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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진 May 03. 2024

엄나무순을 곁들인 제철버섯 레부엘토

3화 지방, 향 그리고 계란

세상의 모든 주인공들이 언제나 전면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리에 있어서 진정한 주인공은 수렴청정하듯 그 실체를 숨기고 접시 전체에 그 영향력을 은은하게 발휘할 때가 많다. 지방이 '맛의 실세'로 행동할 때가 그렇다. 버터가 잔뜩 들어간 오믈렛이나 매시드 포테이토가 좋은 예이다. 사람들은 이 요리들을 계란요리 또는 감자요리라고 인식하지만, 내 눈에 이들은 버터 요리이다. 포슬포슬한 감자가 아찔할만큼 풍성한 크림처럼 변신하게 만드는 것은 버터, 즉 지방의 힘이다. 이렇게 우리가 보통 “맛있다”라고 이야기하는 음식의 대부분은 지방이 요리의 핵심인 경우가 많다. 칼로리가 높을수록 맛있다는 게 그냥 드립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방은 소금, 산(미)과 함께 맛을 내는 핵심 중 하나이다.


지방이 맛의 핵심이라는 관점에서, 계란의 미식적 가치는 다시 한번 돋보인다. 계란은 어느 면에서든 그 자체로 위대한 식재료 중 하나이다. 지난 편에서 살짝 언급했듯이, 특히 노른자는 그 자체로 훌륭한 소스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계란의 또 다른 멋진 기능은 노른자의 레시틴 성분으로 기름을 유화하고 흰자와 함께 포집하는 능력이다. 쉽게 말해서 “계란은 기름을 엄청 먹는다”라는 뜻이다.


혹시 유튜브에 중국집 볶음밥 만드는 걸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넉넉하다'라고 말하기엔 좀 과한 양의 기름에 계란을 풀고 익히면 그 많은 기름이 순식간에 계란과 함께 한 몸이 된다. 거기에 밥과 함께 부재료를 볶는다. 볶음밥 결과물만 보면 그 정도의 기름이 들어갔을 거라고는 상상이 잘 안 된다. 이는 다이어트를 달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슬픔과 배신감을 주지만 동시에 그만큼 음식이 맛있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아무튼 계란은 지방의 표정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하얀 캔버스 중 하나이다.



revuelto de setas


이런 계란의 특징을 활용해 서양에서는 계란과 함께 지방 또는 향이 강렬한 재료들을 덧붙인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서구권에서 가히 향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트러플(송로버섯)을 주로 노른자가 살아있는 상태의 계란과 함께 낸다. 내가 있었던 스페인의 경우 지방과 향, 그리고 강렬한 짠맛을 한 몸에 품은 하몽을 조합하곤 한다.


그래서 오늘의 요리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소박한 요리 '레부엘토'이다. ‘레부엘토’는 스페인어로 ‘범벅’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부드럽게 익힌 스크램블 에그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스페인에서는 버섯이나 염장 대구가 들어간 ‘레부엘토 데 세타스(버섯)’, ‘레부엘토 데 바칼라오(염장대구)’가 유명하다. 어떠한 지방과 맛이든 잘 어울리는 계란의 뛰어난 융통성을 이용한 요리로 활용도가 높다. 그래서 오늘은 지방과 향을 단단하게 붙잡는 이 계란의 원리를 활용한 요리를 소개한다.



엄나무순


엄나무순은 두릅과의 나물로 개두릅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통통한 참두릅보다는 그 고소함과 아삭함은 덜하나 두릅보다 좀 더 강한 봄의 향취, 쌉쌀한 맛이 더 두드러지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니 이 개두릅의 향과 씁쓸한 뉘앙스를 요리에 활용하기로 한다.



재료

계란

향이 두드러지는 버섯 (향이 풍성한 제철버섯을 추천한다. 사실 어떤 버섯이던 상관없다. 늘 우리에게 익숙한 표고와 느타리 정도만 사용해도 훌륭하다.)

마늘 - 옵션

엄나무순(개두릅) - 옵션

완두콩(가능하면 그냥 생으로 먹어도 단맛이 들어오는 어린 완두콩) - 옵션



레시피


1.(포인트) 오늘 레시피의 핵심이다. 너무 쉽지만 그래서 핵심이다. '넉넉하게' 올리브 오일(1)을 두른 팬에 원하는 버섯들을 적당한 크기로 준비해 투하한다. 한국인답게 원하다면 마늘도 추가하자. 소금 간을 조금 한다. 그리고 약불로 오-래 익힌다.(2) 2편을 거쳐오며 맛과 향을 빼는 '인퓨전'을 설명했다. 오늘이 그 인퓨전 개념을 온전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몇 분 동안 익혀야 한다고 물으신다면 그건 나도 모른다. 불의 세기, 버섯의 양, 팬의 넓이, 원하는 식감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걸 다 알아도 시간을 특정할 수 없다.


