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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넘어파 Mar 22. 2024

교사 관두고 사업하겠다는 사위

장인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16화


그 사위가 바로 저예요.


제목을 남편이나 아들로 짓지 않고 사위라고 지은 이유는 부자아빠인 장인어른의 반대가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의 씨앗이 내 인생에 처음 내려앉은 건 군대 전역 후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지금의 아내가 된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이었다. 동서남북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교사가 될 학생들만 있는 대학교에서 여러 수업 과정을 통해 내가 꿈꾸는 교사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문득, 내가 꿈꾸는 교사로서의 삶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만 가능하겠다는 자각이 왔다. 30대 중반 이후부터 60대 초반까지도 교사로 살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해 봐도 대답은 "NO"였다.


그때 막연하게 생각했다. 교사로서의 삶은 최소 5년, 최대 10년까지다. 그 이후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탐색이 필요했다.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기 시작했다. 학자, 교육자, 디자이너, 엔지니어, 성직자, 정치인, 사업가 등등. 사업가들이 쓴 자서전에 손이 많이 갔다. 그들의 인생살이에 가슴이 뛰었다. 또 다른 사업가의 인생을 엿보고자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그래 교사 이후는 사업가다. 사업을 해야겠어. 사업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 있었다.


30대 중반이 되었다. 20대의 순수했던 열망은 거의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엔 사업에 대한 불씨가 남아있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사업하고 싶다는 말을 하면 다들 헛소리하지 말고 교사 열심히 하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뭐, 딱히 대단한 아이템도 없고 사업 아니면 죽을 것 같은 갈망도 아니었다. 너무나 막연한 동경일 뿐이었다.


2018년에 결혼을 하고 2020년까지 주말부부를 했다. 나는 전국 대도시마다 초, 중, 고가 있는 꽤 큰 규모의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 교원이다. 발령도 전국 단위로 난다. 광주에서 근무하던 나는 신혼집이 있는 대전으로 오기 위해 2018년부터 전근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20년 가을, 아내가 임신을 했다. 임신 사실을 인지한 날부터 대전에서 광주로의 출퇴근을 시작했다. 왕복 4시간 40분.


새벽마다, 저녁마다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며 생각했다.


내년에도 대전으로 발령받을 거란 보장은 없는데.

아내의 직장은 옮길 수 있는 여지도 없는데.

대전으로 발령받아도 언젠가는 다른 지역으로 또 옮겨야 하는데.

그럼 아내, 아이와 다시 떨어져 살아야 하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아내를 설득했다. 그냥 우리 둘 다 일을 그만두자. 그리고 내가 아버님 회사에 가서 일을 하겠다. 아내도 당시 생각이 많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으면 꼭 제 손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당시 아내가 다니던 직장은 육아휴직도 최대 1년이었다. 아내도 흔들렸다.


부자아빠께 전화로 넌지시 말씀드렸다. 화들짝 놀란 장인어른은 주말에 장모님과 함께 대전으로 내려오셨다.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부자아빠는 말씀하셨다.



"훈이가 우리 회사로 온다고 하면 나는 두 팔 벌려 환영이야."


"내 입장에서는 훈이 같은 직원이 있으면 너무 좋지."

 

"그런데 우리 회사는 너무 열악해."


"교사를 하던 훈이가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사업가가 되어야 할 텐데, 사업가의 삶을 살고 싶어?"


"사업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담 하나 건너 지하 월세방이 기다리고 있는 삶이야."


"나는 늘 아슬아슬하게 그 담을 걸어가는 기분으로 살아."


"일단, 대전으로 발령 나면 좀 지내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



다음 해, 다행히도 발령이 났다. 우리 부부는 더없이 행복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잘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돈의 위력에 눈을 떴다. 내가 부잣집에 장가갔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하기 시작했다.


첫 손주를 본 부자아빠는 손주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손에 쥐어주실 수 있었다. 부자아빠는 손주가 더 원하기만을 기다린다.


