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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임줌마 May 07. 2024

우리의 15번의 결혼기념일에 늘 어머니가 함께였다.

연애 6년, 결혼 15년 도합 21년..

인생을 살면서 언젠가부터 생일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결혼기념일도 마찬가지다. 20년을 넘게 이 사람과 잔잔한 호수처럼 무탈하게 지냈기 때문에 기념일 또한 우리 둘에겐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런데.. 당사자인 우리 둘도 가만히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따로 있었다.

바로 우리 시어머니다! 매번 기가 막혔던 결혼기념일 그때로 돌아간다...




시간 : 15번의 결혼기념일 중 언젠가

장소 : 이른 아침 (주말 늘어지게 잠 좀 자보자)




빡세게 주중을 달리고 달콤한 늦잠을 잘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신랑이나 나는 직업 특성상 월화수목금금금 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말은 당연히 쉬는 날이 아니다.

꿈같은 단잠을 이루고 있을 때 와장창 접시 깨지 듯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니다!


"네 어머니.."

(아침이라 이미 가라앉은 목소리지만 최대한 더 쪼여본다..)


"오늘 어떻게 할 거니?"


"네?"


"너네 결혼기념일 이잖아. 어딜 갈래도 주말이라 사람들 많아서 일찍 움직여야지"


.. 맞다.. 나랑 우리 신랑이 손잡고 평생을 약속한 그날을 기념하는 결혼기념일이다!

우리 둘의 기념일이다! 그 기념일을 왜 항상 궁금해하시고, 왜 항상 함께 하시는 건지...

하... 심지어 전화 온 시간은 아침 7시다. 시부모님은 6시 반에 아침을 드신다. 고로 7시는 대낮이다. 

그리고! 전화는 항상 나에게 거신다. 어머니 아들은 옆에서 쿨쿨 잔다.

더 자는 건 글렀다. 남편을 깨우자...


딱히 계획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와 함께 결혼기념일을 보낼 계획은 더더욱 없었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엄마한테 우리끼리 시간 보낸다고 할게'라고 한다.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나면 나중에 나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나도 그거 먹고 싶었는데 아빠랑 둘이 갈 줄도 모르고 가본 적도 없는데.. 맛있었니?"


난 이 순간을 못 견딘다. 너무 당황하면 말문이 막힌다. 이렇게 한마디도 못하고 답답할 바에 차라리 모시고 간다. 늘~ 그런 식으로 결혼기념일, 생일, 아이들 생긴 이후론 아이들 생일이랑 졸업식, 발표회, 등등 모든 걸 함께 한다. 레퍼토리는 늘 같으시고, 나는 늘~ 맞받아치지 못한다.


대충 근처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기로 하고 시부모님을 모시러 댁으로 갔다.

어머니는 모자를 좋아하신다. 세상 화려한 모자를 쓰시고 우리 쪽으로 걸어오신다. 

콧노래가 차 안까지 들리는 듯하다.


"OOO 간다고? 저번에 갔지만 어쩔 수 없지. 두 노인네 데리고 다니느라 니들이 고생이 많다"


결혼 1주년 때도 2주년 때도... 음성녹음을 틀기라도 한 것처럼 늘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다른 스토리에서도 몇 번 강조했지만 어머니는 젊으시다. 우리 신랑과 20살 차이시다. 

어머니 51세부터 하시던 말이다. (곧 내가 그 나이다.. 그럼 난 노인이란 말인가? ㅡㅡ)


난 친구들과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서로의 결혼기념일에 대해 매년 대화를 나눈다.

이번엔 뭐 주고받았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

(아! 이쯤 되면 몇몇은 조심스레 물어본다. 그래도 계산은 하셨겠지?

................. 단 한 번도, 계산을 하신 적이 없! 다!




15번째 결혼기념일이 얼마 안 남았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복된 패턴에 난 당연하게 시부모님 포함 인원으로 식당 예약을 한다. 어느 날 작은아이가 물어온다.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이 몇 월 며칠이에요?"

'아빠에게 물어봐'가 아닌 '할머니한테 여쭤봐'라고 뒤끝 있는 대답을 한다. 하하


어머니는 사실 결혼기념일마다 와인과 케이크를 들고 오셨다. 돼지껍데기에 소주를 좋아하는 나지만 센스 있는 시어머니이고 싶으셨던 그 마음을 저버릴 수 없어 감사하게 받았다.

나름 어머니도 당신만의 방식으로 관심표현을 하신 거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앞으로의 결혼기념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뭐~ 무탈하면 된 거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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