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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전토끼 Feb 20. 2024

똥손의 추억

"사진 좀 찍어줄래(Can You Take Picture)?"의 똥손효과


신혼여행과 출장, 유럽과 미국생활을 하면서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었다. 

그나마 신랑과 둘이 가면 그럭저럭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하지만, 혼자 갔을 때는 셀카봉이 있어도 상반신이나 확대된 머그샷 같은 것만 찍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혼자 여행을 가게 되면 괜스레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혹시 나와 같이 혼자 여행 온 사람이 있는지 혹은 커플이거나 일행인데 단체사진 찍어 줄 사람이 필요한지 말이다. 그러다 누군가 눈이 마주치면 서로 너나 먼저 할 거 없이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Can you take picture)?"라고 물어본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단연코 "물론이죠(Of course)"이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것까지는 훈훈했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외국인(특히 서양인)들이 찍어주는 사진들은 대부분 신체 부분이 잘려있다. 

예를 들자면 배경을 담은 것은 좋으나 하반신을 잘라버린다든지, 심지어 배경을 잘 담아야 한다는 열정 때문인 건지 얼굴만 달랑 나온 사진도 있다. 


그러한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왜 그들의 사진을 나름 구도까지 고려하면서 사진을 찍어준 건지 회의감을 느꼈다. 가끔, 금손을 가진 외국인들도 있으나 이러한 외국인을 여행지에서 만나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진을 잘 찍기도 하고, 다리 길게 나오는 법 혹은 비율을 정해서 사진구도를 잡을 만큼 사진 찍는 것에 열정적인 것 같다. 아마, SNS에도 이왕이면 잘 나온 사진 올리고 싶지, 땅딸보나 쭈구리 같은 사진은 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도 똥손으로 악명이 자자하여, 셀카를 가끔 SNS에 올리면, "어떻게 그렇게 찍을 수 있냐?"라고 한 소리 듣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인들에 비하면 나는 금손 중에 금손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처음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찍어준 사진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독특한 사진(?) 들을 보면서 추억을 곱씹곤 한다. 그리고는 "아 그때 내가 정말 ***에 갔었구나", "그때 저 ***앞에서 외국인들을 만나서 사진을 찍어줬지"라고 추억을 회상하며, 여행 갔었던 그때의 즐겁고 벅찬 감정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에는 가끔 이런 똥손(?) 사진들을 뒤져보고는 한다. 잘 나온 사진들도 물론 많지만, 이런 사진들을 보면 그때, 그 당시의 현장감과 나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기억나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난 수많은 여행에서 만난 똥손(?)의 외국인들도, 소중하고 즐거웠던 여행에 대한 추억의 한 조각이었음을 깨닫는다. 





헤더 이미지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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