핵심은 버섯을 센 불로 빠르게 볶아서 먹는 것이 아니라, 약불에서 버섯의 수분을 천천히 빼앗가 가며 넉넉한 오일에 그 향과 맛을 방출시키는 것이다. 버섯은 그 부피의 대부분이 수분으로 이뤄진 식재료이다. 그래서 수분이 빠지고 난 버섯은 그 부피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그러니 약불에서 버섯이 충분히 쪼그라들고, 점차 구수한 마이야르반응(갈변반응)이 시작되고, 팬의 기름에서 버섯의 향이 진동할 때까지 익히면 된다. 그리고 기름이 반드시 넉넉하게 남아야 한다. 이 요리의 진짜 주인공은 기름이다. 아래 사진과 같은 그림이 나올 때까지 익히면 된다. 이것보다 훨씬 더 버섯이 쪼그라져도 좋다. 그럴수록 더 맛있는 결과가 나온다.


1. 기름이 생각보다 넉넉해야 한다 2. 그 기름에 버섯의 향과 향이 배도록 오랜 시간 약불에 익히자


미안하지만 필자가 하는 요리들은 5분 만들어서 5분 먹는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요리들이 아니다. 에필로그에서도 말했듯,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비밀은 시간이다. 시간의 힘을 깨닫는다면 간단한 한 두 가지 재료로도 놀라운 맛을 낸다.


미슐랭 등 좋은 식당의 위대함은 플레이팅이나 외적인 것에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뒤에서 시간과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점에 방점이 있다. 근데 그 갈아 넣는 방식이 정확한 조리지식에 기반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가가 식당과 요리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 부분이 요리에 있어서 나의 노력이 과연 '정성'인가 '삽질'인가를 가르는 지점이다.


그리고 똑똑한 요리사는 불이 혼자 일하게 만들 줄 안다. 조리 시간을 설계함으로써 노동을 효율화할 줄 알아야 한다. 단지 시간단축의 문제가 아닌 요리 전체의 퀄리티를 높이는 요리와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은 지 혼자 알아서 되게 먼저 세팅해 두자.



2. 소금물에 짧게 데친 엄나무순을 물기를 빼고 적당한 크기로 썰어둔다.


3. 엄나무순을 데치고 남은 물을 이용해 완두콩을 익히고 건져둔다. 익었는지는 먹어보면 안다. 단맛이 살고 살짝 단단할 때 건져 물기를 빼서 준비하자.


4. 오랜 시간 약불에서 그 맛과 향을 다 내어놓고 쪼그라든 버섯이 누워있는 팬에 준비된 엄나무순과 완두콩을 넣고 함께 살짝 볶는다. 소금 간을 충분히 한다.


5. 마지막으로 재료인 계란이 투입될 차례이다. 미리 계란을 풀어둬도 괜찮고, 귀찮다면 그 위에 바로 계란을 깨서 넣어도 상관없다. 그것보다 계란을 익히는 방식이 더 중요한데, 약불로 둔 상태에서 천천히 계란이 익어가면 조금씩 뒤섞는 방식을 추천한다. 터프하게 계란과 노른자가 완전히 섞이지 않아도 좋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섞게 되면 크림 같은 스크램블 에그가 된다.

결국 원하는 스타일의 차이인데, 적어도 센 불에서 끝까지 익혀 계란이 딱딱해진 조각 상태로만 되지 않도록 하자. 최소한 달걀에 촉촉함을 남겨두도록 하자. 사실 이 부분은 말로 설명하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언제나 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필자 스타일로 자세한 조리는 영상으로 대체하도록 하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3MB6bdHS00c


6. 생 노른자에 위화감이 없는 분이라면 접시에 완성된 음식을 담은 후 신선한 노른자를 한 알 추가하는 것을 추천한다. 음식이 가진 온기로 천천히 익혀가며 빵을 곁들여 먹는다.



향긋한 올리브오일에 구수한 흙내음을 온전히 내어놓은 버섯은 식감과 감칠맛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완두콩과 제철 엄나무순은 봄의 생동감을 달착지근함과 씁쓸함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계란의 융통성과 포용력이 이 모든 것을 하나로 감싸 안는다.



플레이팅이 후져보이는 것은 필자의 사진실력이 부족한 탓이다. 맛은 잘못이 없다


기획의도

원리를 알게 되면 레시피나 특정 재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언제나 집에 널려있는 재료들을 활용해서 혼자서 마스터셰프를 찍어보자. 그중 계란은 단연 무엇과도 잘 어울리는 융통성 좋은 식재료이다. 계란 + 지방 + 향의 공식을 활용해보자.


포인트

1. 맛의 핵심은 '지방'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2. 계란은 지방과 향을 잘 포섭하는 식재료이다. 지방과 향을 가두고 싶은 식재료라면 뭐든 붙여보자.

3.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부터 시작하자. 불이 혼자 일하게 만들어 두는 것이 똑똑한 요리사의 첫걸음이다.

4. 요리에 시간 개념을 쉬이 들이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기에 요리는 변수가 너무 많은 활동이다. 요리는 오감을 통해서 판단한다. 항상 맛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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