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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Apr 29. 2024

중국계 사장님이 튀겨주는 우리 동네 피시 앤 칩스의 맛

 

  뉴질랜드에서 흔하게 맛볼 수 있는 생선요리는 단연코 '피시 앤 칩스(Fish & Chips)'다. 아무래도 영국의 영향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피시 앤 칩스는 19세기 중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대표 음식으로 손꼽히는 패스트푸드다. 가시를 제거한 대구 생선에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에일을 섞은 반죽을 입혀 190도의 기름에 튀긴다. 여기에 감자 프라이와 타르타르소스를 곁들이면 한 끼 배부른 식사가 된다.


아라타키 테이크어웨이 가게 모습 (이미지 출처: seunghoon yi)

 

   타우랑가 베이페어(Bayfair) 근처의 아라타키 해변가로 가는 길 바로 옆에 '아라타키 테이크어웨이'란 피시 앤 칩스 가게가 자리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후 3시 반부터 8시 사이에 오픈을 한다.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하고 픽업하거나 방문 포장을 하는 방식이다. 나도 오후 늦게 바닷가 산책을 하러 갔다가 가게에서 나오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발길을 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튀긴 음식은 칼로리가 높아서 일상이 다이어트 중인 나로서는 가능한 피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하루는 참다못해 "그래, 가서 픽업해 오자. 한번 먹어보자, "라고 결심을 한 다음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이미 손님이 두 명 내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중국계 부부로 남편이 전체 총괄, 와이프가 요리를 맡았다. 영화에서처럼 중국어로 쏼라쏼라 아저씨가 아줌마한테 잔소리를 하고 있는 듯 분위기였다. 전화 주문과 계산, 포장은 두 명의 젊은 키위 알바가 담당했다. 작은 공간에서 네 명이 역할 분담을 해서 일이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계산대 위로 메뉴판이 크게 쓰여 있었다. 웬만한 건 다 튀겨서 파는 것 같았다. 나는 고민 끝에 도미 한 마리와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11.8 NZD 달러. 한화로 9,600 원으로 다른 식당 대비 확실히 저렴한 느낌이었다. 계산을 마친 뒤 55번이라고 적힌 대기표를 받았다.  오늘 내 앞에 54개나 주문이 있었던 거야?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장사가 꽤 잘 되는 것 같았다. 우리 동네에서 피시 앤 칩스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피시 앤 칩스. 정신없이 먹느라 미처 사진 찍는 것을 깜박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한참을 기다렸더니 마침내 내 번호가 불렸다. 아르바이트생이 튀김 위에 소금을 살짝 뿌린 다음 커다란 종이 두 장으로 꼭꼭 싸맨 뒤 나에게 건네주었다. 종이 포장을 옆구리에 끼고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냉장고에서 타르타르소스와 케첩을 꺼냈다. 종이를 풀어헤쳤다. 고소한 튀김 냄새가 확 풍겨왔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꽤 많아 보였다. 종이 여백에 두 가지 소스를 각각 뿌렸다. 생선 튀김을 한 조각 잘라서 타르타르소스에 콕 찍은 다음 입 안에 쏙 넣어 맛을 보았다. 딱 알맞게 익은 도미 생선 살과 바삭한 반죽의 '겉바속촉' 조화로운 풍미에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우와, 이렇게 맛있다고? 여기 맛집이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어서 기다란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은 다음 한 입 깨물었다. 바삭하고 촉촉했다. 그동안 외식을 하면 비싸기만 하고 맛도 없다고 돈 아깝다고 툴툴거렸는데 오랜만에 뉴질랜드에서 가성비, 가심비 좋은 음식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제야 왜 내가 그날 55번째 주문 차례였는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 이래서 처칠 수상이 피시 앤 칩스를 '좋은 친구(The good companions)'라고 표현했구나. 튀김이 식을까 봐 쉬지 않고 빠르게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그 많던 튀김을 한 조각도 남김없이 맛있게 다 먹었다.


    사실 가게에 들어섰을 때 중국인 사장님의 목소리를 듣고 아차 싶었다. 과연 위생 상태는 깨끗한가? 구글맵에는 186명이 4.4를 주긴 했는데 맛이 있나? 기름에 쩔어서 나오는 건 아닌가? 싼 게 비지떡은 아닐까? 그냥 갈까? 순간 온갖 편견으로 가득 찬 나쁜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장님, 죄송해요. 사과드릴게요. 진짜 맛있네요. 우리 동네에서 장사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인생 '피시 앤 칩스'를 만났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애용할게요, "라고 속으로 깊이 반성했다. 나는 편견에 쩌든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하고 외국에서 공부도 하고 직장도 다녔으면서 여전히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더불어 사는 다인종 사회'를 지향하는 뉴질랜드에서 이런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예전에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는 미국인 직장 동료들에게 울분을 토하며 그 난리를 쳤는데 지금 내가 뉴질랜드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중국인 사장님 부부를 인종차별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만약 키위들이 나를 그렇게 대했다면 길길이 날뛰며 이런 모욕을 당하느니 당장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분들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이 가게의 단골이 되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에는 감자튀김 대신 쿠마라 (마오리어로 고구마란 뜻) 튀김을 주문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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