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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여기 Mar 19. 2024

엄마는 왜 맨날 빨간색이에요?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지




엄마만 아이들을 관찰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도 엄마를 늘 지켜보고 있었다.

그 증거로 초1, 초2 아이들이 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엄마는 왜 맨날 빨간색만 먹어요? “



“엄마가 그랬어?”

한 번씩 웃고 지나갔지만 아이들의 질문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우연히 사진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로 사진첩에는 빨간 음식만 모여있었다.







엄마의 입맛은 빨간 음식?






“얘들아, 너희들 말을 듣고 엄마가 핸드폰 사진첩을 봤는데 진짜 빨간색 음식만 있더라?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

엄마의 고백에 첫째 아이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른이 되면 다 빨간 음식만 먹어요?”

“아니, 글쎄 그건 아닐 텐데… 음식이 매우면 약간 입맛도 돌고 당기거든~ 그래서 아닐까?”







답을 하긴 했는데 딱 내 마음 같은 답은 아니었다. 그러자 또 질문이 이어졌다.

“언젠가 아빠가 그러셨잖아요. 매운 음식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고요. 뜨거운 음식도 그렇고요. 그럼 어른들은 통증을 즐겨요? 왜요?”

아이의 질문에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통증을 즐기는 사람이란 말인가? 나쁜 말은 아니지만 ‘자극적인 것’에 꽂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나는 원래 매운 음식을 좋아하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언제부턴가 나만의 입맛이 사라졌다는 거다. 연년생을 낳았더니 임신-출산-수유를 쉼 없이 2세트 반복했다. 동시에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어떤 맛을 선호하는지 잊어버렸다. 출산을 하면 뇌까지 낳아버린다더니 과거에는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떡국 떡으로 만든 청경채 떡볶이






둘째 돌 무렵에 단유를 하고 나서야 음식 선택에 대한 폭이 넓어졌다. 육퇴를 하고 나서야 늦은 저녁을 챙겨 먹었는데 주로 매운 곱창과 떡볶이, 불족 등 자극적인 메뉴를 선택했다. 기본맛도 매운맛인데 여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1단계 2단계로 올려서 주문했다. 얼얼하게 매운맛 때문에 탄산과 맥주가 꼭 필요했다. 코에서 귀에서 입에서 불이 나오는 것 같지만 끝까지 먹었다.





다음날 화장실에서 심판을 받고 후회하지만 육퇴와 함께 다짐은 사라진 지 오래… 참 많이도 반복했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매운맛이 내 취향이라서 선택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보상심리라서 선택했다.






육아스트레스가 줄어드는 만큼 매운 음식에 대한 갈망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아이의 질문덕에 여전히 '매운 음식'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운맛 선호는 육아 전쟁의 부산물인지 진짜 내 취향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 의미로 이번 겨울 방학은 아이와 함께 먹는 밥상이 아닌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려봤다. 두 아이들에게 먼저 식사를 내어주고 나는 느긋하게 나만을 위한 요리를 시작한 거다. 아이들 음식에 약간의 고춧가루를 더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전혀 다른 메뉴를 만들기도 한다. 이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완성된 음식을 마주하면 그 만족감은 말도 못 하게 높다.






아이들의 반응도 남다르다.

"우아~ 엄마, 오늘 엄마 밥 진짜 멋져 보여요"

"다음에 우리도 만들어주세요! 아니, 지금 우리도 먹을 수 있어요?"

"그럼~ 이거 매운 음식 아니야. 먹어 봐~"

"엄마 오늘은 왜 고춧가루가 없어요?"

 엄마의 취향, 엄마의 선호가 담긴 음식을 한 두 숟가락 얻어먹은 아이들은 질문이 넘쳐난다.




아보카도 연어 덮밥






내가 늘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보다 대화가 더 풍성해졌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엄마의 다양한 선택이 내 아이에게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준거다.

나는 식탁 위에서 나누는 이런 대화들이 참 좋다.

이야기가 있는 집밥 풍경,

두 아이들에게 오래오래 좋은 추억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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