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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18. 2024

어쩌다 미니멀 라이프

PART 2. 저희 부부는 이렇게 살아요 ep.5


"실평수보다 훨씬 커 보이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지금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은 아내가 나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사놓았던 집이다. 나 또한 아내를 만나고 나서 아내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마음이 시원해질 정도로 훤한 공간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런 게 기분 탓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지인들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이 다른 집에 비해서 현저히 적다는 것이었다.


결혼하면 보통 살림이 늘어난다고들 하더라. 하지만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나서 오히려 살림이 줄어들고 있다. 한동안 쓰지 않는 물건이 있으면 당근에 팔거나 나눔을 하거나 혹은 시원하게 버린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한 적은 없다만, 어쩌다 보니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끼리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 집 분위기는 무소유(?)가 절로 떠오르는 분위기를 뽐내게 되었다.


아내가 자는 안방에는 침대와 협탁 그리고 두 사람이 앉아도 넉넉할 만큼의 커다란 일인용 소파가 전부다. 거실엔 다인용 소파, 아내가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얻어 온 스탠드형 티비, 전 주인이 놔두고 간 스탠드형 에어컨이 있다. 널찍한 주방 테이블 위엔 언제나 물병과 물컵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가끔 간식거리를 옆에 놓기도 하지만 이내 며칠 못 가 금세 치워버린다. 옷방엔 붙박이장과 전신거울 그리고 간이 옷걸이가 있다.


공간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게 무색할 만큼 단연코 내 방이 가장 단순하긴 하다. 책상 그리고 침대가 끝이다. 아, 글쓰기에 최적화된 따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전구색 스탠드형 조명도 책상 옆에 짝꿍처럼 붙어 있긴 하다. 그야말로 글을 쓰거나 자는 것 말고는 참으로 할 것도 볼 것도 없는 방이다.


작정하고 뭘 버리고자 한 건 아니지만, 자주 쓰는 물건들을 선별하다 보면 버릴 만한 것들은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왠지 나중에 필요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도 얼마 간의 시간 동안 쓰임새가 없었던 것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옷도 마찬가지였다. 안 입는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거나, 분리수거하는 길에 한 두벌씩 버리곤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린 결혼 후에도 물건 사는데 거의 돈이 들지 않았다.




경험상 물건은 버릴수록 좋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서다. 거실에 달랑 티비와 소파 하나 있는 게 허전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와 아내는 그런 심심한 공간에서 되려 안온함을 만끽한다. 우린 둘 다 독서가 취미인 만큼 주변에 잡다한 것들이 많으면 괜히 집중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었다.


두 번째는 청소하기가 수월해진다는 점이다. 로봇청소기 덕분에 평일엔 청소를 잘하지 않지만, 주말에 한 번씩은 먼지도 털고 로봇청소기가 닿지 못하는 방구석 가장자리도 스팀청소기로 닦는 등의 대청소를 한다. 그런데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으면 청소할 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이리저리 옮겨가며 쓸고 닦고 하는 건 상당히 귀찮다.


오히려 자주 하는 게 아니라 간헐적으로 청소를 하니까, 물건 때문에 걸리적거리는 부분들이 더 귀찮게 느껴지곤 했다. 그나마 자주 쓰는 물건들은 기꺼이 청소를 하겠는데, 잘 쓰지도 않는 물건들에 쌓인 먼지를 털고 있자면 뭔가 그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게 아까웠다. 때문에 그런 물건들은 웬만하면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거나, 당근에 팔거나, 버린다.


물건을 내다 버릴수록 좋은 세 번째 이유는 불필요한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새로운 제품들이 나오면 매번 호기심을 보이긴 한다. 하지만 평소 안 쓰는 물건들을 가차 없이 버리다 보니, 아무리 신박한 신제품을 마주해도 기능보다는 나름의 쓰임새와 유통기한(?)을 더 따져보는 편이다. 더군다나 일상을 보내는 방식이 단순하다 보니, 눈앞의 물건을 얼마나 쓸지가 쉽게 가늠이 된다. 그럼 웬만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뭘 살 일이 잘 없게 된다. 정작 필요한 건 이미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물욕이 메마른 것도 한몫 하지만 말이다.


난 물건이 지닌 실질적인 기능 이상의 가치를 지불하는 게 아깝다. 그런 이유로 명품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세상이 정의한 값어치는 가볍게 무시하고 매 순간 꼼꼼히 따져보는 건 쓰임새와 필요성이다. 가뜩이나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정작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잘 쓸 일도 없는 것들을 위해 태우는 건, 그간의 고생을 폄하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집안 곳곳에 놓인 물건들은 사람에게 은밀한 영향을 끼친다. 물건들은 제각각 기억의 연결고리가 내재되어 있다. 사람은 낌새를 느끼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물건에 담긴 정보나 기억들의 기운을 끊임없이 받는다. 


이를테면 자격증 필기시험을 나중에 다시 공부를 하겠다며 수년 전부터 책상 한 켠에 꽂혀있는 기출문제집이 눈에 보일 때마다, 이전에 불합격했던 씁쓸한 기분을 미세하게나마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큰맘 먹고 질렀지만, 몇 년 간 방치되어 먼지만 수북하게 쌓여 있는 기타를 볼 때마다 이전의 충동구매를 내심 후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괜히 마음만 어지럽히는 물건들은 아깝다 생각 말고 과감하게 버리는 걸 추천한다. '다음'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여태 건들지 않은 건 중요하지 않거나, 할 만하지 않거나, 간절하지 않거나이다. 그런 것들을 위해 굳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정리 컨설턴트 같은 직업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주변 정리는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돈을 모으는 방법은 꼭 돈을 모으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새어나가지 않게 돈을 지키는 것도 방법이다. 훗날 일어날 법한 불필요한 지출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도 그렇다. 쉽게 말해 쓸데없는 물건 혹은 사도 곧 버릴 물건을 사지 않는 것도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굳이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일 또는 몰입할 만한 무언가를 찾는다면 일상에 평온과 행복감이 자연스레 깃들 것이고, 그럼 주변 환경도 알아서 정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삶이 단순해지면 불필요한 물건도 알아서 내다 버리게 될 확률이 높다.


알고 보면,

미니멀 라이프는 일종의 '결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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