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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늬의 삶 Sanii Life Apr 16. 2024

새 커리어를 시작하기에 앞서

베트남 보름살기 01 : #나트랑 #귀청소

2024.04.16.화요일


해당 여행기는 2020년 2월을 기록했습니다. 코비드 바이러스 팬데믹이 막 시작될 때였어요. 저는 타이밍 좋게 베트남에 머무른 한국인이었습니다. 보름살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부터는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 중국인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격리하기 시작했고, 어딘가에 가둬놓고 반미만 준다는 말이 있었거든요. 찾아보니 다낭에 입국한 약 20여 명의 한국인이 호텔 측에서 거부 당해 폐병원에 이틀 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나봐요. 지금 돌아보면 다행히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당시에는 그런 일을 갑자기 겪게 돼 무척 당황스럽고 공포였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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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일주일 이상의 외국 방문은 상당히 긴 여행이다. 나는 개발자로 새로운 커리어를 그리고 있으며, 취업 시 긴 여행을 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강사로 근무하던 학원에서 퇴사한 뒤 베트남에서 한달을 살아보기로 한다.


원래는 노르웨이+아이슬란드 워크캠프 / 스페인+포르투갈 / 조지아를 고민 중이었으나 3월부터 타지역으로 이사도 가야 하고,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위한 본격적인 시작도 하는 와중에 날씨가 너무 추운 곳이거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할 것 같은 여행은 하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


다시 추린 후보는 하와이 혹은 뉴질랜드였는데, 하와이는 장롱면허에 스노쿨링에 흥미 없는 내가 가기엔 지루할 것 같고 뉴질랜드도 역시나 여행 느낌이라 패스했다. 동남아는 시간 나면 틈틈이 갈 수 있는 거리라 고민했으나, 취업하면 '한달살기'는 힘들다는 합리화를 조금 섞어 더운 날씨와 무엇보다도 마사지를 위하여 떠나기로 한다.


최대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동행을 세 번 정도 구해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언어가 통하므로 한국인 인연 만드는 건 쉽다. 하지만 스몰토크를 넘어선 외국인 인연을 만드는 건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제는 영어에 자신감도 제법 붙었고, 동일 문화권이 주는 안정감도 좋지만 외국에 나갔을 때 더욱 다양한 상황과 인생을 마주하는 재미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하므로 잘 맞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 베트남 현지인이면 더욱 좋고, 다른 나라여도 좋다.


백팩커에 머무르는 게 제일인데 사실 지난 태국여행 때 처음으로 '아, 이제는 독방이 다인실보다 좋다'라고 생각했던 터라 고민이 된다. 예전엔 늦은 시간에 룸메들이 들락거려도 잘만 잤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체력 될 때까지는 다인실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며, 혼자만의 공간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숙소를 적절히 분배해야겠다. 아무튼 베트남 도시 중 바다도시 나트랑과 꽃의 도시 달랏에 가기로 한다. 둘 중 어느 지역이 나한테 더 맞을지 감을 못 잡겠다. 가봐야 알 것 같다.


나트랑에서 귀청소/포핸드마사지/생강마사지는 꼭 받아보고 싶고 달랏에서는 샴푸마사지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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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에서 일주일, 달랏에서 일주일 머무른 뒤 더 잘 맞는 도시에서 나머지 2주를 보내려고 했다. IN하는 나트랑에선 쉬기 위해 개인실, 달랏에서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백팩커를 가려고 했다.


어제부터 우한폐렴 소식이 전세계에 돌고 있다. 발병한 지는 한 달 정도 됐다는데, 이제야 알려지는 중이라고 한다. 침 등 타액으로 전염되기에 미세먼지나 매연 없는 청정공기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고, 걸리적거리는 거 딱 질색인데 각막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다고 하니 선글라스와 안경을 써야 한다.

여행 기본 의약품, 원체 적응력 좋은 몸이라 물갈이를 잘 안 하지만 친구의 추천으로 챙기게 된 샤워기 필터에 덧붙여 손 소독제, 일회용 수저 등도 챙겨야할 듯싶다.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싶었는데 이건 당연히 패스해야 하고 아직은 길거리에서나 실내 흡연이 아무렇지 않은 국가라 담배 피우면서 요리하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다만 제발 요리사들이 음식 위에 기침 안 하길 바라며 조식과 로컬음식을 먹어야할 것 같다.

