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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Apr 29. 2024

잘 먹이는 일

할머니, 엄마의 영향이지만


못 먹고 자라진 않았지만, 나는 음식에 대해 진심이다. 음식을 잘 만든다기보단 잘 먹이고, 잘 조리하고, 한 끼를 잘 차리는 것에 진심이다. 이런 내가 신랑 눈엔 참 신기한가 보다. 물론 요리를 잘하는 내 나이 때 사람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 신랑 눈엔 참 신기한 광경인가 보다.



지난달 맵쌀과 누룩으로 막걸리까지 섭렵한 걸 보더니 이제 술까지 집에서 만들면 나가지 말라는거냐며 칭찬을 한다.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긴 하다. 즐겨보는 TV프로는 한국인의 밥상, 신계숙 교수의 맛터싸이클, EBS 한국의 둘레길 이런 채널을 좋아한다. 전국 팔도에서 나고 자라는 식재료를 다 우리 가족 입에 넣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그 정도로 나는 먹이는 일에 진심이다.



주로 식재료는 농산물 수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사거나 로컬직판장 혹은 농수산물 시장에 간다. 잘 먹이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영양사 책도 찾아보고 조리화학 책도 주문했다. 아이가 돌 때즈음에 이유식, 유아반찬 창업도 하려고 했었다.(무산되긴 했지만..)


진심인 이유, 즉 좋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자주 도왔고, 반찬 하나를 할 때도 여러 번 심부름을 하곤 했다. 할머니는 장손 며느리로 일 년에 제사를 18번을 지내셨고, 식당도 하셨다. 할머니는 고향이 서울이지만 할아버지랑 터를 잡으신 곳은 충남 예산이었다. 할머니 음식은 서울식도 아니고 충남식도 아닌 할아버지식이었다. 생선을 못 드시고 안 드시는 할아버지 식성에 우리 집 음식은 모두 할아버지화 맛으로 장착되어 있다. 비린맛을 싫어하시는 할아버지 입맛에 이모들을 포함에 나와 손녀들까지 생선이라고는 20살까지 손도 안 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편식이 꾀나 있으셨다. 김치에도 젓갈이 안 들어간다 오로지 소금으로만 김장을 한다. 근데 먹어보는 사람마다 신기하고 어떻게 이런 맛이 나냐며 감탄해하는걸 자주 봤다. 커서 보니 나도 우리 집 김치가 신기하긴 하다.


무튼 이런 환경에서 할머니는 아마 음식을 잘 할 수 밖에 없지 않으셨을까. 그 영향으로 나는 할머니 덕분에 요리도 잘하고 손도 클 수 밖에 없나보다.


할머니는 네 남매를 키우시면서 너무 가난해서 미안했다고 늘 말씀하신다. 특히 네 엄마는 내가 가르치지 못해서 그게 제일 한이라고 하신다. 첫째 아이를 가난 때문에 가르치지 못했고, 일찍이 돈을 벌게 한 일이 한이셨다고 한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으셔서 그래서 그랬을까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키워주시면서 과자도 만들어 먹이고, 햄버거, 함박스테이크, 탕수육, 감자튀김, 양식, 경양식돈가스, 쑥버무리, 감자떡, 센베이(せんべい, 김가루가 묻어있는 과자) 샌드위치 돈까스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거의 매일 만들어주셨다.


반면, 엄마는 살림을 그리 오래 하지 않았다. 엄마는 늘 돈을 벌기 바빴고, 어느 날 물어봤을 때 엄마는 돈이 본인의 자존심이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요리하거나 간식을 챙겨주는 일이 내겐 굉장히 낯선 일이고, 마음 한 편으로는 엄마의 그런 마음이 내게는 또 한이 된 거 같기도 하다.


어릴 땐 하교한 후에 집으로 가면 엄마가 나를 기다리면서 예쁜 접시에 예쁜 컵에 우유 한잔과 딸기잼 빵 같은 간식을 만들어서 나를 기다려주길 바랐다. 소원이었다. 하지만 4남매를 키우고 있었던 엄마는 늘 대량 사골국, 대량 카레, 대량 분홍소시지, 대량 계란프라이 대량 진미채, 대량 생선구이 이런 음식만 해줬다. 이 음식들은 한동안 너무 물려서 잘 먹지 않았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대부분의 반찬은 늘 이랬지만 뭐 매번 그랬던 건 아니다. 엄마가 나와 둘이 살 땐 카스테라를 만들어줬던 적도 있고, 바지락 칼국수를 손수 만들어줬던 것도 기억이 나긴 한다. 엄마도 분홍소시지를 프라이팬 가득 한판 한판 구워내며 많이 미안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걸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의 마음과 할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안다.


가난한 환경에 딸아이를 키웠던 할머니의 마음을 그 빚을 손녀에게 베푼 할머니의 마음. 그리고 내게 아빠를 만들어주려고 나와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지만, 네 아이를 키우면서 최선을 다했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헤아린다. 한동안 분홍소시지의 냄새도 맡기 싫어서 안 먹은 지 오래였는데, 왜 그 소시지를 줄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정말 다 알겠다.


헤아릴 수 있는 나이와 마음이 생겨 다행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정호승 시인의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상처 받았다고 계속 상처에 안주할게 아니라 상처에 약도 발라주고 밴드도 붙혀주면서, 이제는 나도 향기를 내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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