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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은 Mar 01. 2024

 미국과 엄마는 매우 닮았다

Winding River, Winding Past

눈을 떴다.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거울 속 내 얼굴이 푸석푸석할지언정.

여섯 시에 일어나 아이와 남편의 도시락을 싸고, 오늘따라 유난히 일어나기를 힘들어하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고 일으켜 세워 여섯 시 반에 둘을 집에서 내보냈다. 넷 중 반은 해결한 셈.


아직 어두운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나는 불안해진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내 몫의 나머지 반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조금이나마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둘러 커피를 내린다. 여전히 얼굴은 푸석푸석하다. 갓 내린 따뜻한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크고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깊이 내쉰다. 토해내는 기분으로.


2013년 여름이 시작될 때쯤 미국에 왔다. 그가 꽃다발을 들고 엘에이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당히 설렜고 적당히 생소했다. 열몇 시간 만에 전혀 다른 땅에 발을 내딛고 있다는 것이 다소 이질적이었다. 손만 뻗으면 한국이 닿을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갑자기 외국인이 되었다. 삶의 중심에서 멀어진 기분이었으나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 살아내야 했다. 그러다 첫아이를 낳았다. 내 몸에서 나온 젖은 머리카락을 흠칫 보면서 나의 세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작고 여린 아가는 내가 처음으로 나를 온전히 내어놓고 반드시 지켜주고 싶은 무엇이 되어주었다. 반드시 강해지겠다고 다짐했지만, 사무치게 고독했다.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삶은 내게 세 아들을 선물해 주었다. 아이들은 건강하고 밝고 명랑하게 자라 주며 나의 빛이 되었다. 한 번의 유도분만과 두 번의 제왕절개는 살아오며 겪은 것들 중 가장 무섭고 아찔하게 힘겨운 경험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아주 조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순간들에 엄마가 내 곁에서 내 손을 잡아 주셨다면 조금 덜 했을까.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나 또한 내가 한 선택들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순간들을 마주해야 했다. 가끔은, 매우 아팠다.


글로벌 호텔 재경팀에서의 커리어를 이어가기도 했다. 아이를 돌보는 것과는 다른, 마치 학교를 가는 기분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했다. 업무 스트레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업무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기분이 좋았다.


운전도 한다. 한국에서는 운전면허조차 없었고 운전을 하고 싶단 생각도 한 적이 없던 나였지만, 여기서는 운전은 필수 중에서도 필수이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려면 반드시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참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 오고 나서도. 기꺼이 침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침전한 적이 없었던 것만 같다. 나로서는 굉장히 기쁜 일이다.


미국에 오고 나서 한국에는 세 번 갔었다. 2015년 여름, 2017년 봄, 2020년 여름. 나에게는 결코 충분치 않은 시간이다. 처음 한국에 다녀왔을 때는 한 달이 넘도록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고 힘이 들었고, 두 번째 다녀왔을 때도 비슷했다. 세 번째 다녀왔을 때는 코로나가 창건했던 시기에 제법 길게-7주 정도- 다녀와서였는지 힘든 것이 그전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극복이 되었다. 향수병의 무게를 적당히 조절하고 스스로를 달랠 줄 알게 되었다. 쿠퍼를 낳을 때 결심했던 것처럼, 내가 어쩌면 조금은 강해진 걸까.


절벽에 서있는 것 같은 순간들을 마주했던 그때, 그 공기 속에, 엄마가 내 곁에서 내 손을 잡아 주셨다면 어땠을까. 왜 우리 엄마는 내게 다정하지 않았을까. 나는 꽤 착한 딸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해 온 우리 엄마는 과연 정말은 어떤 사람일까.


미국과 엄마는 매우 닮았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나라인 미국도, 지금 나를 살게 해 준 엄마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안도하고 있을 때 차가운 얼굴로 등을 보인다. 돌아선 등을 보며 어쩔 줄 몰라진 내가 발을 동동 구르다 보면 아주 느리고 고요하게 다시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다. 더 이상 차갑지만은 않은 얼굴을 하고. 그렇게 다시 안도한 나는 또다시 편안해지고, 그러다 또다시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그렇게 길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온 듯하다, 지금까지. 미국과도, 엄마와도. 미웠다가 사랑했다가 슬펐다가 그리웠다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강이 흐른다. 산다는 것은 흐르는 물과 같다. 이곳을 막으면 저곳으로 흐르니, 이곳이 막혔다고 해서 완전한 끝을 보진 않는다. 흐를 수 있는 다른 곳을 찾아 다시 또 흘러갈 뿐.

굽이졌던 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미국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내 몸과 영혼에 행한 행위들, 그러니 결국 '나'에 관한 이야기를.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엄마를 미워하고 사랑하는, 타향살이로 괴로워하는, 익숙한 곳에 있어도 외로워하는,

모든 이들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우리 모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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