시샤 진짜 해보고 싶었는데 남들이 입댄 부분에 나도 입 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안 되겠지? 하. 정말 여러모로 번거롭다.


나트랑은 중국인이 많고 달랏은 베트남 현지인이 많으니 달랏에서 더 오래 머무를까 생각 중이다. 달랏 8인실 백팩커는 취소했다. 어쩌다가 동행을 만나는 건 괜찮지만 면역력이 약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타인과 같은 공간에서 숙박 하기는 다소 위험하기 때문이다. 피아노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던 곳인데, 그 숙소 개인실은 다인실보다 밤이 춥다고 해서 우선은 다른 숙소를 찾아봐야겠다.


여행 준비는 거의 끝냈다. 환전이랑 공항 가는 리무진 예약만 하면 된다. 안전히 다녀오자. 즐겁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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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강사로 지낸 약 2년 간의 나날들은 정말 재미있고 보람찼다. 시원섭섭하지만 이제는 지난 날들로 남겨두고 다른 커리어를 쌓은 뒤 그 커리어를 은퇴할 때까지 가져갈 예정이다. 노후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고, 이제는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인생은 도전과 경험의 연속이고, 그래야 재미있으니까 최대한 살고 싶은 대로 즐겁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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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일 일요일 지금 시각 베트남 나트랑 16:52, 나는 14:45부터 16:12까지 나트랑 로얄살롱에서 VIP 코스(90분)을 받았다. 나는 베나자 초보 등급으로 10% 할인만 받았다. 잊고 싶지 않아서 곧바로 줄글로 쓴다.


우선 로얄살롱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귀청소라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직원들에게 긴 바지를 입힌 곳이 여기 뿐이었다. 다른 곳은 누구 보기 좋으라고 죄다 짧은 치마나 숏바지를 입힌 건지 모르겠다. 혼자서든 아니면 친구, 연인, 가족끼리 가든 손님도 직원도 불편할 법한 인형놀이 복장인 곳들은 후기가 좋더라도 가기 싫었다. 로얄살롱은 오픈 한 지 얼마 안 돼서 호불호가 갈리는 평이 많았지만 우선 선택해보았다. 결론은 대만족이었다! 지인들이 나트랑에서 귀청소를 받고 싶어한다면 로얄살롱을 200% 추천할 것 같다.


VIP 순서는 족욕 > 면도 or 얼굴(스톤)마사지 > VIP팩 > 손톱정리 > 귀청소 > 이어테라피 > 마사지 > 스트레칭 > 샴푸 > 두피마사지.


0. 시작 전

예약 시간은 3시였다. 15분 일찍 오라길래 20분 일찍 갔다. 5분 간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선결제했다. 물 다 안 마셨는데 따라오라고 해서 '벌써 시작하나?'라고 생각했다.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간다.


1. 족욕

따뜻한 물에 뭔지 모를 가루를 타서 발을 넣는다. 문질문질 해주시는데 오른발 빼서 닦아주시길래 왼발도 그러겠거니 해서 뺐는데 다시 살살 집어넣으신 뒤 문질러서 닦아주셨다. 이때부터 믿음이 팍팍 가기 시작했다. 대충 안 하시는 분이구나 했다.


2. 면도 대신 얼굴(스톤)마사지 선택

얼굴에 무언가를 바른다. 폼클렌징인가? 바르는 과정에서 얼굴 마사지를 해주셨다. 다 바른 뒤 데운 수건을 눈에 올리고 안구를 잠깐 마사지한다. 요즘 전자제품만 보니까 눈이 뻑뻑했는데 좋았다. 이후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셨다.


3. VIP팩

얼굴에 정말 꼼꼼히 바르셨다. 왼쪽 조금을 남기고 옆 직원분이랑 잠시 대화하는데 (대화가 아주 가끔씩 있었지만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왜냐면 일을 매우 만족스럽게 해주셨으니까.) 혹시나 안 바르고 넘어갈까봐 불안했지만 괜한 생각이었다. 왼쪽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신 뒤 귀청소를 준비하셨다. 최근 손톱을 하도 뜯어서 손톱정리는 생략했다.


