라면까지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 집에서 떨어지지 않는 품목 중 하나가 라면이다. 라면이 구비되어있지 않으면 쌀이 떨어진 거처럼 불안하다. 라면 보관 장소에는 5종의 라면이 있다. 짜장라면,  맵기와 굵기가 다른 4종의 라면이 더 있다. 편의점만큼은 아니지만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남이 끓여주는 라면'이라고 한다. 주부라면 라면뿐만 아니라 남이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다.

다음으로 맛있는 라면은 여러 개 다 같이 끓여 먹는 라면, 산에서 끓인 설익은 라면, 몰래 먹는 라면, 밤에 먹는 라면이라고 한다. 부동의 0순위는 한 젓가락 뺏어 먹는 남의 라면이다. 눈치를 보면서 먹는 라면 한 젓가락의 치명적인 맛의 매력에 빠져나올 수가 없긴 하다.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어제는 한식 메뉴로 가족들의 영양을 챙겼으니 오늘의 저녁 메뉴는 간편하고 맛있는 음식, 라면이다.

'남이 끓여주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지만 사실 라면은 누가 끓여도 맛있다. 언제 먹어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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