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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Apr 11. 2024

초6 딸의 심기를 건드렸다


휴무날 아침 일곱 시 전에 눈이 떠졌다.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 새벽 두 시 넘어서 누웠는데 일찍 일어나서 기분이 좋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큰방에서 둘째가 TV로 영어영상을 보고 있었다. 기분 좋은 엄마는 스스로 일어나는 둘째가 예뻐 보인다. 그대로 돌진해 와락 안았다. 그러다 리모컨이 내 무릎에 눌려져 꺼져버렸다. 등골이 서늘하다. 아침부터 초6 딸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표정을 살핀다. 다행이다. 인상은 찌푸리지 않는 것 같다. 덤덤히 다시 원래 보던 영상으로 돌린다. TV채널이 아니라 보던 부분까지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미안해" 이럴 땐 빠른 사과만이 답이다. 안고 있는 그대로 등을 마구 쓰다듬었다. 그러려니 한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진다. 어쩌다 딸의 눈치를 보게 된 건지.




딸 모르게 혼자 바삐 움직인다. 세탁기를 돌린다.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찾는다. 그 모습을 본 둘째도 덩달아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엄마가 등교할 때 같이 나가려는 걸 알아챈 거다. 옷을 마구 껴 입는다. 아침부터 눈치게임을 하는 듯하다. 먼저 등교준비를 마친 딸은 나를 향해 승리의 미소를 날린다. 마지막으로 양말을 신고 있는데 "다녀오겠습니다"라며 현관문이 열린다. 한발 늦었다. 지난번 나에게 "오늘은 뛰어 오지 마"라고 들어놓고 또 한소리 먹을 뻔했다. 급하게 뛰어갈까 봐 따라가지 않았다. 오늘은 그래도 덜 서운하다. 딸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가려고 하는 순간 아 맞다. 세수도 안 했다. 하마터면 맨얼굴로 나갈뻔했다. 씻어도 별 차이는 없다만 나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모자를 눌러썼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으로 가는 길 동네친구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 전 우리 딸이 등교하는 걸 보고 왔단다. 같이 나오는 길이냐며 묻는 질문에 따로 나왔다고 하였다. 그 와중에 둘째에게 한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이 와중에 오타 낸 미. 뭣이 중헌데. 딸이랑 같이 못 나가는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문자하나에 사르르 마음이 녹아내린다.




잔잔한 물결이 언제 파도가 되어 휩쓸지 다. 사춘기라는 터널을 통과 중이다. 예측가능이 안된다. 무뚝뚝한 큰 딸에 비해 둘째는 감정이 섬세하다. 나의 기분을 살핀다. 작은 일에 속상해하고 기뻐한다. 친구를 좋아한다. 나는 둘째의 기분이 언짢아할 부분을 알고 있다. "오늘 수학 두 장 풀었어?" 매번 묻는 질문에 돌아오는 명쾌한 대답은 몇 번 없다. 오늘 같이 사이좋을 때(?) 한번 할 잔소리 두 번 세 번까지는 날려줄 수 있다. 더 이상은 안된다. 겨우 쌓은 작은 모래성이 무너지면 답이 없다. 아침에 좋아도 저녁에 등돌릴 수 있다. 



산책을 하다 둘째에게 화가 자주 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특히 중2 언니 때문에. 둘 다 동시에 붙으면 엄마는 난감해진다. 개인적으로 면담(?)하는 편이다. 그나마 따로 얘기하면 조금 말이 통한다. 엄마의 말이 다 맞다는 환상이 깨어지는 시기라고 한다. 빈틈이 많은 엄마라는 걸 자주 들킨다. 최고의 엄마는 아닐지라도 존재만으로 힘이 되어주는 엄마이고 싶다. 나는 우리 엄마가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딸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될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쫄깃해진다.




 쓰는 내도록 딸을 생각한다. 하교시간이 지났다. 계단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시간이 끝이 나고 이제 나의 심기를 다스려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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