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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Mar 12. 2024

06. 119를 불렀다면 해야 할 3가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 할머니와 같이 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서로 코 고는 소리에 못 이겨

할머니가 나와 함께 자게 된 것이다.


나는 원래 잠 귀가 어둡다.

잠들기만 하면 누가 꼬집어도 절대 깨지 않는다.

그날은 이상하게 잠 귀가 밝았다.


할머니는 먹는 약이 많아서 밤마다 화장실에 자주 간다.

이 날도 평소처럼 화장실에 가는 줄 알았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할머니는 계속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새벽에 깬 터라 졸려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우리가 자는 방에서 화장실까지 가려면 거실을 지나야 했다.


거실까지 걸어가는 할머니의 발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소리가 아니라,

터벅 … 쿵 터벅 쿵 이런 소리가 났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려고 하는 소리가 계속 났다.


“나가 봐야 하나…?”


인생 최대의 청력을 사용하던 찰나에

할머니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비틀거린 거겠지? 그냥 잠이나 자자.’


다시 잠에 들려던 순간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할머니는 방으로 다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할머니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파에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바로 일어나 거실로 달려 나갔다.

할머니는 소파 바로 밑에 쓰러져있었다.

깜짝 놀란 중학생의 나는 연신 왜 그러냐고 묻기만 하다가

혼자선 안 되겠단 걸 깨닫고 이방 저 방 달려가 아빠와 할아버지를 깨웠다.


아빠가 119에 전화를 걸었고,

할아버지는 계속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했다.


할머니는 계속 몸이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당황한 중학생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옷 차림의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병원에 가야 한다며 옷을 입혔다.

나도 병원에 따라가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이때 처음 안 사실이지만

구급차에는 단 한 명의 보호자만 탑승이 가능하다.


할머니가 퇴원하면 집까지 차를 타고 오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아빠와 할아버지는 차를 타고 내가 구급차에 동승했다.


구급차에 타니 영화에서나 봤던 그 내부가 똑같이 펼쳐졌다.

머리맡에는 봉투가 여러 장 걸려있었고,

각종 응급 용품이 있었다.


구급 대원은 차분히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했고,

아주 위급한 상황은 아닌 것을 확인하자 인적사항을 패드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기타 질병 사항을 물었다.


응급차를 타고나니, 내가 응급차를 타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할아버지나 아빠가 탔다면 절대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원래라면 20분 이상 걸리는데

약 10분 만에 왔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바로 응급실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영화와는 달랐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어서였을까

들어가서 잠시 대기를 했다.

환자의 인적사항을 접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접수를 마치자 진짜 응급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와 응급실을 총 2번 갔었는데

이 때는 코로나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응급실에 들어가도 별 제지가 없었다.

이 병원이 특이했던 걸까?


아무튼 할머니는 각종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연이어 들어왔고

우리는 할머니 옆에 서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지만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아빠는 점점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주세요”

“원인을 찾지도 못할 거면 왜 여기 눕혀만 놓냐고요”


의학 드라마에서 봤던 진상 역할이 떠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응급실에서 소리치는 사람은 절대 진상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가족이 생사의 위기에 빠지면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화내는 나의 가족들도 이해가 갔고,

그럼에도 병명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는 의료진들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검사 시간이 길어져 새벽이 되었다.

학교를 가야 했던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집에 돌아갔다.

나는 잠 같지도 않은 잠을 잤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옷을 챙겨 병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잠에서 깨자마자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가 밤에 잠이 안 와서 수면제 두 알을 먹었대”


수면제를 정량 복용하지 않아 생긴 해프닝이었다.

할머니는 평소에도 불면증이 있었는데,

두 알 먹으면 잠이 더 금방 올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다고 한다.

병원에서 어쩐지 검사하는 내내 할머니는 졸리다고 잠에 들었었다.


병명을 찾지 못하자 할머니가 의사에게

“사실 수면제를 두 알 먹었는데..”

라고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하루 종일 혼났고

이 날 이후 무조건 약은 처방받은 대로 먹는다.



누군가 위급할 때의,, 3가지 조언


여섯 번째 情(정)

이 글을 보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평생 응급실에 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만약 가게 된다면 아래의 3가지를 기억하라.  

 

1. 응급실에 간다면, 환자의 신분증부터 챙기자.

주민등록번호를 모르면 환자 등록이 안되어 응급실에서 시간이 지연될지도 모른다.   


2. 환자의 여분 옷과 신발을 챙기자.

보호자라면 사실 별 상관은 없지만, 응급실에서 모든 처방을 받고 나오게 되면

잠옷바람의 환자는 집에 가는 동안 춥다. 신발을 제대로 신고 나왔을 리도 없다.

신발과 양말, 겉옷 한 벌 정도는 챙기면 좋다.

물론 급한 상황에서 생각이 나겠냐만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옷을 챙기라는 얘기가 떠올랐다면 말이다.

굳이 누군가 위급한데 옷부터 챙기란 뜻은 아니다.


3. 조금이라도 위급한 상황이라면 무조건 119를 부르자.

당황하고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자차를 끌고 병원에 가는 경우가 있다.

(장염에 걸렸던 내가 그랬었다.)

구급차를 타고 가면 응급실의 우선순위(?)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자차를 타고 접수하게 되면 최소 2~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그 대기 시간에 많이 위급해진다면 바로 진료를 보긴 하지만..

아무래도 위급한 상황의 가족들의 입장에선 빨리 진료를 보고 싶어 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아프지 않은 게 가장 좋긴 하지만!

만약의 상황에 이 정도를 알고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섯 번째 情(정)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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