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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Mar 20. 2024

MBTI를 바꿀 수 있을까?

기질과 성격의 차이

  

MBTI에 가장 신경을 쓰는 사람은 누구일까? MBTI라는 몇 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요즘,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쪽은 아마 내향적인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사람을 만나거나 직접 부딪치지 않고도 그의 성격을 쉽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쉽게 파악하는 것과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같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도, 혹은 서로의 MBTI만 공유해도 성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와 직접 살을 부딪치며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나와 그가 서로 다른 타입의 MBTI라는 것을 알아도 피할 수 없으며 의견이 갈리기까지 한다면, 사실 MBTI의 공유 유무는 크게 상관없는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내향적인 성격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이다. 먼저 나서서 기회를 잡아야 하고 기회가 없다면 만들어서 라도 잡아야 한다.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튀어 보이려면 아무래도 외향적인 성격이 눈에 띄기 좋다. 또는 너무 내향적이라서 불만을 직접 얘기하지 못해 속으로 끙끙 앓기도 한다. 단순한 고민에서 끝나지 않고 정신병으로 이어지는 심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때문에 내향인들은 스스로를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내향적인 성격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성격을 고치는 법을 알아보기도 한다. 아마 대문자 I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어린 시절을 생각해본다면 한번쯤 웅변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 앞에서 이 연사 힘차게 외쳤던 어린 시절.      


하지만 아무리 이 연사 힘차게 외쳐도 내 연설을 듣는 친구들은 시큰둥했고, 강사 선생님은 내 목소리의 크기만 집중했다. 내용이 아니라 몸짓과 소리의 데시벨만 체크하고 바로 다음 연사의 연설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 역시 내 다음 연사의 연설에 집중하지 않았다. 어린 연사의 웅변은 몇 달 만에 중단되었고 내향적인 성격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연 성격은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이젠 성격이 아니라 MBTI를 바꾸는 법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E답게 사람들과의 교류를 늘리고 나를 잘 알리기 위해 노력하여 성향을 바꾼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I유형의 인간이 집에 돌아온다면 녹초가 되어 지쳐버릴 것이다. 그걸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나를 바꾸겠다고? 썩소를 짓는 무강이

성격은 바뀔 수 있지만 노력하여 바뀌는 게 아닌 것 같다. 사람의 성격, 성향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성격을 바꾸고 싶다면 성격이 바뀔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삶이었다.      


무강이는 대외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일 중독 개 보더콜리 종이다. 지치지 않는 녀석의 체력은 하루에 한 번도 집에 나가지 않는 나를 하루에 5km이상 걷게 만들었다. 이젠 날씨가 좋으면 자고 있는 무강이를 깨워 나가기도 한다. 나는 분명히 야외 활동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비가 오는 날씨를 좋아했는데, 이젠 해가 좋으면 공원에 나가야 할 것만 같고 비가 오면 몸이 축축 처지게 되었다.      


취약했던 스몰토크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무강이를 예쁘게 봐준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고 단골 카페 사장님과도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나 스스로도 먼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무강이 역시 성격이 많이 변했다. 천방지축 날뛰던 강아지가 이젠 나를 돌아보며 눈도 맞출 줄 알고 계단에선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다. 조금씩 느긋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의 성격이 때에 따라 바뀔 수 있듯이 개의 성격 역시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한다. 개의 환경은 오로지 보호자에 의해 바뀐다. 개와 주인의 성격이 비슷하다고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기질이다. 성격과 기질은 다르다. 성격이 환경에 따라 바뀐다면 기질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 같은 것이다. 그래서 개를 훈련할 때 기질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 전 본 유튜브에서 이제 막 3개월이 된 새끼 강아지가 나왔다. 주먹만한 것이 간식을 받아먹을 때 조차도 털을 세우며 긴장을 하고 있었다. 훈련사는 그런 모습을 보며 타고난 기질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적절한 때에 잘 왔다고, 교육만 잘 시키면 훌륭한 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호자를 응원했다.      


우리는 종종 기질과 성격을 혼동하곤 한다. 그러나 성격은 기질과 다른 것이어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만약 외향적인 성격으로 힘들게 바꾸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내향적인 성격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아마 조금 얌전해진 것 같은 무강이의 성격도 주변의 환경이 바뀐다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만큼 성격은 유동적이다. 그러니 자신의 성격이 안 좋은 것 같다고 자책하지 말길 바란다. 성격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도 아니다.      


매일 하네스가 삐뚤어지도록 노는 무강이의 기질


사실 무강이는 자신의 성격이 바뀌지 않았다고 여길 지도 모른다. 신나게 날뛰던 어린 강아지들을 우습게 쳐다보며 쟤네들은 왜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 자신의 과거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무강이의 성격은 점점 더 얌전해질 것이다. 두 내향인 보호자를 만났고, 도시에서 날뛰는 강아지의 몸부림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무강이를 훈육하고 또 훈육할 것이다. 무강이는 점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진난만한 무강이의 기질은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줄어들겠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 받길 원하는 본능 같은 기질은 그대로 이길 바란다.      


우리는 무강이의 성격과 기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다. 그러자 조급함이 사라졌다. 부정적인 시각이 없어지니 한결 여유를 가지고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벌면서 조금씩 꾸준히 노력하니 문제행동이 많이 사라질 수 있었다.      


사람의 성격도, MBTI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무강이의 문제행동보다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I형은 나쁘고 E형은 옳다는 기준이야말로 틀린 말이지 않은가.      


자신의 성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보자. 나쁜 성격은 없다. 우리는 서서히 바뀔 것이고 점점 만족할 삶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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