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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28. 2024

무정란 줄게 유정란 다오

친구사이의 계산법

2024. 3. 25.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 달걀 10 개만 바꿔 주소."


주소는 주소인데 사람이 살지 않는 주소는?

'바꿔 주소'


"우리 집은 수탉이 없어서 병아리가 안돼. 자네네 달걀하고 10개만 바꾸세. 우리 집에서 10개 갖고 왔네."

"그냥 가져가면 되제, 뭔 달걀을 다 가져왔어?"

아랫집 아빠 친구분이 크기도 다양하고 색깔도 다양한 댤걀을 더도, 덜도 아닌 딱 10개를 들고 오셨다.

반투명하고 얇은 손잡이까지 갖춘 형색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아이템 안에 고이 담아서 말이다. 저런 걸 고급 전문용어로 '봉다리'라고 한다지 아마?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월요일 아침이었다.

마침 우리 집 닭들이 알을 낳았다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내는 요란한 소리를 들은 직후였다. 닭들은 하도 요란해서, 알을 낳았다는 티를 너무 팍팍 내서 아랫집까지 소문을 낸 게 틀림없다.

하긴 아랫집에서 닭들이 울면 친정집에서도 다 들리곤 했으니까.

아빠는 달걀 그거 10개 밖에 안 되는 거, 그냥도 줄 수 있는데 굳이 뭐 하러 정 없이 개수를

딱 맞춰 맞바꿔 가겠다고 그러냐고 하셨지만 마루 위에 놓인 그 봉다리를 비롯한 그 안의 내용물을 돌려주지는 않으셨다, 물론.아무리 친구 사이라지만, 여전히 인심이 넘치는 시골이라지만, 서로 계산은 정확한가 보다.


친정 동네는 닭을 기르는 집이 꽤 된다.

혼자 다 못 먹으면 여기저기 나눠주기도 하고 부화가 잘 안 되는 집이 있으면 그 집에 유정란을 덜어 주기도 하고 받아 오기도 한다. 부모님은 암탉을 비롯해 수탉도 몇 마리 키우고 계셨기 때문에 아빠 친구분은 우리 집 달걀이 유정란이 확실하다고 믿고 바꾸러 오신 거다. 그동안 친정에서는 병아리도 부화해서 키우고 했으니 아마 유정란일 것이다. 물론 그동안 친정에서 부화했던 병아리들의 생물학적 엄마나 아빠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병아리로 부화했다는 사실이다.

아랫집은 수탉이 없으니 절대 유정란이 될 수가 없고, 그 댤걀이 부화하는 일은 더더욱 절대 절대 없는 것이다.

그분은 나의 큰오빠의 친구의 아빠이자, 내 친구의 아빠이자, 결정적으로 아빠의 친구시다.

평소에도 별 걸 다 나누시는 사이이기도 하다.

아빠만큼이나 그분도 닭 기르는 일에 진심이시라 병아리를 부화시키고 싶은데 수탉이 없어서 그리 할 수 없으니 이렇게 아빠에게 부탁을 하신 거다.

"나중에 수탉도 한 마리만 넣어 주소."

내가 알기로는 전에도 그분 댁에 수탉 한 마리를 흔쾌히 입양 보내셨는데 기원전 3,000년 경에 말이다.

그 수탉의 행방은 알 길이 없고 현재 그 집에는 수탉이 없다는 사실만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도 수탉이 한 마리만 남았다고 했다.


모내기 품앗이, 결혼 잔치 품앗이 이런 건 많이 봤지만 '유정란 품앗이'는 처음 본다.

친정에 자꾸 가고 싶은 이유가 거기 있었다.

시골은, 확실히 도시보다 소소한 재미가 넘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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