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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05. 2024

남은 인생의 첫 번째 날은


나는 오늘을 누구보다 일찍 시작하였다.

아직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어제 만난 이 구절 때문이다.      


남은 인생의 첫 번째 날은 항상 오늘입니다      


나는 살면서 밤을 새워서 일한 적이 제법 된다. 그 대부분은 글을 쓰면서 보냈다. 대개의 경우, 논문을 쓰며 새벽을 맞이했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밤을 꼴딱 새우고 한 편의 글을 완성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나로서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글이 세상에 나왔다는 자체가 감동이자 희열이었다.      


최근에는 학생들 원고를 봐주면서 새벽까지 작업을 진행했다. 물론 날것 원고를 그대로 세상에 내보는 일도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도로 말은 되게 해서 책을 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글이 아니라 남의 글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묘한 일이지만 원고는 보면 볼수록 더 글이 매끄러워지고 읽기 편해진다. 처음 원고 교정을 볼 때 완벽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내 경험상 그런 기적은 없었다.      


                                                 스페인 론다에서 맞은 일출 장면



대학원 시절에는 한 학기 과제를 내면서 A4지로 거의 500장을 내본 적도 있다. 그것도 원고내용을 직접 타자로 쳐서 만든 것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작업한 양을 출력한다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동안 노트북을 6개쯤 바꾸면서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의 하나라고 자부한다. 물론 빠르게 쓰는 것과 좋은 시를 쓰는 것은 어느 정도는 다를 수 있다. 그래도 살면서 신춘문예 3곳에 등단했고, 현대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한민국 학술원 추천도서와 내가 사는 도시의 도서관 공모사업에도 뽑혔으니 터무니없는 실력을 아닐 것이다.      


한 번은 우연히 가수 최백호 씨가 공연을 하는 장소에 가게 되었다. 소극장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 곳이었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가수라 공연 시작 전부터 마음이 마구 흥분되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그냥 노래만 듣고 싶지 않았다. 노래를 들으면서 평소 가지고 다니던 수첩에 시를 적기 시작했다. 노래 한 편에 시 한 편. 거짓말처럼 공연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적었다. 팔은 아팠지만 덕분에 대략 40여 편 가까운 시를 얻었다.


낭만가객 최백호('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그 첫사랑…그녀는 지금 광안리에 있다 (naver.com))



공연이 대략 1시간 반 정도였으니, 1시간 반 만에 40여 편 남짓한 시를 얻은 셈이다. 나로서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시도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노래를 듣고 있으면 거기에 어울리는 시가 흘러나왔다. 아마 시를 써본 사람이면 알 거다. 시가 억지로 쓴다고 써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 역시 평소에는 그렇게 쓸 수 없다.      


그 이후 한 번 더 비슷한 시도를 해 보았다. 가수 양희은 씨 공연에서였다. 역시 시가 술술 나왔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번에 한 번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곡이 훨씬 더 많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50여 편이 훌쩍 넘었다. 물론 곡을 들으면서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내 꿈은 언젠가 라이브 시 공연을 해보는 것이다. 누군가의 사연이나 스토리가 있는 사진을 받아서 즉흥적으로 그 사람에게 시를 선물하는 공연을 해보고 싶다. 살다 보면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축하받거나 위로받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시를 선물하고 싶다.      


사실 나는 이미 이와 비슷한 시도를 했던 적이 있다. 코로나 시절, 잊고 살던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인스타에 올라온 사진과 글을 토대로 쓴 시를 선물했다. 시를 받아본 사람들의 반응은 내가 기대했던 이상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로 시를 써준다는 사실이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후 나는 그걸 묶어서 시집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를 출간했다.      


살면서 아직까지는 이와 비슷한 공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돈이 되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할 수 없는 일이거나 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이리라. 하지만 이런 공연이 한 번쯤 생겨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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