돈은 정말 좋은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정말 감사하게도 부부 싸움 한 번 없이 행복하게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덕분이겠지만 부자아빠의 경제적 지원도 분명 한몫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아내가 이야기한다.


"우리도 자녀들이 아이 낳고 키울 때, 이렇게 도와줄 수 있을까?"


"쉽지 않지."


부자아빠는 딸이 하나지만 우리는 자녀 셋을 계획하고 있다. 돈의 쓰임에 대해 눈을 뜬 나는 아내가 둘째를 임신한 이후 돈을 더 갈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선배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눈이 뒤집혔다. 건물이 올라가는 사진이었다. 그 선배는 10여 년 전에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사업가가 되었다.(글 하단 링크 참고)


선배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뇌리에 콕 박히는 말을 들었다. 선배도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었다.



일을 제대로 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교사라는 직업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교직이라는 일은 큰돈을 버는 데 있어서 '제대로 된 일'은 아니다. 교사의 일을 제대로, 잘하고 있다 해도 돈이 더 크게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돈을 벌려면 돈이 벌리는 '제대로 된 일'을 해야 한다. 투자에 천부적 재능이 없음은 이미 확인했으니 남은 건 사업뿐이다.



다시, 부자아빠께 말씀드렸다.


"아버님, 사업을 해야겠어요."


"훈이가 사업을 하는 명분이 뭐지?"


"명분이요?"


"더 깊이 고민해 봐. 왜 사업을 하고 싶은지."



거참. 사업하기 참 힘들고만. 말보다는 글이 생각을 더 가지런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적기 시작했다. 왜 사업을 하고 싶은지.


아래는 부자아빠께 전달한 글의 일부다.




왜 사업을 하려고 하느냐?

라는 질문은 왜 높고 험한 산을 오르려 하느냐? 같이 들립니다.


산을 오르는 건 매우 번거로운 일입니다. 땀이 나고, 근육에 무리를 줍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높이 오를수록 매서운 바람과 맞서야 합니다. 비나 눈이라도 내리면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산을 오르려고 하는 마음에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 더 높이 오르고자 하는 욕망, 마침내 정상에 올랐을 때 얻어질 희열에 대한 갈망 등이 뒤엉켜 있습니다.


산을 오르다 실패한 자의 비참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실패한 자의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저도 겪으며 자랐습니다. 94년부터 96년까지 더 작고 비루한 집으로의 이사를 3번이나 해야 했고, 우리 삼 남매는 사소한 것이라도 갖고 싶은 걸 갖고 싶다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으며 모두 자기 힘으로 대학을 다녀야만 했습니다. 집에 찾아온 채권자들이 나간 후 흘린 어머니의 눈물을 평생 잊을 수도 없고요. 작은 아버지들에게도 빚이 있는 아버지 때문에 친척들 보기가 민망하여 명절이 가장 괴로운 날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께, 누나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너는 사업하지 마라”입니다.   


아주 운 좋게도 선이를 만나 제 인생이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하고 편안한 길에 들어섰습니다. 지금처럼 살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잘 그려집니다. 아버님께서 고생해서 따온 약초를 자식들과 나눠 먹으면서 오순도순 재밌게 잘 살 수 있겠지요. 기대했던 대로 암호화폐가 터지기라도 한다면 꽤나 풍족한 삶을 누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굳이, 모두가 반대하는 길로 들어서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사업가의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 가슴이 뜁니다. 편안함보다는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세상을 보고 싶고, 저의 아버지가 했던 실패를 뒤집고 빚도 다 갚아내고 싶습니다. 아버님께서 그러셨듯이 제 자식들, 손주들에게 더 풍성한 풍요와 지혜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우려를 안겨드려 죄송합니다. 우려하시는 그 마음도 늘 잊지 않겠습니다.









글을 다 읽으신 부자아빠는 소파에 기대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약한 모습이었다.



글에 언급되는 선배의 이야기


https://brunch.co.kr/@janumap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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