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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Apr 26. 2024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 밤에,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와 나는 전혀 연락을 하지 않고 용건이 있으면 엄마를 통해서 하는 편인데,

딱히 이렇다 할 이유는 없지만 나는 아빠와 오래전부터 친하지 않아서 아빠의 연락이 오면 받지 않고 엄마에게 전화 왔었는데 무슨 일이냐 묻곤 했다.

그만큼 난 아빠와 친하지도, 친해지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두 달 전에 유산했을 때도 아빠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때 한참 지옥 속을 헤매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고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들 때문에 받지 않았다.



오죽하면 결혼식 때도 전날까지 아빠 손을 안 잡고 혼자 신부입장할 거라며 떼를 쓰다가 결국 당일날 풀 죽어있는 아빠의 얼굴을 보고 그날따라 마음이 약해져 같이 신부입장을 하긴 했었다.

근데 정말 뜬금없이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썩 내키지 않았는데 전화를 받았다.



"신혼집에 필요한 건 다 샀냐..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서 알아서 다 샀다고 하고 끊으려는데 아빠가 울고 있었다.

아마 전화하기 전부터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난 아빠가 왜 우는지도 모르겠어서 그 순간에도 무미건조하게 왜 우냐라고만 물었다.

아빠는 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고 하면서 다른 말을 보태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한동안 뭐에 맞은 듯이 멍했다.

왜 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냐고 묻고 싶었다.

지금 그렇게 눈물이 날 거면서

그전엔 내게 차갑고 무서웠냐고 묻고 싶었다.

여느 아버지나 다 그렇겠지만 우리 아빠는 유독 가부장적이었고 난 그런 아빠가 늘 싫었다.

그런 이유로 이미 오래전부터 갈등과 오해의 골이 깊어져 나는 평생 아빠와 친해지지 못할 거라 생각해 왔었고,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성인이 되면서 독립해 살았지만 한 번씩 가까운 지역에 살 때는 종종 집에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빠의 루틴이 있었다. 저녁이면 캔맥주를 사들고 집 앞의 공원에서 맥주를 먹고 집에 들어오는 거다.

누구와 술자리를 하고 나서도 꼭 그렇게 하고,

퇴근 후에도 하루에 한두 시간씩은 혼자 그 시간은 꼭 가져야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그런 혼자 있는 시간을 존중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올 때 항상 아빠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걸 지켜보고 들어오곤 했다.

말을 걸 수도 있었지만 항상 다가가진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빠는 늘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도 혼자 한 번씩 어둠을 헤매는 사람이라 지금은 아빠가 참 외로운 싸움을 했겠구나 생각이 든다.

나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아서 결혼식에 아빠가 덕담을 할 때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날 찍힌 내 사진을 보니 딸을 보내 마음이 아프다는 아빠를 보며 나도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아마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감정들이 휘몰아쳤던 것 같다.



이번에 이사를 하고 남편과 내가 너무 바빠서 부모님이 폭설을 뚫고 전방의 우리 집까지 3시간을 넘게 달려와 우리가 없는 텅 빈 집에서 신혼집 가구 조립을 해줬다

남편도 주말 근무고 나도 일정이 맞지 않아 못 보고 부모님만 가구 조립만 하고 갔는데 다음날 뒤늦게 가 본 집에 쌀이랑 반찬, 과일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딸기가 두 박스 있었다.

딸기를 사놨을 줄 모르고 딸기를 좋아하는 내가 다음날 신혼집을 가며 딸기를 사갔는데 두 박스나 있는 딸기를 보고 또 울컥, 눈물이 흘렀다.

고향에서 내가 좋아하는 하우스 딸기집을 들려  딸기를 박스채 사들고 왔을 그 마음이 느껴져 마음 한편이 아렸다.

생각해 보니 아빠는 봄이 될 즈음이면 매일 딸기를 사들고 들어왔다. 내가 좋아한다며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딸기가 있었다.

성인이 되고 독립하고 난 후에도, 내가 집에 갈 때마다 딸기는 늘 있었다.



그렇게 집을 채워두고 갔음에도 부모님은 또다시 택배를 한가득 보냈다.
이번에 집을 정리해 주시면서 "옷걸이가 더 필요할 거 같아 보냈다.. 반찬 해서 보냈으니 밥 잘 챙겨 먹어라.." 하면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집에서 보내온 반찬으로 밥을 하고 먹는 내내 왠지 모르게 슬픈 감정이 몰려왔다.
나는 절대 이 맛을 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그래서 진작에 요리하는 법을 배워둘걸.. 하면서 후회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처음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택배 잘 받았다..
집도 어느 정도 꾸몄고 정리도 거의 다 된 것 같다..
분명 별 거 아닌 내용이었는데 나도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눈물이 흘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급하게 전화를 끊고 감사하다고 말할걸.. 후회했다.
아빠가 내게 전화를 걸 때 나처럼 많이 망설였을 거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게 서툴지만 사랑이었다는 것도.



어떤 사랑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내야 한다는 걸..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어 사랑을 주는 법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난 늘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싶다.
사랑 속에 있을 땐 그게 사랑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뒤늦게 알아챈 사랑에, 나도 용기를 내야겠다.
요즘 전방의 겨울바람 속 한 번씩 봄바람이 분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 다시 오고 있다.
곧 부모님을 만나러 고향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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