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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승 Apr 08. 2024

두부 한 모에 진심인 이유

시장 두부에 간장이면 족하다

우리 동네 재래시장 입구 옆 골목에 작은 두부 가게가 있다. 그 가게 덕분에 그 비좁은 거리는 늘 두부의 고소한 향과 온기가 흘러넘친다. 그곳은 여전히 맷돌로 콩을 갈아 매일매일 그날 판매할 두부를 만든다. 매대 위에는 커다란 판 두부가 두 판 나란히 놓여 있는데 왼쪽은 국산콩, 오른쪽은 외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다. 전자는 3,000원, 후자는 1,000원. 시판 두부보다도 훨씬 큰데, 가격까지 상당히 저렴하다. 언제 가봐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식을 일 없이 팔린다는 뜻. 점심때 가면 가게 주인과 근처 상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두부 김치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장면을 심상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장님, 두부라면 질리게 먹었을 텐데 어쩜 그렇게 행복하게 두부를 드시는지. 그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이 집 두부는 진짜다, 라는 확신이 든다. 그래서 두부가 먹고 싶을 때 나는 집 바로 앞 대형 마트를 지나쳐 다소 먼 거리에 있는 시장을 찾는다. 두부 한 모를 얻기 위해서. 


한 모 주세요, 그러면 단칼에 슥 잘라 내어 주는데 자로 잰 듯 반듯한 게 볼 때마다 신기할 따름이다. 사장님으로부터 따끈한 두부를 건네받을 때, 그니까 그 따뜻한 온기가 느끼는 순간, 나는 여지없이 어릴 적 두부 장수 아저씨에게 두부를 사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이른 아침, 그러나 아직 창 밖에 푸르스름할 빛이 번져 있을 때. 따라 따랑, 종소리 울리면 엄마는 막 잠에서 깬 나에게 널찍한 접시를 내밀며 두부 한 모 사 오라 그랬다. 귀찮아 죽겠으면서도 천 원짜리 한 장 받으면 거스름돈은 내 차지였으니 군말 없이 신발을 신었다. 밖으로 나가 보면 대문 앞 비스듬하게 세워진 낡은 자전거 위 판두부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높게 쌓여 있었다. 두부 장수는 제일 위칸의 판두부의 거즈면을 걷어내 두부 한 모를 살그머니 꺼내 내 접시 위 올려 주었다. 그 두부,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주방에 가져다 놓으면 반은 국 안에, 반은 계란을 입힌 부침으로서 아침상 위 올랐다. 


어린 시절, 그렇게 두부를 나르다 보니 종소리가 들리면 자동반사적으로 눈을 뜨게 되기도 했다. 내가 중학교에 막 입학 했을 무렵, 두부 장수는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나는 그가 이동성이 더 좋아졌으니 이제 더 먼 동네까지 가 더 많은 두부를 팔 수 있게 되겠지, 싶었다. 거기다 자건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게 두부 판을 쌓을 수 있어 묘하게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때마침 마트라는 게 우후죽순 생겨 났고, 보관이 용이한 포장 두부가 인기를 끌자, 어느 결엔가 두부 장수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90년대의 일인데 그보다 더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새벽 찬 이슬처럼 맑은 종소리와 접시 밑바닥까지 전해져 온 온기가 아직까지도 이토록 생생한데. 그것은 두부장수만 사라진 게 아니라 갓 만든 뜨거운 두부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거다. 




차게 식은 두부를 먹게 되면서 오랜 시간 잊고 살았다. 두부는 원래 따뜻한 음식이며, 따뜻할 때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거. 그러니 시장 한 구석 두부 가게에 진심일 수밖에. 어릴 적에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마지 못 해 미적거리며 나갔다면은 요즘은 설레는 마음으로 간다. 기꺼이 간다. 그 시절의 먹던 따뜻하고도 말간 두부를 아직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말을 해 뭐 하나 싶지만 이 시장 두부의 맛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두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먼저 물에 담가 놓지 않아 섬세하게 벤 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달큼하고도 고소한 향은 훨씬 진하고, 콩 특유의 풋내가 은은히 감돈다. 싱싱한 두부는, 두부가 원래 콩이었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이 가게 두부는 찌개에 넣는 거보다 부쳐 먹는 게, 부쳐 먹는 거보다 그저 간장 살짝 찍어 먹는 게 더 옳다. 사실은 그저 희고 뽀얀 네모 덩어리지만 이미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요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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