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N년차 조종사들이 말하는 파일럿의 장점 1 + 1

기장님께서 물어보셨다.


비행 중요 단계라고 부르는 10,000FT 지점이 훨씬 지난 순항 고도 날아가던 중이었다.


기장님: 요파야

나: 네에

기장님: 너는 다른 진로를 가다가 여기로 왔잖아? 지금 일에 만족하고 있어?

나: 그럼요.


처음이었다. 지금 직업에 만족하냐고 물어본 기장님은.

이어서 기장님께서 한 가지 질문을 더 하셨는데,


그러면 너가 생각하는
조종사의 장점 한 가지를 이야기하면 무엇인거 같아?


신선한 질문이었다.

그렇게 기장님과 나는 비행기에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장님께서 선택한 장점: 경쟁이 거의 없다.


숨 쉬는 것과 같이 익숙해지면 잊혀지고 있던 부분이다. 살면서 어떤 직업을 갖기 까지, 어떤 회사에 들어가기 까지 우리는 경쟁을 이어간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직업을 갖기 위해, 또 원하는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 어느 정도 경쟁과 무관한 상황이 오더라도 스스로 경쟁을 만들어낸다. 남들 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경쟁자들 보다 나은 점이 있어야 하고, 눈에 띄기 위해 동료들 보다 훌륭한 성적과 성과를 보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남들 보다 더 멀리 더 빠르게 달려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느린 속도로 달려나간다.


경쟁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순기능도 있다.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긴장감은 나 자신도, 내가 속한 단체에도 도움이 된다. 더 크게 바라보면 경쟁은 사회 발전에 원동력이 된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경쟁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순기능 보다 역기능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동료를 밟고 일어서야 높은 자리를 갈 수 있다는 마음,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을 의식하는 마음이 큰 사람일 수록 ‘남들 보다 뒤쳐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안을 부추긴다.


행복 배틀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경쟁과 경쟁으로 인한 피로는 익숙해져 버렸다 | 출처: 나무위키


임원을 갈망하는게 아니라면, 동료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잖아?


기장님께서 말씀하신 조종사의 장점은 명확하고 따뜻했다. 동료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서 확실한 만족과 행복이 느껴졌다. 실제로 조종사들은 서로 경쟁할 일이 거의 없다. 공채 시험을 통과했다면, 회사가 요구하는 절대적인 능력만 보이면 된다. 동료들 보다 눈에 띄는 실력과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도 된다. 승객과 화물을 안전하게 목적지에 운반하는 일만 해내는 일. 자신의 일을 해내기 위해 더 잘 해내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면 된다.


덕분에 한 가지 장점이 더 생기는데, 서로 물러보고 도와주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솔직하게 물어보고 배우면 된다. 여기에는 직급도, 연차도, 나이도 없다. 처음 혹은 오랜만에 가보는 공항이라면 ‘동기님, 어제 다낭 가셨던데 메뉴얼이랑 다른 부분이 있다면 좀 알려주십쇼.’ 하고 능청스럽게 물어볼 수 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알려주고 도움을 주는 이곳에서는 모두가 같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성장한다. 내가 남들을 이기기 위해 공부하고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 하는 일을 잘 하기 위해, 여유 있게 하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면 된다.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 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왔다. .... (중략)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 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 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돋보이기 위해 혼자만의 지식을 갖고 있기 보다 서로 알려주고 토론하는 문화가 기장님께서 말씀하신 조종사 라는 직업의 장점이었다. | 출처: Oysterjets.com




부기장이 선택한 장점: 다양한 어른들의 삶을 배울 수 있는 대화


공항에서 느껴지는 설램

최고의 뷰를 가진 사무실

자주 경험하는 해외

자주 타는 비행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그리고 여러 기장님들을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조종사의 장점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내 일의 장점을 한 가지 전한다면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좁은 조종실에서 기장님들과 틈틈히 나누는 대화들이다. 나이와 취미, 요즘 관심사 등 소개팅처럼 small talk 로 시작하는 이 대화는 하루 혹은 몇 일 동안 이어지면서 종종 깊은 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마치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의도치 않게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기장님들과 일하는 동안 오랜 시간 동안 같이 다니면서 듣는 이야기들은 비행 지식이나 스킬 뿐만 아니라, 내가 비행을 더 좋아하고 잘하게 되는 일에, 그리고 어떻게 살면 더 좋을지 알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브런치에 올릴 컨텐츠도…)


결혼 생활에서 오는 행복

직장인이라면 다들 고민하는 재태크 이야기

기장님들 만의 특별한 취미 생활

개인적으로 살면서 아쉽거나 만족하셨던 점

스스로 비행을 연구하면서 알게된 꿀팁

매뉴얼에는 없지만 경험으로 알게된 비행 내용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고 해서 삶의 모습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 출처: ‘이름 그래도 울트래블러’님의 브런치스토리


마치 인생 후기를 들어보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이 움직이는 문장들이 많다. 들어온 이야기들을 요약하면 같은 직업, 같은 회사를 다니더라도 삶의 모습이 다양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이 회사에서 버치면 10년 뒤 내 모습은 나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 마저 든다. 테니스나 골프, 요즘 인기있는 스포츠지만 건강을 위한 찍먹의 수준이 아니라 대회에서 입상할 만큼 수준급 실력을 가진 분들도 계시고, 자동차 레이싱이라는 생소한 취미를 가진 분들의 이야기도 듣게 된다. 또 마라톤 풀 코스를 여러번 완주하신 기장님, 책을 쓰거나 강연에 나가시는 기장님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직업이, 나의 회사가
내가 선택 가능한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직업이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각기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원하는 삶을 얻기 위해서는 직업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조종사라면 모두가 매주 다른 나라에서 바캉스를 즐기고 있을 것 같고, 대기업에 다닌다면 기업이 복지를 꽉 차게 누리며 살고, 개발자라고 하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가능할 것 같고, 작가라고 하면 모두가 마감 기한에 쫓기며 아둥바둥 하는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양한 기장님들의 삶 만큼, 어떤 직업을 갖는다고 해서 우리 삶의 모습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 삶과 행복은 나에게 달렸다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삶의 태도였다. 이 마음만 있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은 다양했다. 직업이 주는 제한과 제약이 있을 수는 있었지만,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과 관심있는 것들을 쫓아가는 기장님들의 삶의 태도는 나의 시야를 넓혀 주었고 나의 행복과 직업 만족도를 직업과, 직장, 그리고 이곳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일들에 떠넘기지 않게 만들었다.


끝으로 예전에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어느 기장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잘 생각해봐
은퇴까지 20년 남았다면
대학교를 5번이나 더 다닐 수 있어
.
전공 한 개당 한 개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앞으로 직업을 5개나 더 가져볼 수 있다는 말이지


.

.

.


해당 글의 대화는 각색한 내용이며

특정 인물을 지칭하거나 연상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1분 1초 비행안전이 우선이며,

안전한 상황에서만 오가는 대화라는 점을 한번 더 언급 드립니다.


이전 03화  또 제주? 이제 지겹지 않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