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쭌쭌이맘 Apr 26. 2024

16화. 4월 끝자락에 감기에 걸렸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감기에 걸렸다. 겨울에도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잘 넘겼는데 4월 끝자락에 웬 감기야.

어제 오후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더니 목요일은 오전 진료만 한다는 안내장이 잠긴 병원문에 붙어 있었다.  집에서 비틀비틀 간신히 걸어왔는데 끝났다고? 멍하니 잠시 서있었더니 지나가시던 어르신이 진료가 끝났다고 한번 더 알려주셨다, 네.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나? 다른 병원 찾아보는 것도 지금은 너무 귀찮다.

내일  일찍 병원을 가기로 하고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햇볕이 뜨겁고 내 머리도 뜨겁다.

약을 먹고 바로 누웠다. 아직 아이들이 올 시간이 한참 남았으니 한숨 자고 일어나도 될 것 같다.



어젯밤엔 한기가 었는지 들후들 몸이 떨리면서 추웠다.  아직 겨울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이불을 꽁꽁 싸매도 몸이 떨렸다. 그런데 숨을 내쉬는  내 입에선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른 병원이라도 갔다 왔어야 했나.

새벽 2시. 일어나 해열제를 하나 먹고 다시 누웠다.

술을 잔뜩 먹고 들어 온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시끄럽지만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어제 회식이 있어 술을 마신 남편은 아침에 라면을 끓여 먹고 출근을 다. 오늘은 어쩔 수 없다.

첫째 아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괜찮냐고 물어본다. 오늘 꼭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둘째 아이는 수납장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손을 내민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셋째 아이는 침대 옆으로 다가오더니 오늘 친구를 초대해도 되냐고 물어본다.

오늘은 엄마가 아파서 챙겨줄 수 없으니 다음에 데려오면 좋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안방에 있으면 돼, 우리끼리 라면 끓여 먹을게라고 한다. 다음에 데려오라고 했는데 안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침은 식빵에 잼과 햄으로 간단히 먹고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시간에 나도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왔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다.

수액과 비타민 주사를 맞았다. 수액실에 침대 세 개가 놓였는데 다른  침대에도 수액을 맞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 콜록콜록 소리가 계속 들린다.

주사 바늘은 나이가 들어도 무서운 건지.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뒤적이는데 첫째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깜짝 놀라 전화를 받으니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엄마 괜찮아?" 물어본다.

"응, 지금 병원에서 수액 맞고 있어. 쉬는 시간이야?"

"화장실이야. 괜찮은지 전화해 봤어."

"응, 괜찮아 얼른 들어가"

"알았어."

엄마 걱정에 화장실에서 전화를 하는 아이 마음생각하니 너무 고마웠다.

1시간쯤 걸렸을까. 수액을 다 맞고 집에 걸어오는데 날씨가 너무 좋다. 푸릇푸릇한 잎들 사이에 하얗게 오른 민들레 꽃씨가 너무 이쁘다.



집에 돌아오니 식탁 위에, 싱크대에 어제 저녁부터 치우지 못한 그릇들이 한가득이다.

후유! 잠깐만 쉴까.

그래, 지금 나는 아프니까 모르는 척 아무것도 하지 말고 한 시간만 쉬자.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핸드폰을 보고 그렇게 뒹굴거리다가 에잇. 안 되겠다.

식탁 위 그릇까지 모두 모아 설거지를 하고, 보리차물을 끓일 주전자를 가스렌지에 올린다. 빡빡 주무른  행주는 한번 더 삶고, 수건은 세탁기를 돌린다. 청소기를 돌리고 마지막으로 맛있는 커피를 타서 소파에 앉았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선지 몸이 훨씬 나아진 것 같다.

그런다고 또 이렇게 부지런을 떨어야 하니. 그냥 모르는 척하고 좀 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휴.




셋째 아이가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왔다. 

씩씩하게 인사를 하며 들어오더니 배고프다며  컵라면을 찾았다. 나는 서둘러 준비를 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앞접시, 컵, 젓가락을 준비하고 요구르트도 하나씩 놓아준다.

컵라면 하나를 먹는데도 아이들은 즐거웠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먹다가 컵라면이 친구의 옷에 쏟아지고 말았다.

서둘러 수건으로 아이 옷을 닦아내며 괜찮니, 괜찮니 하고 물었다. 다행히 화상은 입지 않았으나 아이는 아이보리색 상하의 옷을 입었고 이미 라면 국물에 빨갛게 물들었다.

셋째 아이 옷을 가져다 갈아입히고, 먼저 손으로 주물러서 라면 국물을 지운 다음 세탁기에 돌려 널어두었다.

혹시나 아이의 엄마가 놀라실까봐 간단하게 편지를 작성해두었다.

쏟아진 라면 국물을 닦아내고 정리를 하고 나니 휴~~ 한숨이 나온다.

나도 환자인데...

아이들은 벌써 아이스크림을 손에 하나씩 쥐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전 15화 15화. 엄마, 방을 분리해 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