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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Mar 26. 2024

목이 아플 때는 생강 끓인 물에 마누카 허니 두 스푼

 

  

  요즘 뉴질랜드는 가을 날씨로 접어들었다. 환절기에다 주말에 비까지 맞았더니 몸이 으슬으슬하고 목이 간질간질해서 컨디션이 좀 별로네 싶었다. 결국 다음날 아침 목이 잔뜩 부어올랐다. 다행히 열은 없었지만 이런 상태로 리모트 워크는 어려웠다. 일치감치 "자체 병가입니다, " 모드로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동네 갈비탕집에서 거하게 한 그릇 말아먹으면 힘이 나고 금방 회복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나는 지금 한인식당이나 대형 한인 마트가 있는 오클랜드도 아니고 거기서 3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타우랑가에 있지 않은가.   


핸드메이드 레몬 진저 허니티 재료 모음 © 2024 킨스데이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비상식량으로 사다둔 컵라면과 햇반, 김치를 우선 꺼내 들었다. 그래도 밥심이니까 갈비탕 수준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힘이 나지 않을까 싶었다. 빈 속에 약을 먹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전기주전자에다 물을 끓이고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렸다. 3분 뒤에 라면 한 젓가락을 먹는데 "그래, 이맛이지. 이 친숙한 MSG의 맛, " 이라며 우선 배를 채웠다. 외국에서 아프면 서럽다지만 그래도 침대 밖을 기어 나오지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서 고국이 그립지는 않았다. 대신 늘 하던 아침 해변가 산책을 캔슬해야 했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내일로 미뤄야 하는 정도.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목에는 배와 도라지가 좋다지만 여기선 구하기 어려워 패스하고 친구에게 부탁해 생강을 사 왔다. 생강 껍질을 깐 다음 깨끗하게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물을 붓고 팔팔 끓였다. 여기에 100% 레몬즙과 뉴질랜드산 마누카꿀 두 티스푼을 넣어 휘휘 저었다. 쌉쌀한 생강에 달콤한 허니, 상큼한 레몬의 조화. 향긋한 향이 코를 찔렀다. 이게 바로 진정한 핸드메이드 레몬허니진저티가 아닐까. 한 모금을 마시니 목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 드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렇게 홀짝홀짝 하루 종일 마셨다. 부은 목이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의료비가 무료라고 알려져 있지만 웬만해선 다들 병원에 가지 않는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는 한국과는 확실히 다르다. 내가 지금 상태로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도 오늘 당장 이비인후과로 달려가 처방을 받아 약을 바로 복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 나오면 느끼는 건데 우리는 어쩌면 고퀄의 의료서비스를 저가로 이용하다 '스포일드(Spoiled)' 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의료시스템은 GP와 ACC 두 가지 시스템이 있다. GP(General Practioner)라고 해서 가정의학과 출신의 개인병원 의사를 일컫는데 이 나라에선 특정 GP를 선택해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의 패밀리 닥터로 일단 등록을 해야 한다. 그 이후 GP와 약속을 잡고 일반 진료를 먼저 받는다. 상황에 따라 다른데 이 일반 진료 예약 잡기도 바로 어려울 때가 많고 빨라야 당일 2시~4시간 뒤, 혹은 다음날이나 며칠 뒤에 가능하다. 일반 진료를 받으면 GP가 큰 병원으로 가서 스페셜 닥터를 만나야 할지 어떨지 의뢰서를 써주고 예약을 잡아준다. 일단 GP 등록을 하면 그 이후 정부 보조로 인해 진료비가 저렴해진다고 한다. 다만 유학생이나 그 가족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아 개인의료보험을 들어야 한다. 지역마다 다른데 15분 일반 진료는 평균 $50에서 $75 사이라고 한다. 원화로 40,000 원에서 46,000 원 사이다.   


GP가 어린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https://gpnz.org.nz/our-members)

  

  ACC는 Accident Compensation Corporation의 약자로 질병 또는 지병을 제외한 사고와 상해로 인해 발생되는 의료비용을 뉴질랜드 정부에서 환자를 대신해서 부담을 해주는 의료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시민권, 영주권, 2년 이상 거주한 사람부터 관광비자 소유자까지 모두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 번은 현지 친구가 발가락을 다쳐서 피를 많이 흘려 근처 의료센터에 가게 됐다. 별도 예약 없이 바로 ACC 신청서를 작성하고 무작정 오랫동안 한참을 기다린 끝에 원격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 특정 프로그램을 켜고 앉아 기다리니 오클랜드에 있는 의사가 화면에 나타났고 카메라를 통해 발가락 상처 부위를 확인했다. 의사는 다행히 심각한 것은 아니라 말했고 현장에 있는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간호사는 소독을 해주고 거즈를 붙여주는 정도의 간단한 치료를 해주었다. 별도 약처방은 없었고 의료 비용은 "0"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후 한나절을 날렸다.


 치과도 18세 이하는 무료이나 그 이후에는 정말 비싸고 의료보험도 커버가 잘 안 된다고 들었다. 그래서 현지인 지인 중에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데 뉴질랜드에서는 너무 비싸서 한국에 가서 임플란트 수술을 받은 케이스가 있다. 한국인 부인이 나중에 내게 하는 말이 결혼 전에 키위 남편의 치아 상태를 미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이것은 마치 마통(마이너스 통장)을 들고 온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자조 섞인 하소연을 들었다.


함께 달리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https://www.asics.com/nz/en-nz/blog/article/group-training)

  

  뉴질랜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여기도 의사와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고 의료 관련 복지부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해외 의료 인력 유치를 위한 비자를 적극 발급하고 있다. 또한 무상 의료 제도에 대한 제고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키위들이 자발적으로 평소에 건강하게 운동하고 식습관 관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움직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의료 대란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합리적으로 모두를 위한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감기약 때문인지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구름이 껴서 나른한 날씨에 한숨 푹 자고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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