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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pr 10. 2024

고양이는 (정말로) 말을 해


고양이는 오로지 자신을 돌봐주는 집사에게만 접근을 허락하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동물이다. 동종의 동료들과는 온갖 대화를 하는데 사람 못지않은 다양한 소리를 내며 음률로 기분을 표현한다. 고양이들 끼리 다투거나 소통하는 소리 들으면 사람들 뻔한 드라마 보다 훨씬 재밌다. 뮤지컬 ‘캣츠’ 가 왜 만들어지고 시대를 관통하는 베스트셀러 문화인지 고양이를 사회를 보면 안다.


고양이가 말을 못하고 같은 소리만 내는 동물이라 생각한다면 소통과 교감이 충분할만큼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양이는 인간을 대하는 기본적 공식언어가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단순한 공식 언어만을 듣게 됨으로 고양이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수가 없다. 대부분의 주인들은 수년간 고양이와 한집에서 동거해도 밥줘 응가 치워줘 빗질해줘 돌봐줘 고마워 정도만 알아듣는다. 고양이가 그 정도의 기본말만 인간에게 하는것이다.


내향적 본성에서 아무 의미없는 야옹은 없다고 본다. 안락한 생활에선 고양이들은 그 이상의 말은 평생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야생에 내던져진 길양이들은 다르다. 생존앞에서 모든 극한대의 희노애락 의사표현을 한다. 처절함이 무엇인지 소리만 들어도 제대로 심장을 긁는다.



고양이는 자신의 말을 집사가 알아 듣는다고 판단하면 말을 점점 다양하게 하기 시작한다. 누울 자리보고 발을 뻗는다. 나긋나긋한 자세로 자세하게 표현하는 냐옹이의 말과 눈빛 표정은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똑같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문장에 단 하나도 같은 음률이 없다. 학창시절 재즈 음악 전공한것이 고양이 음률 파악에도 도움이 된다. ( 미대다니다 음대로 전향했다. 언어가 아닌 이미지와 소리로 사물과 소통하는 기본스킬을 학창시절때 배웠다고 본다.)


재즈는 음률과 음색으로 악기를 통해 대화하는 장르다. 즉흥연주가 재즈의 생명이다. 고양이는 재즈처럼 멜로디와 음률과 음색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동물이다. 눈빛 표정도 그러하다. 아침에 내 기침소리를 듣고 내가 잠에서 깻음을 확인한 녀석은 빨랑 나오라고 온갖 구슬림 노래를 한다. 다양한 즉흥연주와 작곡이 방문열고 나올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어떤날은 화내듯 재촉하고 어떤날은 애원하듯 간드러진다. 오래 걸리면 나를 침대에서 끌어내기 위해 여러 변주를 이어간다.


가출하고 난후 목욕을 마치고 다시 집냥이로 복귀한 녀석의 눈빛이다. 자기가 무슨짓을 했는지를 잘 알고있다. 야단대신 애정을 받으니 다행이야녀석이 골골송을 부른다.


아이의 옹알거림을 엄마는 알아듣는다. 전주인은 내가 고양이를 인격화 시켜 혼자만의 해석에 빠져있다 생각한다. 그냥 고양이는 원래 본성이 그런건데 내가 사람처럼 대입해 우울하니 뭐니 해가며 혼자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8년간 키워왔던 녀석과 전혀 다른 고양이 이야기를 듣는것 같아서 그럴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범죄를 봐도 원래 인간은 본성이 악한 동물이다 라고 표면적인 면만 생각하면 원래 그런거니까. 변호할것도 없고 틀린말 이라고 할수도 없다. 아이는 원래 칭얼대는게 맞지만 무슨말을 하는지 관심 갖냐 마냐는 선택이다.


현재 처한 상태를 의논하면 동화작가 하면 잘 하겠다 하는데 동물과 대화를 나눠본적 없는 사람들에겐 동물과의 대화는 이해시키기 어려운 분야다. 본성대로란 전주인 말도 맞는데 나의 표현은 오해가 아니라 본성안에서 좀더 디테일이다. 일반인들이 이해 못하는것 보면 전문분야라 해도 되겠다. 매일 똑같은 환경에선 변화가 없으니 고양이도 같은말만 해서 그럴것이다. 언어 장애인을 단순히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길때 틀린말은 아니지만 불통이 되고 수화를 알면 소통이 되는것 생각하면 되겠다.


동물과 대화하는 전문직이 있다는 말은 들었던것 같은데 동물들도 교감을 하는 상대에게는 말을 하기 시작하고 그 말을 알아 듣는것도 어렵지 않다. 어떤 분야던 전문가들이 있다. 멘탈리스트 라고 하던가? 범죄 수사에 활용되는 그런 직업도 서양에는 있다. 부검에선 시체도 말을 한다 하지 않나. (동물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말로 자신을 가리는 인간보다 속마음을 알아내기가 더 쉽다.)


동물들 말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극히 드물다는것은 그만큼 인간들에겐 타종과의 소통이 그다지 필요성이 없음을 말한다. 외국어 통역이나 내 관점에선 그게 그건데 돈이 안되므로 무시하는 분야란 뜻이다. 감성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시인이란 직업은 구시대 유물로 사라졌지만 동물과의 교감과 소통 전문가는 글쎄.. 저소득층 복지와 알엔디는 삭감해도 반려동물 사업지원은 (누군가의 애정으로) 지자체별로 경쟁하듯 증가하는 추세인거 보면 미래에는 각광받는 직업이 될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부터 먹고 살만해진 다음이다.



