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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Mar 11. 2024

미국 이사는 힘들어 - 실전은 지옥이다

2024년 2월 29일(이주 580일 차)

나에게 이사는 기다림이다. 여러 라이프 이벤트 중에서 결정과 행동의 시차가 나는 일 중에 하나가 이사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도 이사 결정은 한 달 전에 했으니, 이사하는 날까지 한 달을 꼬박 기다렸다. 물론 기다린다 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바빴다. 하지만 마음은 늘 멈춰 서서 기다리고만 있다.


아파트가 아닌 집으로의 이사. 비록 타운홈으로 옆집과 다닥다닥 벽을 맞대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 독립된 공간으로 이사한다는 기대가 가득했다. 미국에 와서까지 계속되는 아파트 생활이 조금 답답했다. 한국에서야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주거 환경인 아파트. 마치 한 인간의 등급을 좌지우지하기까지 하는 부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에선 아파트에 그런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가치를 걷어내고 나면 아파트는 그저 여러 가지 불편함만 가득한 주거 형태일 뿐이다. 아파트를 벗어나야만 완전히 미국에 적응하게 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더욱 초조하게 이삿날을 기다려 왔다.


마침내 이삿날이다. 집안 곳곳은 벌써 수주 전부터 싸놓은 박스들로 집안 곳곳이 꽉 차버렸지만, 아침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평소와 같이 학교에 간다. 아이의 학교버스를 변경하는 일도 복잡했다. 아침엔 이쪽에서 버스를 타고 오후엔 저쪽에서 버스를 내려야 하는데, 이 문제를 잘 조율하려면 교육구 운송 부서와 긴밀한 소통이 중요했다. 미리 학교에 등록된 주소를 바꾸고, 운송 부서에 버스 변경을 신청했다. 그리고 난 뒤 하교 버스부터 적용되도록 별도의 메일까지 보냈다. 등교와 하교, 그리고 학교버스 운행은 미국의 학교 시스템에서 가장 일상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규율에 의해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학생들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학부모에서부터 학교버스, 학교 건물 안으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등하교 동선에 어른들의 통제 없이 아이들이 있는 시간이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는 교육구 운송 부서와 긴밀하게 소통해 동선을 확정하지 않으면 아이가 학교에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혹은 내가 직접 픽업을 가야 하거나. 다행히 학교버스 문제는 모두 잘 해결했고, 무사히 아이는 학교에 잘 등교했다.


이삿짐센터는 11시에 올 예정이었다. 아침 일찍 이사를 시작해서 일찍 끝났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이가 등교하는 것도 있고 하니, 아이가 등교하고 나서 이사를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나는 그 사이에 새 집 오피스에 가서 미리 열쇠를 받고 컴퓨터나 모니터, TV 등은 내차로 미리 옮겨 두었다. 이삿짐센터에서 TV 운송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미리 준 것도 있었고, 몇몇 귀중품들은 별도로 챙기는 것이 피차 마음이 편하겠다 싶었다. 약 한 달 전 봐 두었던 집에 다시 들어가 보니, 마음속에 담고 있던 것보다 조금은 작아 보인다. 아무래도 이사를 기다리면서 새 집에 대한 환상이 머릿속을 자리 잡은 것은 아닌가 싶다.


다시 옛집으로 돌아가 짐정리를 마무리하고 있으니 인부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가보니 두 명의 건장한 청년과 꽤 큰 U-Haul 트럭이 와 있었다. 이삿짐센터를 통해 계약했는데 U-Haul 트럭이라니, U-Haul 트럭은 개인이 대여할 수 있는 트럭 렌털 서비스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들이 트럭을 아직 보유하고 있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 센터가 직접 트럭이나 인부를 고용한 것이 아닌 에이전트로 연결해 주는 업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자나 후자 모두 살짝 불안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 이사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새롭게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업체라면, 업계 안착을 위해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리뷰를 받으려 노력할 것이고, 에이전트 식이라면 계속 일을 받기 위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니,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사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포장 이사와는 다르게, 거의 대부분의 짐들이 박스로 이미 싸여 있기 때문에 그제야 짐을 싸는 시간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저 집에 인부들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짐들을 들고 트럭에 싣는다. 걱정이 되었던 부분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건장한 아프리카계 청년 두 분은 척척 박스와 짐들을 들고 아래층 트럭에 짐을 실었다. 워낙 덩치가 좋아서 괜한 걸 걱정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긴, 한국 아파트나 그렇지, 다운타운이 아닌 이상 이 주변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미국에 오고 나서 지난 1년 반 동안 엘리베이터를 탄 경험이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을 정도이다.


미국에서의 이사와 한국의 이사를 비교했을 때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주머님의 존재다. 한국에서 통상 포장이사를 하면 세분, 혹은 네 분이 오시는데, 그중 한 분은 아주머님이시다. 이사가 시작되자마자 아주머님은 주방으로 직행하셔서 그릇 등을 꼼꼼하게 싸주시고, 냉장고 안의 각종 식품을 아이스박스에 차곡차곡 싸주신다. 새로운 집에 도착해서도 찬장 하나하나 청소하신 후에 깔끔하게 식기를 다시 정리해 주시고, 냉장고 정리까지 깔끔하게 마치신다. 그뿐이랴, 냉장고 청소까지 깔끔하게 해 주시니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선 그런 거 없다. 물론 만약 돈을 진짜 많이 들여서 하면 그런 서비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돈이 어디 있나. 주방의 식기도 우리가 일일이 싸야 하고, 냉장고 음식들도 잘 포장해 스스로 준비한 아이스박스에 싸야 한다. 새삼 한국의 포장이사가 얼마나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절감한다.


