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쭌쭌이맘 Apr 23. 2024

15화. 엄마, 방을 분리해 주세요.

주말 세 아이의 방 이사하기.

"엄마, 나 방 분리해 주세요."

금요일 저녁 첫째 아이가 말을 꺼냈다. 


세 아이가 어릴 때 우리 부부는 큰 매트리스를 두 개 붙여놓고 아이들과 같이 잠을 잤다. 재잘거리던 아이들은 남편이 벽을 콩콩 두드리며 "망태 할아버지다. 오늘은 어떤 녀석이 잠을 안 자고 있지? 잡아가야겠다." 하면 신기하게도 금방 조용히 잠이 들곤 했다. 

그러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들과 방을 분리하기로 하고 첫째 아이 방 하나, 그리고 둘째와 셋째는 방 하나를 같이 쓰는 것으로 해서 아이들 방을 꾸며주었다.


나는 두 딸과 잠들 기전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는데, 남편은 첫째 아이를 눕히고 토닥토닥하고선 금방 나와버렸는지 후에 아이가 아빠는 물 마시고 온다고 하고선 안 들어왔고, 자기가 잠에 들지도 않았는데 나가버렸다고 증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1~2주쯤 지났을까. 아이가 더 이상 혼자 자기 싫다고 해서 다시 아이들의 방을 합치기로 하고 자는 방과 공부하는 방으로 나눠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아이가 온전히 방을 혼자 쓰겠다고 하니, 아이에게도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집 안의 작은 소품 하나만 바꿔도 분위기 다르고 그 변화가 즐거운데 두 개의 방을 꾸미는 것은 엄청나게 큰 변화였다. 나는 당장 아이들과 식탁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방을 어떻게 꾸밀지 의논했다.

이전부터 세 아이의 방을 어떻게 꾸밀지 혼자서 상상을 하고는 했는데 드디어 그때가 된 것이다. 나는 흔쾌히 좋다고 말하며 아이보다 더 설레는 기분이었다.

남편도 이제 첫째가 방을 혼자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면서 당장 이번 주말에 방을 꾸며주자고 했다.



이사는 토요일 저녁을 먹고 8시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틈틈이 버린다고 버렸으나 남편이 모르게 버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인형이 한가득 담긴 수납장은 아이들이 인형을 모두 꺼낸 후 거실로 꺼내놓고(이 수납장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결국 남편 의견대로 안방 침대옆에 두기로 했다. 요즘 내가 책을 읽으니 책장으로 쓰면 좋겠다며 작은 스탠드도 놔주겠다고 했다.) 첫째 아이의 레고 수납장은 위치를 바꿔놓았다.


오래된 장난감과 쌓여있는 책까지 이것저것 꺼내다 보니 거실이 발 디딜 곳 없이 가득 찼다. 한가득 쌓인 짐을 보니 갑자기 피곤이 밀려왔고 시간도 어느새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어 오늘은 이대로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침대에 누우니 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 내일은 해야 할 일이 더 많은데 큰일이다.



일요일 아침부터 셋째는 졸졸 따라다니며 언제 이사를 하는 거냐고 계속 물었다.

왜 이렇게 신이 난 건지.

둘째, 셋째 아이 책상을 밖으로 꺼내고 첫째 아이 침대를 이 쪽 방으로 옮겨와 위치를 잡는데 남편과 나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나에게 아이들 방 구상을 하라고 해서 열심히 고민해서 그림으로 보여줬을 때는 아무 말도 없더니 막상 가구를 배치하려니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으휴! 살짝 화가 나려고 했지만 어쨌든 아이의 방이니 아이에게 의견을 물어 배치해 주었다. 또 나는 벽 쪽에 세우려던 5단 책장을 남편 의견대로 아이가 공부하는 공간과 자는 공간을 구분해 주기 위해 책상과 침대 사이에 두기로 했다. 수납하는 쪽이 침대를 향하고 있으니 너무 답답해 보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남편이 다른 방에서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첫째와 둘이서 낑낑대며 책장의 방향을 돌려놓았다.

답답함도 덜어지고 훨씬 아늑한 느낌도 들었다. 책장의 뒷면에는 아이가 세계지도를 붙여달라고 해서 사이즈를 맞춰서 구매하기로 했다.

옷장을 넣어주고 아이의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아이가 정리를 했다. 본인만의 공간의 생기는 것이 즐거운지 수건으로 땀을 닦아가면 책 한 권 한 권 열심히 정리를 했다.


첫째 아이가 방을 정리하는 사이 기존에 잠을 자던 방은 둘째와 셋째 아이 방으로 변신을 하고 있었다.

또 아이들 침대 위치로 남편과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괜한 것에 다툼하지 않기로 하고 남편 의견대로 침대를 놓고 책상과 책장까지 들여놓았다. 두 아이들도 새로 바뀐 공간이 마음에 들었는지 정리를 열심히 했다.


점심은 첫째 아이가 이사를 한 기념으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역시 이사하는 날에는 자장면이지.

큰 가구의 위치를 잡아주니 아이들이 나머지 정리를 하면서 방 정리가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남편과 나는 거실에 나와있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쓰레기장에 왔다 갔다 하는 사이 거실도 말끔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고 내가 물걸레고 쓱쓱 닦고 오전에 세탁해 둔 카펫까지 거실에 깔아 두니 집이 개운해진 것 같았다.

귀찮아서,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들인데 마음먹고 한꺼번에 싹 정리를 해버렸다.

요즘 부자가 되는 정리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정리력 100일 버리기 프로젝트가 아닌 1일 100개 버리기 프로젝트를 한 느낌이었다.

[공룡 네마리가 지키는 첫째 아이방.  창문에 블라인드는 커텐으로 바꿀 계획이다]
[4살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은 공주님 베개를 셋째는 아직도 좋아한다. 둘이서 사용하다 보니 침대와 책상만으로 방이 가득 찬다]


하지만 아직 버리지 못한 커다란 짐이 하나 남아있다. 아이들이 그동안 모아둔 인형들이다.

작은 인형부터 내 키를 넘는 큰 인형까지 의미를 따진다면 버릴 인형이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 보니 트램펄린에 인형이 가득 차서 트램펄린을 사용하지 못한 지가 꽤 되었다. 이상하게 이곳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셋째 아이는 당근에 인형을 팔아서 돈을 벌자고 하는데 아쉽게도 그만한 상태도 아닌 것 같다.

살 때도 돈이고 버릴 때도 폐기물 처리비용을 내야 하니 더 이상 인형은 그만!!



아이들 방을 꾸미고 나니 집안 분위기도 바뀌었고 아이들도 바뀌었다.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리든 말든, 이불 뒤집어쓰고 내가 깨워야만 일어나던 아이들이 각자 방이 생기니 알람이 울리면 스스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이!!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칭찬세례를 마구마구 날렸다. 이렇게 예쁠 수가.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 준비를 하니 출근준비를 하는 나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고, 여유가 생기니 아이들에게 대하는 말투나 태도도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제 첫째 아이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도 되냐고 물었다. 정확히는 자기 방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은 동생들과 같이 쓰다 보니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제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니 친구를 초대하고 싶은가 보다. 어찌 아이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100% 찬성이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나도 집들이를 하지 않았는데 첫째 아이가 먼저 방들이를 하게 되었다.

오빠가 하면 둘째와 셋째도 친구들을 초대하려고 할 텐데 이번엔 무조건 승낙해 주기로 한다.



작가의 이전글 14화. 세 아이가 용돈을 쓰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