왜 애들이 안오냐옹? 왜 안놀아주냐옹 녀석이 계속 양양이다.


너가 다 쫓아냈잖아. 녀석이 룰을 지키겠노라 해서 마당에 내놔도 녀석의 순진한 직진은 계속 왕따에 뻰찌만 맞는다. 자기가 다 쫓아내고선 나에게 왜 안왕 앙앙 대봤자다. 나에게 암만 투정 부린다고 해서 내가 걔들을 잡아 대령하리 ? 연어 통조림처럼 조른다고 될 문제가 아니란다. 너가 잘해야지.


녀석은 가출해서 나와 큰 난리를 친후 더 부드러워 지고 이전과 다르게 나긋나긋 말이 늘었다. 나와 수차례의 목욕 전쟁을 치루면서 정붙은 사이인지라 불필요한 밀당없이 양양 말을 많이 한다. 고양이가 인간에게 말을 많이 한다는것은 그만큼 더 부담없이 마음을 열었다는 말이다. 동료들과 있을때 내는 대화의 소리들을 인간에게도 한다. 실로 들어보지도 못했던 다양한 소리들이라 그 신기함을 일반인간 수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양이의 평생을 키워온 주인들도 자신의 고양이가 상황에 따라 얼마나 괴상하고 다양한 소리들을 낼수 있는지 알지못할 것이다.)


나는 그냥 사람말처럼 뭔말인지 알겠는데 외국어도 그렇지 않나? 힘들게 설명해봤자 비웃거나 나를 상상에 빠져사는 동화작가 소질이 있다 라고만 생각해도 인간 평균 의식의 한도를 알기에 궂이 반박은 하지 않는다.


올해의 해적들 멤버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녀석은 쫒아내려는게 아니라 같이 놀자는 것이지만 길양이들에겐 사료를 먹는것이 생존이 달린일이다. 길양이들과 친해지는 법을 모르는 녀석은 여전히 왕따다.


https://youtube.com/shorts/sa4NhlB28gc?si=p1Fxrma6VBJiil_8​​


길양이들 울음소리가 시골에선 밤마다 밤하늘에 울린다. 사람 어린아기와 여인네 절규 통곡과 비슷한 소리를 낸다. 이틀전 녀석이 가출했을때 녀석의 집과 화장실을 마당에 내놓았는데 작년부터 단골로 오던 이쁜이가 밥을 맛있게 먹은후 마당을 거닐며 실로 괴상한 소리를 낸다. 굵고 낮은 그르릉 소리가 나서 다른 고양이가 온줄 알았는데 아니다.


녀석이 기껏 밥과 생선 잘 얻어먹고는 특혜를 받는 녀석의 집과 용품들을 둘러보며 자기것이 아닌지라 차별이 서럽다고 쏟아내는 질투섞인 울분(?)의 신세한탄 소리다. 나도 갖고싶어 마당을 한참 배회하며 수컷같은 저음의 그르릉을 쏟아내고 유유히 사라진다. 길양이 에게선 처음 들어보고 처음 접해보는 소리고 광경이다.


작은애들은 녀석이 다가가면 바로 도망가는데 쌈꾼 길양이가 나 때문에 녀석을 패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않고 녀석과 둘이 마주앉아 서럽게 우는시합으로 기싸움 하는 광경도 보았다. 누가 누가 더 서럽나 한참 마주보고 경쟁하듯 울더니 녀석이 너 진짜 불쌍하구나 물러나 주고 울면서도 깡다구로 버티던 길양이는 차려진 밥을 먹고 사라진다. 녀석은 실제 가출도 해보고 다른 녀석들의 행동들을 보며 다른 길양이들의 절박한 생존위기와 가난을 본것이다. 이후 녀석의 행동이 조름도 줄어들고 더 얌전해졌다.


사색할땐 어른같고 조를땐 아이같고
절대 포기할수 없는 실내의 안락함 녀석은 비행의 댓가로 자신이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를 길양이 체험을 통해 이제안다. 마당에 내놔도 스스로 (흙밭에서 뒹굴고 싶은) 욕망을 자제한다.


녀석의 지금 관심사는 오로지 친구 사귀기다. 마당에 내보내 달라는 요구도 목적은 그거다. 수도승 시위가 나에겐 먹히지 않는다는것도 파악했고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지 녀석이 알아차려서 짜증도 내고 애원도 한다. 다 큰놈이 살살 애교도 부린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피려 한다는 말이 맞다.


받아줄만 할때 밀당을 하는것이고 녀석은 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다 판단하니 말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지금은 마당을 오픈하니 왜 다른애들이 나랑 안놀아 주냐며 하소연 하듯 시간 날때마다 칭얼댄다. 아무리 나이찬 성묘라해도 고양이는 세살배기 아이와 같다는 말이 맞다. 애기도 자는시간 말고는 계속 옹알대지 않나? 녀석도 말 안통한다고 우울함으로 사람들 피하고 담쌓고 있는것 보단 수다쟁이 처럼 조르고 혼자 칭얼댈때가 훨씬 자연스럽고 낫다. 감정이 있는 동물이니까.


*아침에 방문을 열고 커피들고 나오면 녀석이 신나서 나왔다! 나왔다! 야호 양양 큰소리로 환호성을 지른다. 그럴때 나도 같이 동조해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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