다른 하나는 사다리차다. 그 편리한 엘리베이터가 있음에도, 사다리차의 존재는 이사의 편리함을 극대화한다. 거실 통창을 걷어내고 사다리를 연결한 뒤 팔레트에 웬만한 짐은 한 번에 탁탁 실어 내리면 30초면 충분하다. 이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대부분 옮기는데 드는 것이 아니라 짐을 싸고 푸는데 든다고 생각된다. 워낙 고층 아파트가 보편화된 한국에선 사다리차 없이 이사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여기선 그런 거 없다. 새로 가는 집은 아예 그런 게 필요도 없지만, 이 아파트도 사다리차를 베란다에 올리면 베란다가 견딜 수 있을지 조차가 의문이다. 거기에 사다리차 운용 인력에 대여비까지 생각하면 비용이 장난 아닐 거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청년 인부들이 박스들을 나르고 가구들을 분해하고 있는 동안에 나와 아내는 주방의 식품들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새 집으로 먼저 갔다. 옛집에서 새 집까지는 불과 5분 거리다. 아내가 새 집에서 냉장고 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옛집으로 돌아와 인부들이 이삿짐 싣는 것을 보면서 버릴 쓰레기들과 집정리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이사할 때는 나갈 때 정리를 잘해야 한다. 실제로 집의 관리 상태와 파손 상황을 체크한 뒤 보증금에서 해당 비용을 제하고 환불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안 점검을 철저히 했다. 벽난로에 불 때고 남은 재와 나무들을 정리해 버리고 쓰레기들도 정리했다. 청소기도 남겨 두었다가 짐이 다 나가고 난 뒤 전체 바닥 청소기도 밀었다. 텅 비어 있는 아파트 모습을 바라보니 처음 도착해서 집에 들어왔을 때가 기억난다. 장장 3일에 걸쳐 돌고 돌아 도착했던 이번 미국 이주의 첫 집. 지난 1년 반동안 우리 가정 안전하게 잘 지켜주고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이삿짐센터가 짐을 다 실었다며 새 집으로 가겠다고 해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으니 가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나는 잠깐 오피스에 들러 열쇠를 반납하고 문서에 서명한 뒤 새 집으로 향하는데, 아내가 전화했다. 당연히 밥 먹고 올 줄 알았는데 벌써 이삿짐센터에서 와서 짐을 나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미국에선 시간당으로 돈을 받으니 별도의 쉬는 시간 없이 바로바로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짐을 내리는 동안 가장 중요한 일은 짐의 위치를 알려주는 일이다. 새로 이사 가는 집은 위아래 층이 있기 때문에, 위치를 잘못 알려주었다간 나중에 원래 위치로 돌리는데 고생할 게 뻔하다. 문제는 내가 사실 정확한 짐의 위치를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구 배치 계획을 아내와 아이가 둘이서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로 짰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도 기억을 못 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짐이 드나드는 그 아수라장에서 노트북을 꺼내 ‘심즈’를 켰다. 짐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참으로 코미디 같은 상황이다.


3시가 다 되자, 이삿짐 나르는 일이 거의 끝났다. 가구 재조립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인터넷 후기로 보면, 시간당 페이다 보니 농땡이 치는 인부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4~5시간이면 끝날 일을 굳이 천천히 6시간 걸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일을 해서 답답한 마음이 든다는 리뷰가 많았는데, 이번에 온 청년들은 매우 성실하게 열심히 일을 해 주었다. 물론 한국처럼 빠릿빠릿한 느낌은 아니지만, 정말 쉬지도 않고 계속 일을 하는 게 너무 고마웠다. 업체에서 이메일로 청구서를 받고 현금으로 인부들에게 지불했다. 팁도 내 기준에선 조금 두둑이 챙겨줬다. 한국에서도 밥값 정도는 주니까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비용의 문제는 조금 각오한 부분도 없지 않았는데, 그래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잘 마무리한 듯하다.


마침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기존의 버스가 아닌 새로 배정된 버스를 잘 타야 하는데, 다행히도 버스를 잘 탄 모양이다. 새로운 버스 정류장은 단지 안쪽에 버스가 서도록 되어 있어서 지난번 집의 정류장보타 훨씬 안전해 보였다. 아이가 내리고 아이와 함께 새 집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처음 집을 봤을 땐 아이가 학교에 있는 때여서 아이에겐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보여줬으니, 집을 처음 보는 거였다. 혹시나 실망하지는 않을는지 잔뜩 긴장하면서 집을 보여줬는데, 아이는 꽤나 만족한 눈치였다. 거의 모든 아이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집안 2층 계단과 앞마당, 뒷마당이 있으니 싫을 턱이 있나. 집이 조금 작기는 하지만 아이의 로망을 채우기에 부족할 건 없었다. 아이가 만족하는 눈치니, 되었다.


우리 가족에겐 사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한국에서야 포장이사를 하면 그래도 60~70퍼센트 정도는 짐을 풀기 때문에 그 뒤로 정리하는 데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는데, 우리는 일부 조립된 가구와 수십 개의 박스가 쌓인 상태일 뿐이다. 그래도 잔뜩 긴장한 이삿날이 무사히 끝나서 천만다행이다.


사진: UnsplashMarkus Spis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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