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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Apr 03. 2024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사는 법을 알려준 강아지

아침식사를 만드느라 분주한 아침이었다.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남편은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하나 둘 완성된 음식이 식탁에 놓이고 있었다. 열심히 각자의 일에 매진하는데, 이상하게 등 뒤가 조용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정도로 들렸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등 뒤를 돌아보니...      


“안돼!!”     


나의 외침은 이미 늦었다. 무강이는 식탁에 올라온 계란찜 한 그릇을 이미 다 먹어치운 뒤였다. 뜨겁지도 않은지 아무렇지도 않게 입맛을 다셨다. 남편은 얼른 무강이를 식탁에서 떼어내고 구석으로 몰았다. 갑작스럽게 훅 다가온 남편의 몸에 무강이가 부딪쳤는지 깨갱 비명을 질렀다. 날카로운 비명이 집 안을 찢어도 혼은 나야했다. 한동안 무강이는 구석에서 나오지 못했다.      


우리의 식사가 끝난 뒤에야 무강이는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남편 곁으로는 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항상 놀자고 남편의 다리를 붙잡던 무강이였는데 말이다. 설마 삐진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강이는 내 주위만 맴돌았다.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모습을 보니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너무 심하게 혼냈나? 하지만 식탁 위의 음식을 먹는 건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다. 마음이 약해져도 할 건 해야 했다.      


소동이 끝난 후 우리 부부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녀석이 글쎄 남편의 발치에 딱 또아리를 틀고 잠을 청하는 게 아닌가. 방금 전까지 자기 삐졌다고 광고를 하던 녀석이! 어이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너 아까까지 아빠한테 엄청나게 혼나지 않았니? 그러거나 말거나 무강이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정말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사진보다 중요한 간식


무강이가 말을 안 듣는 순간은 여러 번 있었다. 오죽하면 산책 다녀온 인사가 ‘오늘은 괜찮았어?’ 일까. 그 정도로 무강이는 말을 안 듣는다. 말을 안 듣는 만큼 여러 번 혼난다. 아마 무강이는 자기마음대로 하는 산책의 순간이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 매번, 매 순간 우리가 리드줄을 잡고 버티니까. 아마 무강이가 가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마구 다닌다면 우리는 하루에 10km 이상 씩 뛰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제지당하는 산책을 하고서도 무강이의 얼굴엔 늘 웃음꽃이 핀다. 활짝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는 순간이 많다. 그런 얼굴을 자주 본 날이면 산책이 한결 수월하다. 나도 무강이도 서로에게 집중하며 눈을 마주치며 걷기 때문이다.      


내가 무강이의 입장이었다면 마음대로 뛰지도 못하고 짖지도 못하는 보호자에게 화가 났을 법도 한데, 무강이는 그 순간에만 잠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곤 다시 나에게 다가온다. 과연 강아지는 정말 삐지는 법이 없을까?     

사람의 삐졌다는 감정은 섭섭함, 화남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강아지의 삐짐은 그보다 더큰 감정인 긴장감, 두려움에 가깝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삐진 강아지가 등을 돌린 모습은 사실 우리가 무서워서 등을 돌린 모습일수도 있었다.      


삐진 강아지를 풀어주려면 그 개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면 된다. 함께 산책을 나가거나 좋아하는 간식을 주거나 하는 방법이다. 그 날 아침 무강이는 아빠의 발치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으로 삐진 것을 풀었다. 함께 자는 것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니, 강아지의 사랑은 언제나 경이롭다.      


생각해보면 무강이는 항상 이랬다. 워낙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무강이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만 보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그것에만 꽂혀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자리에 앉혀 둔감화를 시도한다. 길 한복판에 앉아서 나와 눈을 맞추고, 신경 쓰이는 것을 보다가 나를 보면 바로 간식을 주며 칭찬한다. 그런 행동을 몇 번 반복하면 어느 새 콩닥콩닥 뛰던 심장이 진정되고 이내 미소를 되찾는다. 모든 게 빠르고 거친 도시에서 무강이는 그렇게 적응해나갔다.      


가끔 둔감화가 먹히지 않는 구간이 있다. 교통 법규를 어기는 오토바이를 만날 때가 그렇다. 좁은 골목길에서 굳이 나와 무강이 사이를 비집고 앞질러 가려고 시동을 끄지 않는 오토바이를 볼 때, 횡단보도를 달리는 오토바이를 볼 때 무강이는 짖음을 멈출 수 없다. 겨우 오토바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앴다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오토바이가 나타나서 무강이의 심장을 뒤집어 놓는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도 뒤집어진다.      


산책을 끝나고 집에 와서도 뒤집어진 마음은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다. 자꾸만 그 때 그 순간을 곱씹으며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하는 마음이 이어진다. 그럴 때면 하루 종일 온 몸이 무겁다. 기운이 나지 않아 의욕도 떨어진다. 그 이후에 다시 산책을 나가면 괜히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들어 리드줄을 짧게 잡고 무강이의 걷는 속도도 더욱 통제하게 된다.      


그러나 무강이는 다시 산책을 나오는 순간 즐거워진다. 네 개의 발이 경쾌하게 움직이며 리듬을 탄다. 쭉쭉 나아가다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냄새를 맡고, 더 맡고 싶으면 풀숲에 더 깊숙이 들어간다. 꼬리는 살짝 들려 살랑살랑 흔들린다. 경쾌한 리듬에 맞춰 엉덩이도 들썩들썩 움직인다. 과연 아침에 오토바이를 보고 짖었던 개가 맞는지, 그 때문에 나한테 호되게 혼났으면서도 또 나를 보며 웃어 보이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사진이고 뭐고 하품만 나온다멍


무강이는 현재의 순간만 담아두는 것 같았다. 비록 아침에 오토바이에게 달려들어서 혼이 나고 심장이 튀어나갈 것처럼 뛰었지만 지금은 다시 평화로우니까. 지금 당장 눈 앞에 펼쳐진 흥미로운 냄새에만 집중하면 다시 웃음이 나온다.      


무강이와 살며 속상한 순간은 여럿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에만 매몰되어 버린다면 나는 무강이와 사는 걸 행복하다고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흘렀다. 무강이는 나에게 현재에만 집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방금 전까지 속상하다고 해서 이따 저녁 산책을 빼먹을 건 아니니까. 어쨌든 산책은 계속 해야 했다. 내가 속상해도 아파도 산책은 멈출 수 없었다.      


매일 똑같은 공원을 똑같은 시간에 나가지만 그 순간 순간의 우리는 분명히 다르다. 어제의 속상함을 품고 오늘 산책을 나선 나는 어제보다 더 조심하며, 어제의 경험으로 오늘의 시야를 더 넓히며 길을 걷는다. 등 뒤에서 시동 소리가 들리면 줄을 바짝 당기고 무강이와 눈을 맞추며 구석으로 피한다.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까지 우리는 눈을 맞추며 서로에게 집중한다. 좋아. 이번엔 짖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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