4. 귀청소

귀를 열심히 파주셨다. 겉에서부터 안으로 파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가끔 따끔! 할 때 있었는데 10대 때 이비인후과에서 기계로 귀지 빨아들일 때나 더 어릴 때 엄마가 귀 파줄 때나, 심지어 내 스스로 귀를 팔 때도 그 정도의 고통 아닌 아픔은 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 귀청소가 메인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짧았고, 마사지가 메인이었다. 어쨌든 귀청소 끝날 때 드릴소리 나는 무언가로 마무리하길래 그게 이어테라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양쪽 귀 판 거 보여줬는데 와우. 와우...! 사각사각 소리 좋았다.


5. 이어테라피

이어테라피는 드릴소리 드드드득이 아니고 긴 무언가를 내 귀에 꽂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볼에서 열기가 느껴지고 모닥불이 타다다닥 타닥타닥 타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없는 편이라 무섭지 않았다. 불이 내 볼에 닿는다면 그 전에 직원분 손에 닿을 거니까, 직원분이 본인 다치기 전에 막대를 빼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6. 마사지

팔 양쪽, 다리 양쪽 순으로 마사지했다. 중간에 어깨도 했는데 사실 스포츠마사지에 단련된 몸이라 상체 할 때는 시원하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근데 한 쪽 할 때마다 혈액순환이 아주 잘 되는 것 같았다. 마사지 자체는 자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성심성의껏 해주셨다. 하체는 진심 시원했다. 최근에 엘자다리 등 하체 혈액순환 운동을 안 한 상태였고 약 12시간 인천공항 노숙하고 비행기 또 타고 온 상태라 다리가 힘들었는지 진짜 좋았다. 중간에 눈 마주쳤는데 직원분이 내 유연성에 엄지를 올려주셨다. 두피도 해줬는데 머리채를 아프지 않게 끌어당기는 마사지도 있었다.


7. 스트레칭

이게 끝이 아니란 말이야? 직원분이랑 엘리베이터 타고 한 층 올라가서 마사지베드에 엎드렸다. 또 다시 마사지가 시작됐고 온몸을 다 해서 해주셨다. 내 생각에 이 분은 의자보다 베드에 특화된 마사지사신 듯했다. 척추 하나하나 교정 됐고 정말 시원했다. 그리고 내가 언제부턴가 엎드려서 가슴 뒤쪽 등 부분을 누르면 숨이 탁 막히면서 기침하는데, 이분이 등을 네 군데로 나누어서 눌러주시고 두 번째가 그 타이밍이었다. 이분은 한 번에 이런 특이점을 캐치하시고 1, 3, 4번째 등만 눌러주셨다. 와우. 섬세하신 분이다. 그리고 딱 하나 두려웠던 부분이 엎드려서 손을 앞으로 쭉 뻗는 거였는데 잠깐 멈칫했으나, 세상에! 평소보다 더 쭈우욱 뻗어져서 손이 발끝을 한참 넘는 게 아닌가. 몸이 엄청나게 풀렸구나 생각했다.


8. 샴푸

마사지베드실과 같은 층이며 샴푸 하기 전에 어깨랑 목 살짝 더 마사지 해주신다. 샴푸만 하지 않는다.


9. 두피마사지

두피마사지도 같이 해주시는데 두피 꾹꾹 누르는 건 역시나 우리 동네 미용실 사장님이 연륜이 있다 보니까 훨씬 잘하신다. 이때는 딱히 시원하지 않은데 이후에 두피를 긁어주신다. 크으으. 이게 베트남식 두피마사지구나? 시원했다. 이때 얼굴에 샴푸가 튀어서 머리만 감겨줄지 얼굴도 닦아줄지 생각했는데 후자였다.


10. 마무리

셀프드라이라서 셀프로 할 준비 했는데 서비스정신이 철저하시다. 의자 빼주시고 앉았더니 로션 바를 거냐며 물어봐주셔서 발랐고, 드라이기를 나한테 건네주고 가셨다. 다 말린 후 1층까지 엘리베이터 타고 다른 손님 일행, 직원분이랑 같이 내려가서 또 새로 음료를 받아 마시고 (같은 음료인가? 다른 건가? 색은 비슷하던데 처음 들어갔을 때 받은 음료보다 더 달게 느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가 구비돼있어서 하나 받아서 나왔다. 별점종이가 있다면 만점 주고 나오려 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끝나고 로얄살롱을 나오니까 아까는 무던한 편이었던 베트남 풍경이 한껏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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