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다움 Mar 31. 2024

근육 없는 몸의 근육통

배가 아파온다. 명치끝을 바늘로 쑤시는 느낌이 시작되며 트림이 나온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물 밖에 없는데, 체했다. 위를 쑤셔대는 고통에 허리가 숙여지고, 배를 움켜잡게 된다. 전조 증상을 무시한 게 탈로 이어졌다. 등을 펴면 척추를 중심으로 단단해지는 양쪽 근육에 통증이 있었다. 척추기립근인지, 광배근인지 뭔지 모르겠다. 등근육을 검색해서 봐도 어느 부위인지 판단이 안된다. 아무튼 그 위치가 자주 아프다. 통증이 약할 때는 스트레칭이나 근육통약을 먹으면 금방 가라앉곤 한다. 그런데 일 년에 한, 두 번 그날이 다가온다. 근육통약, 파스, 스트레칭, 마사지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통증. 그런 날은 꼭 소화불량이 뒤따른다. 등의 통증과, 소화불량까지 겹칠 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럴 때는 재빠르게 정형외과에 가서 주사를 맞고(근육이완제, 진통제가 섞인 혈관주사)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치료하고 나면 다시 일 년정도는 버틸 수 있다. 우리 집에는 다양한 파스가 구비되어 있다. 임신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파스를 붙이면 안 된다는 거였을 만큼 파스는 오랜 나의 주치의이자 동료이다. 


최초의 통증을 느낀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허리가 아닌 등이다. 너무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본능적으로 주먹으로 두들겼고, 통증이 분산되는 느낌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등이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근육통이라는 말도 몰랐고, 파스는 냄새가 나서 가까이하지 않았으며, 정형외과는 교통사고가 나야 가는 곳인 줄 알았다. 그 후로는 등이 너무 아프면 친구들에게 등을 주먹으로 두드려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것도 꽤 힘이 들어가는 일이라, 새침한 여고생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친구들의 손길이 필요했던 나는 방법을 하나 찾았다.  분노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체벌은 일상이었다. 모의고사를 보고 떨어진 점수만큼 맞거나, 수업시간에 코를 풀었다고 맞거나,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봤다고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루에 반 애들의 절반은 맞고, 혼났기 때문에 나에겐 노다지였다. 

 "00야, 오늘 너 수학선생님한테 혼나서 열받았지? 나를 수학선생님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주먹질해봐! 기꺼이 내 등을 내어줄게!" 대부분의 친구들은 매우 성실히 분노를 풀었다. 아주 가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숨이 턱 막힐 만큼 두들기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름 졸업 때까지 여러 마사지사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척추협착증'을 진단받았으며, 오른쪽 척추 몇 번과 몇 번 사이가 많이 좁다고 했다. 가장 심각한 건 근육이라고는 1도 없는 찰랑거리는 뱃살이었다. 척추는 복근과 등근육이 함께 잡아주는 것인데, 복근이 없어 등근육 혼자 척추를 잡기 위해 애쓰다 보니 탈이 난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내 배를 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고, 뱃살을 감추기 위해 양손으로 배를 감싸 쥐었다. "운동하세요. 무조건 운동을 해야 합니다! 자전거 타기, 걷기, 조깅, 헬스 등 근력을 키울 수 있는 모든 운동을 하세요" 진통주사와 물리치료, 운동처방을 받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운동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통증이 다시 찾아온다. 

'이래도 운동 안 할래?' '누가 이기나 해볼래?' '약 먹고, 주사 맞으며 얼마나 버틸 것 같아?'라고 내 몸이 말을 거는 것 같다. 그럼에도 꿋꿋이 버틴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 운동하기 귀찮다. 운동할 시간에 누워있으면 괜찮을 거다.라고 자기세뇌를 하며... 그렇게 버티다 운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찾아온 통증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수준이었다. 숨도 못 쉴 만큼 아팠다. 그렇게 헬스를 시작했고, 한 달도 안 되어서 발바닥과 무릎에 또 다른 통증이 찾아왔다. 


다시 찾아간 정형외과에서 의사 선생님은 "족저근막염"과 무릎에 근육이 없는데 갑자기 운동을 해서 무릎에 통증이 왔다는 진단을 내렸다. 운동처방은 변경되었다. 

"발을 땅에 디디는 운동은 하지 마세요" 

"네? 저는 이족보행을 하는 사람인데.... "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를 하세요. 다리에도 근육이 없어서 근육을 먼저 키우고 다른 운동을 해야 합니다."

내 몸에 근육이 있기는 한 걸까.. 약간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막막했다. 난 수영도 못하고, 자전거도 못 타는데... 세상 살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요즘 벌여놓은 일이 많아지며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려면 체력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실감하고 있다. 몸이 아파서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마음까지 멀어진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우울해지다 보면 사람들도 귀찮아진다. 사람들이 귀찮아진다보면 사는 것조차 버거워진다. 

몇 달 사이 예민한 나는 외부 자극과 스스로 만들어낸 불편함 속에 갇혀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결국 병으로 이어져 이번 주 내내 통증에 시달렸다. 온전히 나의 시간이 주어진 오랜만의 주말에 아무것도 못하고 드러누웠고, 아무것도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그렇게 방치한 나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 

나의 척추협착증은 사라지지 않을 테고, 족저근막염은 언제든 나타나 뒤꿈치를 찌르르하게 만들 것이다. 내 몸은 여전히 체지방률이 30%가 넘으며, 근육은 없다. 앞으로도 운동을 꾸준히 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잘하기 위해 노력해보고자 한다. 





이전 06화 그 여자는 왜 울고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