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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Apr 30. 2024

'까봐'가 아이의 용기를 덮은 날

숨으려는 마음을 꼬집어, 끄적인다.

 온 식구가 혹독한 감기시즌을 보내고 있는 4월이다. 계절이 바뀌는 때가 되면 감정도 옷을 갈아입는 걸까. 정신없던 3월을 지나, 봄의 문턱을 넘고 여름의 옷깃을 만지는 4월이 되면 언제나 마음의 환절기가 찾아온다. 옷이 가벼워지는 만큼 감정도 사뿐하면 좋으련만, 환절기 불청객처럼 뒤숭숭한 마음의 감기. 이런 미묘한 감정이 좋게 승화되면 봄바람, 흑화하면 우울감이 될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정돈되지 않은 마음에서 다듬지 못한 말들이 날아가 소중한 이에게 돌처럼 부딪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도담이가 하교한 뒤 학교에서의 일화를 이러쿵저러쿵 늘어놓고 있었다. 불현듯 생각이 났는지 의외의 이야기를 꺼낸다. 살짝 상기된 아이의 목소리에 귀가 절로 쫑긋해졌다.  

 "엄마, 다음 주 현장체험학습 갈 때 버스에서 나는 혼자 앉는다!"

 귀를 한 번 닦고 듣고 싶은 마음이다. '내 아이가 짝 없이 혼자 버스에 타 소풍을 가다니.'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관광버스를 대절해 가는 현장체험이다. 자고로 이럴 땐 버스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과 공통의 관심사를 쌓는 것 아닌가. 다른 친구들은 다 제 짝이 있어 같이 앉는데 우리 아이는 왜? 혼자? 이게 소위 말하는 '따돌림? 친구 없음? 사회성 결여? 외톨이?' 이런 건가.

 "어? 그래? 그런데 왜? 너만 혼자 앉아서 가?"

 애써 마음은 진정했지만 이미 나의 미간에 내려앉은 놀라움과 걱정을 읽어버린 도담이다.  

 "엄마 왜 그래?"

 "도담아, 왜? 대체 왜? 너만 혼자 앉아? 친구들이 너랑 안 앉는다 그래? 가위바위보 했어? 자리는 어떻게 정한 건데? "

 내게서 날아가는 말에 소리가 덧붙어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소리 아니었을까. '두두두두 와다다다'. 쏟아진 나의 질문에 아이는 어리둥절이다.


 "아니, 아니야. 엄마. 좀 들어봐. 출석 번호순으로 짝을 정해서 자리를 잡았어. 나도 원래는 짝이 있었지. 그런데 우리 반은 남자가 홀수, 여자 아이도 홀수명이라 남녀 각각 한 명이 혼자 앉아야 해. 그런데 남자 맨 마지막 번호인 00 이가 본인은 도저히 혼자 못 앉겠다고 계속 선생님한테 조르는 거야. 선생님께서 난처하신지 그 친구 대신 혼자서도 앉아 갈 수 있다 생각하는 친구는 손을 들라고 하셨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손을 안 들어. 그래서 내가 용기 내서 손을 든 거야. 내가 대신 혼자 앉아주려고. 어차피 금방 다녀오는 거고, 버스 통로는 좁아서 옆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 되니까."


 순간 뒤통수를 콰광 맞은 기분이다. 우리 아이에게 친구가 없을까 봐, 외톨이가 될까 봐, 못 어울릴까 봐, 우리 아이 혼자 심심하고 외로울까 봐. '까봐'의 습격에 잠시 이성과 모성의 뇌를 놓아버렸다. 거울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나의 두 볼과 양 귀가 한없이 빨갛게 달아 있었을지 모르겠다.


 난처한 친구와 선생님을 향한 도담이의 배려, 손을 들어 어색한 침묵을 깼던 아이의 용기, 혼자 앉아 가도 괜찮다는 의연함까지. 칭찬해야 할 것을 찾으려 들면 넘칠 것 같은 일화였다. 그러나 그 모든 요소가 나의 '까봐'에 묻혀버렸다. 칭찬도 사랑도 타이밍이라 했던가. 당황한 나의 입에는 반창고가 붙었고, 때를 놓친 칭찬은 유통기한 지난 빵처럼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을 해도 윤을 잃었다.

 "아, 그래그래. 너무 배려있고 용감한 일이었어. 도담아. 그런데, 오며 가며 꽤 긴 시간인데 혼자 지루하지는 않겠어? 네가 괜찮으면 엄마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칭찬도 비난도 응원도 질책도 아닌, 아이도 나도 만족스럽지 못한 애매한 대답으로 유야무야 이야기를 끝맺었다.  

 그날의 일을 까맣게 잊고 주말을 보냈다. 아이도 그 짧았던 대화를 잊었을 거라 생각했다. 오늘 오후, 하굣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니 아이가 살짝 기쁜 목소리로 말한다.  

 " 엄마! 주말 동안 생각해 보니까, 너무 심심하기도 하고 외로울 것도 같아서 오늘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거든? 올 때라도 짝 있는 자리에 앉고 싶다고. 그랬더니 그냥 다시 짝꿍 있는 자리로 바꿔주셨어! "

 " 아, 그래? 아. 그랬구나.. 네가 그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판단해서 부탁드린 거야? 응. 알았어. 아들. 있다 만나자."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아이가 선생님께 다시 부탁을 드린 건 나의 마음을 너무도 오롯이 읽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보다 용감하고 탄탄한 아이일텐데, 도담이의 큰 마음을 나의 종지에 넣어버린 이 버거움과 찜찜함을 어쩐단 말인가.


 크고 넓게 키워주는 엄마이고 싶다. 의연하고, 담대한 엄마이고 싶지만 여전히 '까봐'의 습격에 무방비로 당하고야 마는 종잇장 같은 마음의 소유자일 뿐이다. 엄마의 염려가 아이의 용기를 사그러뜨리지 말아야지. '까봐'가 불쑥 고개를 들 때 '까짓것'으로 바꿔 먹는 마음, 그 한 끗이면 어떤 것도 겪어낼 수 있으리라.


 어리고 여리고 어리석은 모성을 이렇게 한 번 더 다잡는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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